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별세] '초우량 LG' 꿈 이룬 '소탈'한 덕장


30조 럭키금성, 160조 글로벌 LG로 키워…"3대 핵심 사업군 구축"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LG를 반드시 '초우량 LG'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해왔던 것이 우리의 전통이었고 저력이다."

20일 오전 숙환으로 타계한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1995년 2월22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회장 취임식을 갖고 이 같이 밝혔다. 이후 23년이 지난 현재, LG는 매출액 160조원 중 110조원을 해외에서 벌어 들이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또 자동차 부품과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와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LG의 3대 핵심 사업군을 뚝심있게 키웠다.

구 회장은 LG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맏손자, 구자경 LG 명예회장(93세)의 4남 2녀 중 첫째로 194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연세대를 거쳐 미국 애슐랜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75년 럭키(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해 첫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유지총괄본부장을 거쳐 1980년 LG전자 기획심사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1981년 이사로 승진한 후 일본 동경주재 이사와 상무를 지냈다. 또 1985년에는 회장실로 자리를 옮겨 전무와 부사장(1986년), 부회장(1989년)으로 일했다.

입사 20년 만인 1995년 2월 22일 구 회장은 그의 나이 50세에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은퇴하며 LG의 제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구 회장은 회장 취임 당시인 1994년 말 매출액 30조원 규모였던 LG를 GS, LS 등을 계열 분리하고도 지난해 말 160조원 규모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다섯 배 이상 성장시켰다. 이 가운데 해외매출은 10조원에서 110조원대로 열 배 이상 비약적으로 신장시켰다.

국내외에서 근무하고 있는 임직원 수도 같은 기간 약 10만 명에서 약 21만 명으로 2배 가량 늘어났다. 이 중 약 8만여 명이 200여 개의 해외 현지 법인과 70여 개의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구 회장은 LG 사업군을 '전자-화학-통신서비스' 3개 핵심 사업군으로 구축해 경쟁력을 높이며 LG를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이끌었다"며 "국가 산업 경쟁력의 견인과 경제 발전에도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전기차용 배터리 등 자동차부품,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한발 앞선 미래준비와 신사업 육성에 착수하면서 늘 더 나은 고객의 삶을 꿈꾸고 실천한 경영자였다"고 덧붙였다.

특히 구 회장은 '영속기업 LG'의 해답은 R&D와 인재라는 신념과 의지로 서울 마곡지구에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 사이언스파크'를 완성시키는 등 아낌없는 투자와 육성에 열과 성을 기울였다.

또 '럭키금성'에서 'LG'로 CI 변경을 주도하며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다졌다. 더불어 선진적 지배구조 구축에 대한 강한 의지로 국내 대기업 최초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결단하는 등 영속할 수 있는 기업의 토대를 쌓았다.

이 외에도 구 회장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함께 기억하자는 뜻으로 'LG 의인상'을 만들어 남다른 사회공헌 철학을 실천했다. 후대에게 의미 있는 자연유산을 남기고 싶다는 의지로 자신의 아호를 딴 수목원 화담(和談)숲을 조성하기도 했다.

LG그룹 관계자는 "구 회장은 존중과 배려의 리더십을 항상 발휘했다"며 "인간적으로는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약속한 것은 꼭 지키려 했고, 대기업 총수이지만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장유미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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