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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②] ‘와이프’ 신유청·백석광 “초연 때 못 찾은 소중한 것들 발견”


“소름 돋는 정도 다를 것…‘호흡 하나도 기적’이라는 감동 전달됐으면”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어떤 식으로 자라날지 관심을 갖고 화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이 공연이 올라가게 되면 어떤 영향을 줄지 문득문득 궁금해져요.”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아티스트라운지에서 만난 신유청 연출은 연극 ‘와이프’의 앙코르 공연을 준비하면서 하루하루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팀원들과 같이 어떤 의미들을 발견하고, 곧 있으면 관객들에게 확 퍼져나갈 거라고 생각하면 행복하다”며 “그러다 보니 여기 왔다갔다하는 일들, 작은 일들도 즐겁다”고 공연을 앞둔 기대감을 전했다.

백석광은 “‘와이프’는 대본 속에 담긴 생각들이 아름답게 구성돼 엄청 사랑스러운 작품임이 분명하다”며 “그 인상이 변하지 않고 오래오래 갈 것 같다”고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1959년부터 1988년, 2020년, 2042년까지 네 시대를 넘나들며 80년 동안 펼쳐지는 네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권리 신장과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변화를 거듭하는지를 유기적이고 집중력 있게 다룬다.

오는 30일부터 4일간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앙코르 공연을 선보인 후 다음달 8일부터 23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초연에 참여한 이주영·오용·백석광·정환과 새롭게 합류한 손지윤·우범진·송광일이 출연한다.

신 연출은 “작년 ‘와이프’ 공연이 끝나고 지원사업에 넣어서 선정이 됐다”며 “극장도 지원해 대학로 소극장 대관이 돼 개인적으로 공연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가 동아연극상을 받고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앙코르 공연이 들어와 연결해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극장을 옮겨 곧바로 공연을 이어가는 배경을 설명했다.

다음은 신유청 연출·배우 백석광과의 일문일답.

- 지난해 6월 영국에서 초연한 최신작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

신유청 “작년 10월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리고 싶었던 작품을 못 하게 돼서 급하게 작품이 필요했다. 주변의 추천도 많이 받고 직접 찾으러 다니기도 했다. 석광이랑 3명의 배우가 있었는데 남산도서관과 예술가의 집도 갔다. 희곡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부족했다. 추천받은 작품 중 되게 예쁜 ‘와이프’ 공연 사진을 하나 봤다. 왠지 젊고 독특할 것 같은 이미지였다. 줄거리도 모르고 괜찮을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다. 작가가 쓴 지문이나 대사들에 비밀이 있는 것처럼 하나하나 풀면서 대본에 충실하게 올리려고 했다.”

백석광 “대본이 무슨 내용인지 몰라서 공연 일주일 전까지 대사와 인물, 장면에 대해서 끝없이 토론하면서 계속 대본을 번역했다. 그러다보니까 어느새 대사는 다 외워져있고.(웃음) ‘이게 왜 이렇게 재밌지’ 그러던 와중에 공연이 올라갔다. 공연 내내 고민은 이어졌다. 올해 연습을 시작했는데 그때 못 찾았던 것도 많이 보이고 더 깊이 있게 작품이 와 닿더라.”

신유청 “마치 방탈출을 하는 것처럼 ‘이런 게 있네’라고 풀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정말 집중을 많이 했다. 그렇게 공연을 올렸는데 수상도 하게 돼 기뻤다. 지금 돌이켜서 하나씩 생각해보니까 예전에 조금 허둥지둥하고 심장 두근두근한 것에 대한 의미들이 깊어진 것 같다.”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신유청 “작품 자체가 무척 매력이 있다. 캐릭터들이 조밀조밀 엮여있었고 작가가 계산해놓은 이 세계를 아름다운 마음으로 같이 들여다봤을 뿐이다.”

