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오일머니 잡는다"⋯중동 파고드는 톡신기업

[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국내 대표 보툴리눔 톡신(이하 톡신) 기업인 대웅제약, 휴젤, 메디톡스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미용 시장에 잇달아 진출하고 있다. 중동 지역의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데다 미국·유럽 등 글로벌 시장만큼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특히 사우디와 UAE는 경제 수준이 높아 구매력이 강한 시장으로 평가된다.

한 여성 환자가 톡신 시술을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픽사베이]

10일 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지난달 사우디에서 '나보타'를 출시했으며, 휴젤은 오는 4월 '보툴렉스'의 UAE 출시를 앞두고 있다. 메디톡스는 UAE 두바이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진출한다. 현재 공장 건설을 위한 준비 작업이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톡신 시장은 아직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으로 평가된다. 현재 미국 애브비의 '보톡스'와 프랑스 입센의 '디스포트', 독일 멀츠의 '제오민' 등 글로벌 제약사의 제품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나, 국산 제품은 높은 품질 대비 가격 경쟁력과 검증된 효과·안전성을 바탕으로 중동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아이마크(IMARC GROUP)는 지난해 발간한 '중동·아프리카 톡신 시장' 보고서를 통해 "중동 주요 국가의 진출 장벽이 높은 탓에, 아직 경쟁이 구도가 심화하지 않은 상태"라며 "한국산 톡신은 미국·유럽산 제품보다 시술 비용이 30~50% 저렴해 중동에서 선호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동 미용 시장은 전 세계에서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동 지역 미용 시장 규모는 389억7030만달러(약 56조7100억원)로, 지난 2년 동안 40% 이상 급성장했다. 이중 사우디 시장은 2023년 78억9900만달러(약 11조4800억원) 규모로 집계됐으며, 오는 2032년에는 187억7800만달러(27조300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톡신 기업들이 중동에 진출하는 이유는 단순한 성장세 때문만이 아니다. 해외 수요를 고려해 톡신 생산량을 늘린 만큼, 이를 소화할 안정적인 신규 시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동은 초기 시장이지만, 동남아·남미 등 다른 신흥 시장보다 구매력이 높아 빠른 매출 성장이 기대되는 곳이다. 특히 사우디는 걸프협력회의(GCC) 국가 중 경제 규모가 가장 크고, UAE는 2023년 기준 1인당 GDP가 9만2000달러(약 1억3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경제 수준이 높다.

우리나라 톡신 경쟁력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됐다. 대웅제약은 국내 톡신 기업 중 가장 먼저 미국에 진출해 입지를 다졌고, 나보타는 2018년 캐나다에서 품목허가를 받은 뒤 이듬해 미국에서 출시됐다. 5년간의 노력 끝에 애브비와 입센, 멀츠 등 글로벌 제약사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매출 2위를 기록했다.

대웅제약은 나보타의 품질과 안전성을 앞세워 사우디 점유율을 확보할 계획이다. 나보타는 사우디 시장 점유율 1위인 '보톡스'와 동일한 단백질 분자 크기를 갖췄으며,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 등 주요 선진국 의약품 당국의 허가를 획득한 점을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휴젤은 미국, 유럽, 중국 등 톡신 3대 시장에 모두 진출한 국내 최초이자 세계 4번째 기업이다. 지난해 2월 미국에서 보툴렉스(미국명 레티보) 품목허가를 받고, 현지 파트너사 베네브와 협업해 공식 론칭을 준비 중이다. 현재 60여 개국에 진출했으며, 2028년까지 보툴렉스를 80개국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만큼 중동 미용 시장 확보는 필수적이다.

또한 톡신 기술 고도화에도 힘쓰고 있다. 휴젤은 지난해 E 타입의 차세대 톡신 개발에 착수했으며, 이는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A 타입과 차별화된 효과를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A 타입은 투여 후 3~7일 뒤 효과가 나타나고 약효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반면, E 타입은 24시간 내로 효과가 발현되지만 약효가 4주 정도 유지된다. 업계에서는 짧은 지속 시간을 고려해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메디톡스는 지난해 UAE 국영기업 테콤그룹과 톡신 생산 공장 설립을 위한 투자계약의향서(LOI)를 체결했다. 회사는 테콤그룹 산하 두바이사이언스파크와 1년 동안 공장 설립에 대한 세부 사항을 논의해왔고, 설립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협의를 진행했다. 두바이 현지 공장을 전략적 거점으로 삼아 할랄 인증을 받은 자사의 톡신으로 중동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두바이 공장은 비동물성 액상 톡신 제제 'MT10109L'을 기반으로 한다. MT10109L은 균주 배양부터 원액 제조까지 동물 유래 성분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사람혈청알부민(HSA)도 부형제로 쓰지 않는다. 이를 통해 동물 유래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것이 특징이다. 메디톡스가 두바이에 공장을 설립하면, 해외에 톡신 생산 시설을 보유한 국내 최초 기업이 된다.

업계 관계자는 "사우디 정부가 2015년 문화 개방 정책 '비전 2030'을 선포함에 따라 여성의 사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히잡을 착용하며 외모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미용 시술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우디와 UAE는 소득 수준이 높은 데다 톡신 시술은 비수술 성형 분야로 분류돼 현지에서 가장 선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