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산 의약품에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긴장하며 다양한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 공을 들여온 만큼, 관세 정책이 시행되면 업계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 시간)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98ca1d304dc05d.jpg)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 시간)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어떠한 예외나 면제도 없다"며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에도 관세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에는 세금이나 관세를 내고 싶지 않으면 미국에 공장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의약품 관세 부과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행될 경우 현지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미국은 1994년 체결된 세계무역기구(WTO) 의약품 협정에 따라 의약품 및 의약품 생산에 사용되는 물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왔다. 이 협정에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 일본, 캐나다, 스위스,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 역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의약품에 대한 무관세 혜택을 받고 있다.
최근 급등한 달러 환율도 기업에 추가적인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초부터 11월까지 1200원 중반~1300원대에서 유지되던 달러 환율이 최근 1400원대를 훌쩍 넘어서며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원자재·생산 비용이 증가하고 공급망에도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10년 가까이 미국 의약품 수출 규모를 꾸준히 늘려왔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산 의약품의 미국 수출액은 13억5900만 달러(약 1조9700억원)로 집계됐다. 2015년 3300만 달러(약 470억원)에 불과했던 수출액은 2019년 4억3500만 달러(약 6310억원)로 4년 만에 13배 이상 증가했다. 이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늘었고, 2021년에는 10억 달러(약 1조4300억원)를 돌파했다.
트럼프 정부의 무관용 관세 정책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기업으로 바이오시밀러 개발사가 꼽힌다. 미국에 바이오시밀러를 수출하는 대표적인 기업은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다. 이들 기업이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받은 바이오시밀러는 각각 5종, 8종이다. 두 기업의 경쟁력은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낮은 가격 △의료진·환자의 신뢰 확보 △생산·공급 안정성 등이다.
셀트리온은 현재 관세 시행 여부에 대해 추가적인 검토와 정책적 관망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의약품 관세는 미국 내 약가 상승을 초래해 소비자와 의료 시스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이를 강행할 가능성은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1기 정부 시절 지속적으로 약가 인하를 추진해온 만큼, 이번 관세 정책이 그의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 시간)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8636aea9ba8f25.jpg)
셀트리온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비해 이미 대응책을 마련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내 유통 중인 제품의 재고를 충분히 확보해, 최소 내년 3분기까지 추가 수입 없이도 현지 공급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조기 소진이 우려되는 제품은 미국 현지 위탁생산(CMO) 기업을 활용해, 반입이 완료된 원료의약품(DS)으로 완제의약품(DP)을 생산할 계획이다.
중기적으로는 관세 부담이 적은 원료의약품(DS) 수출에 집중하고, 현지 CMO에서 완제의약품(DP)을 제조하는 전략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현지 기업과의 협력 방안을 이미 검토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생산시설을 직접 인수하거나 신규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바이오시밀러뿐만 아니라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 역시 관세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업계 최초로 매출 4조원을 돌파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제약사 매출 상위 20곳 중 17곳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이들과의 계약 물량 상당 부분이 미국으로 수출된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도 현지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미국명 엑스코프리)'의 제조소를 미국과 캐나다로 이원화하거나,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관세가 확정되면 단가 상승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회사는 제조소 운영 방식을 조정하는 등 다양한 대응책을 살펴보고 있다.
중소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측은 트럼프 정부 출범 초반에는 제약·바이오 업계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관세 부과 방침 발표로 오히려 충격을 주고 있다"며 "대기업은 현지 생산시설 확보 등을 통해 관세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완제품을 수출하는 중소기업은 직접적인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대체 시장 발굴을 지원하는 동시에, 미국 현지 기업과 협력해 생산시설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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