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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휘종] 부처 싸움에 '거대범죄집단' 된 통신회사들


 

이번 유선통신업체들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를 보면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통신업체들은 공정위의 심결대로 위법과 탈법을 일삼는 '범죄집단'인가.

아쉽게도, 공정위의 시각에서는 적어도 그런 것 같다.

올 들어 공정위와 통신위의 과징금 부과 건수와 과징금 규모만 보면 통신업체들은 지금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238억7천만원 과징금에 앞서 KT는 지난 5월 1천159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위 시각에서 KT는 '공정거래를 무시하는 정말 나쁜 기업'이란 것인가.

지금 통신업체 직원들은 속이 탄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 지 판단을 못할 지경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특히 KT가 심하다. 심지어 일부 KT 직원들은 "회사의 정체성이 뭔지 헷갈릴 정도"라고 한다.

최근 KT에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KT 직원들의 심정을 이해할 만 하다.

우선 KT 민영화를 보자. 과거엔 공기업이었지만 이제 KT는 외국 자본이 대주주가 되면서 공적인 이익보다는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사업을 하는 업체가 됐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도감청 문제와 관련해서는 KT의 전화국을 통해 도감청이 이루어졌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온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 측면에 KT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번 과징금 건과 관련해서도 KT는 다른 유선통신 사업자들과 담합해 소비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가격 담합을 주도한 기업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심어졌다.

그러나 KT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 많다. 민영화의 경우, 애초 민영화를 주장한 것은 KT가 아니었다. IMF로 국가적 재난을 야기한 정부가 포스코, 한국전력, 한국통신(현 KT)의 민영화를 약속한 결과 '공기업 KT'에서 '민간기업 KT'가 됐다.

현재 KT의 직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과거 '공기업' 때 입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회사의 최우선 명제라고 배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제 이들은 '국민'이 아니라 '고객'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배우고 있다.

입사할 때만 하더라도 '국민들을 위한 공공 업무'를 한다고 자부심을 느꼈던 직원들이 이제는 구조조정을 걱정하며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

게다가 기업이 공개되면서 투자 여력이 있는 외국 자본들이 KT 주식을 샀고, 그 결과 KT의 대주주는 외국인들이 됐다.

외국인들에게 주식을 사라고 독려한 것은 정부였다. 정부는 국내 대기업들이 주식 매입을 통한 통신업체 장악을 우려해 이를 규제하면서 결국 외국계 자본이 KT의 대주주가 된 것이다.

외국인 대주주를 받아들인 것이 과연 KT의 의지 때문이었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도감청 역시 비슷하다. 국가정보기관에서 도감청에 KT의 전화국을 이용했지만 KT의 경영진이나 본사에서는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국가정보기관에서 일선 전화국의 통신망을 관리하는 말단 직원들에게 "협조해달라"고 요구하는 걸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과연 몇이나 될까.

국가정보기관에서 KT 직원들에게 돈을 줬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선 직원들이 나중에 "강압적인 분위기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통신시설을 제공했다"는 딴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입막음이었다는 것쯤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이번 과징금의 경우엔 두 부처의 '힘 싸움'에 KT를 비롯한 유선통신업체들이 '등 터진 새우 꼴'이 된 사례다.

공정위는 "정통부가 법적 근거도 없는 행정지도를 한 부분이 인정된다"며 정통부의 행정지도 자체를 무시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정통부의 통신요금제도 개선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정통부의 유효경쟁정책과 행정지도를 따라 사업계획을 수립했던 업체들 입장에서는 마치 망망대해에서 나침반이 고장난 배에 있는 것 같은 황당함을 느끼게 한 발표였다.

그런데 정통부는 행정지도가 적법했으며 앞으로도 이런 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통신업체들에 접속료 감면 협의와 상품 설명까지만 행정지도를 했을 뿐인데, 업체들이 여기에서 '오버'해 가격까지 담합했으며 그 책임은 업체들이 져야 한다"는 것이 정통부의 논리다.

그러나 통신업체들의 설명은 이와 조금 다르다. "가격제도는 신고제이지만 신고 요건이란 게 있는데, 정통부에서 업체가 제출한 서비스를 다시 해오라고 하면 결국은 가격까지 손질하라는 게 아니냐"며 "행정지도란 걸 마치 무 자르듯이 딱 자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정통부나 공무원들이 더 잘 알 것"이라며 답답해 했다.

이쯤 되면, 업체들 입장에서는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지 헷갈릴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사업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될 것이다.

아예 과징금을 염두에 두고 좀 더 과감하게 '불법과 탈법'을 저지를 것인지를 고민하는 업체도 있다.

정부가 업체들을 '범죄집단'으로 내몰지 않고 진심으로 '지도'를 하고 싶다면, 정부 부처간 내부 협의부터 선행돼야 할 것이다. 정부와 업계가 서로 '윈-윈'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머리를 맞대는 협의도 필요하다.

지금 선진국들은 우리나라를 주목하고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IT를 배우고 본받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기도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초청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반도체와 휴대폰은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그런데 과연 반도체만 잘 해서, 휴대폰만 잘 해서 세계 일류가 됐을까.

반도체가 탑재되는 단말기와 시스템이 있었고, 그 단말기와 시스템으로 제공되는 서비스가 있었기 때문에 유관 산업이 '가치 사슬'을 이루며 함께 성장한 것이 아니었나.

지금처럼 정부 부처간 손발이 안 맞아 그 사이에 낀 기업들만 피해를 보게 되면 결국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나중에는 '관리'할 기업들조차 남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윤휘종기자 yh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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