백석광 “그게 어려운 거다. 쓰인 것을 어떻게 해석해서 올리는지가 중요하지 않나. 고전 같은 경우는 연출을 비틀기도 하지만 ‘와이프’는 쓰인 자체를 구현하는 데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 1막부터 3막까지 ‘로버트’ ‘28세 아이바’ ‘핀’을 같은 배우가 맞나 싶을 만큼 표현해낸다.

백석광 “나뿐만 아니라 각 배우들이 시대가 바뀌면서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서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나는 가부장적인 남성이었다가 아주 전투적인 슈퍼게이가 됐다가 거리두기를 잘 하는, 사실상 나이스하지만 무책임한 역할을 한다. 다 재미있어서 ‘다음 런 스루는 이렇게 해봐야지’라는 생각이 자꾸 들면서 자극이 된다.”

- 빠르게 변신해야 하는 부담감은 없나.

백석광 “1막을 끝내고 2막에 들어가면 강지혜·홍문기·지미세르가 다 해준다. 강지혜 조명디자이너가 빛을 바꿔놓고 지미세르가 공간의 음악을 만들어주고 나는 서둘러서 홍문기 디자이너가 만든 의상을 갈아입는다. 그러고 나가면 다 바뀌어있으니까 나는 거기 얹히기만 하면 된다. 그분들의 힘이다.(웃음)”

- 개막까지 며칠 안 남았는데 연습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신유청 “남은 기간 동안 부담들이 좀 있어서 배우들과 함께 그 부담을 다 내려놓는 게 지금의 목표다.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서 ‘살아 숨 쉬는 호흡 하나가 기적’이라는 감동이 관객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가 하는 이 일도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여기에 내가 서 있다’는 게 무척 행복한 거다. 배우들이 순간순간 그렇게 하다보면 마지막에 그 감동이 오지 않을까.”

백석광 “계속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본다. 특히 더블캐스팅으로 출연하는 우범진의 변화를 보면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서로 유심히 보고 변하면서 함께 긴밀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 동료들의 변화들을 목격하는 것 이상으로 동료애를 발휘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나. 그러면서 유기적으로 이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 순간 작품의 찰기가 더 만들어지고 결국 관객들을 즐겁게 해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초연과 달라진 점이 있나.

신유청 “너무 소중한 것들을 발견해서 겉으로 보이는 연출의 특징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전 공연과 이번 공연은 엄청 큰 차이가 있다. 소름 돋는 정도가 다를 것 같은데.(웃음) 거의 모든 게 바뀌어서 올라갈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요소요소들이 변경된 건 없다.”

- 새로 합류한 배우들은 어떤가.

신유청 “송광일은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과 ‘궁극의 맛’을 같이 했고 좋은 작품·좋은 사람에 목말라 있는 좋은 사람이라서 함께 하자고 했다. 그리고 광일이가 석광이를 되게 좋아한다. 함께 하고 싶다고 계속 얘기해서 자리를 마련했다. 우범진은 학교 다닐 때부터 봤던 제일 믿을 수 있는 선비 같은 친구다. 더 즐겁게 연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고 ‘아이바’ 역할을 한번 경험해봤으면 했다. 손지윤은 처음 만났다. 우리 팀에 와서 너무 행복하게 해주는 배우다. 일상에서 많이 배우기도 하고. 이 조합들이 다 좋다.”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백석광 “연습하기 전에 오용 형이 요가 수업을 해주신다. 유청이 형도 참여를 하고 조연출과 팀원들 다 모여서 프로그램을 한다. 되게 잘 지도해주셔서 따라하면 재미있다. 요샌 그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신유청 “연습실 오면 매트 들고 자리를 잡는다.(웃음) 아침마다 운동을 하는데 요가 프로그램이 생겼을 때 너무 좋았다. 팀원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것들을 나누곤 한다. 손지윤은 강아지 간식 같은 걸 가져와서 나눠준다.”

백석광 “팀원들과 한 시즌을 함께 즐겁게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다. 8월까지 다 같이 아프지 말고 신나게 갔으면 좋겠다.”

- 이 작품만의 특별한 매력은 무엇인가.

