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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C 규제 푼 정부…실효성은 글쎄


내년부터 대기업 CVC 보유 허용될 듯…재계 "여러 제한에 실효성 의문"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이르면 내년부터 SK와 LG, 롯데 등 대기업의 지주회사들이 미국 구글의 '구글벤처스'처럼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을 보유해 벤처에 투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금이 넉넉한 대기업들이 스타트업·혁신기업 투자에 나서도록 유도하기 위한 방침이지만, 정부가 지분과 자금조달 방식 등에 제한을 두면서 실효성 여부에 논란이 일고 있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0일 일반지주회사의 CVC 소유를 원칙적으로 허용했다. 벤처캐피탈은 신생 기업(벤처기업)에 자금을 투자하는 일종의 펀드로, 공정거래법상 금융회사 성격이다.

 [사진=아이뉴스24 DB]
[사진=아이뉴스24 DB]

앞서 정부는 지난 1995년 은행법에 은산분리를 규정하면서 공정거래법에 금산분리 규정을 도입, 사실상 지주회사의 벤처캐피탈 소유를 원칙적으로 금지시켰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대기업 자금을 벤처투자로 끌어들여 국내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는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가 허용되면 일단 대기업들이 벤처·스타트업 기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며 "그간 엄격하게 금지되던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한 이번 정책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대기업들은 CVC 계열사를 지주회사 체제 바깥에 만들거나, 해외법인 CVC를 설립하는 등의 형태로 우회전략을 취해 왔다. 롯데가 지난 2017년 지주체제 전환과 함께 CVC인 롯데액셀러레이터를 지주사에 속하지 않은 계열사인 호텔롯데의 자회사로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SK 역시 미국에 SKTVC라는 CVC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고, CJ는 지주회사에 편입되지 않은 계열사 형태로 CVC인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를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지주회사 체제 내 계열사에 비해 의사결정의 속도가 늦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또 투자 활동도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진행돼 유망 기업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해외 벤처의 경우 투자를 해놓고 정작 유력 기업들을 해외 거대자본에 넘겨주는 사례도 종종 있어 문제로 지적됐다. 실제로 '배달의민족'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 '직방'은 미국 골드만삭스의 영향력을 받고 있다.

이에 정부는 연내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CVC 허용을 법제화 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28개 국내 대기업 그룹은 내년부터 CVC를 자회사로 두고 벤처와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올 들어 벤처 투자가 둔해지면서 작년 기준 약 25조 원에 달하는 37개 대기업 지주사의 현금(현금성 자산 포함)을 창업 생태계로 보낼 필요성이 커졌다"며 "이 자금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부동산으로 흘러가면 또 다시 집값 등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번에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영향을 준 듯 하다"고 말했다.

CVC 자금조달 및 투자 구조  [그래픽=공정위]
CVC 자금조달 및 투자 구조 [그래픽=공정위]

하지만 정부는 금산분리 완화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몇 가지 조건을 달아 재계 일각에서 불만을 드러냈다. 우선 정부는 CVC 차입 규모를 벤처지주회사 수준인 자기자본의 200%로 제한했다. 기존 창업투자회사(1천%)와 신기술사업금융회사(900%)보다 작다.

또 정부는 CVC가 펀드를 조성하면 외부 자금은 조성액의 40%까지만 조달할 수 있게 했다. 펀드 조성 시 총수일가, 계열 금융사가 출자하는 것도 금지했으며, 총수일가 관련 기업, 계열사, 대기업 집단 등에 CVC가 투자할 수 없도록 했다. 원칙적으로 '중소벤처 창업투자' 업무만 가능하고 다른 금융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해외 투자 규모는 CVC 총자산의 20%로 제한했다.

이에 재계 일각에선 여러 제약 조건들 때문에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정책의 취지가 어려움에 놓여있는 벤처기업의 생존과 미래지향적 벤처창업에 도움을 주려는 것인데, CVC가 제한적으로 허용됨으로써 당초 기대했던 정책효과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CVC를 지주회사의 완전자회사 형태로 설립하게 한 점, CVC의 부채비율을 200%로 제한한 점, 펀드 조성 시 외부자금을 40%로 제한한 점은 정책의 실효성을 저하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CVC에 대한 안전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며 반대의 뜻을 드러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일반지주회사의 CVC 소유는 금산분리의 원칙을 위배한 것으로, 투자자금 중 외부자금의 비율을 최대 40%로 허용한 점은 특히 우려된다"며 "대기업이 타인자금을 동원해 경제적 독점 강화에 활용하는 것을 막고, 재벌 대기업의 벤처생태계 잠식을 방지하기 위해 추가적인 보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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