백석광 “우리 팀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인 사무엘 아담슨 얘길 안할 수 없다. 작가님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계시고 편지도 보내주셨다. 우리 모두가 그분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

신유청 “해외에서 한 첫 공연이고 그 이후로 코로나19 때문에 셧다운 됐는데 우리가 또 공연을 한다고 하니까 되게 좋아했다. 수상했을 때도 소식을 전하면 본인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진심으로 기뻐해주셨다. 이번 포스터에 그동안 ‘인형의 집’에 출연한 여배우들의 이름이 쫙 있는데 그걸 설명하면서 포스터를 보내줬더니 ‘어메이징’이라고 하더라. 연극과 연극을 이어나가는 사람들, 그 역사 속의 사람들을 되게 소중히 생각하는 것 같다.”

- 극중 중요한 소품인 탬버린의 의미를 짚어 달라.

신유청 “어쩌면 탬버린이 완전 최초부터, ‘인형의 집’ 첫 프로덕션부터 왔을 수도 있다. ‘우리가 연결돼있다’는 게 이 작품의 아름다운 미덕이다. 현시대가 오기 전의 시대들에 영향을 받아 지금 우리가 이런 삶을 살고 있다고 보는 건 되게 겸손하면서도 삶에 감사할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연결돼있고, 내가 행하는 작은 일도 나비효과처럼 큰 영향력을 주는 시간들이 올 수도 있는 거다. 그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오늘이 굉장히 소중해진다. 근데 우리는 유한한 존재기 때문에 죽으면 그 기억이 끊길 텐데 이 세상이 연결돼있다는 것을 탬버린이라는 메타포로 관객들에게 드러내는 것 같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깃털 같은 역할이다.”

- 연극 ‘와이프’가 이 시대에 주는 공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백석광 “혐오시대지 않나. 사회 속에 혐오라는 감정이 만연하고 그것 때문에 갈등도 많이 일어나는데, 상대방을 잘 알면 그 감정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신유청 “살다보면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가령 내가 지나감으로 인해 쉬고 있는 길고양이에게 방해가 되는 것처럼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어떤 권리를 침해하게 되는 상황들이 생긴다. 이 작품을 경험하고 광화문 거리에 있는데 보이지 않는 본인들의 존재들이 사람들에게 불편함과 위협을 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 그럼에도 올바름을 주장하는 시대지 않나. ‘올바름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랑이 필요하다’는 되게 아름다운 작품이다. 물에 빠지면 어떻게든 헤엄을 쳐야 되고 진흙도 묻겠지만 살아내는 모습이 소중한 것 같다. 어떤 결론과 목표하는 지점이 있다기보다 보기가 안 좋더라도, 바른 지점에 도달을 못하더라도 소중한 삶의 과정들을 담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백석광 “‘사람 모이는 일이 정말 아름다운 일이구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 전엔 상상도 못했다. 공연을 보러 가면 가는 거고 누가 옆에 앉으면 앉는 거였는데 이제는 그것이 과거의 행위가 된 것 같다. 띄어 앉더라도 공연이 지속되는 것 자체만으로 참 감사한 일이다.”

신유청 “모임 하나, 공연 한편이 소중하게 됐으니 삶의 의미들이 한편의 연극에 많이 담기면 좋겠다. 연극이 삶의 필수적인 항목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공연 문화·예술이 유흥·향락 쪽으로 갈 수도 있는데 우리는 연극이 인생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하면서 작업을 한다. 위기의 순간이지만, 공연이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싶다.”

- 향후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백석광 “대단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겠다고 했을 때 잘 안 되더라. 두루두루 곁에 있는 사람들을 잘 챙기면서 이 일을 지속하고 싶다. 기회가 되고 작업할 수 있으면 연극뿐만 아니라 뮤지컬, 영화, TV드라마 다 관심이 있다.”

신유청 “계획을 뭘 짜도 그렇게 안 되는 걸 너무 많이 경험했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 건지 고민은 하고 있다.”

박은희 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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