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주훈 기자] "팬덤정치가 도를 넘어섰다"라는 말이 최근 여권, 야권을 불문하고 여의도 정치권 전반에서 나오고 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표명 등 순수한 의미에서의 팬덤현상은 이미 옛말이 됐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특정 정치인에 맞서는 인사를 테러에 가까운 언행으로 공격하는 것을 지나 이를 '민심'으로 포장해 '당략'에 활용하면서 이를 정당화 하는 행태까지 와 있다는 우려가 크다.
본격적인 팬덤정치의 시작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이다. 온건적·자발적 공감대가 특징이었던 이시절의 특성은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시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사모·박사모·달빛기사단 등이 보여준 팬덤정치는 현재 정치권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평가가 많다. 현재 정치권은 소위 '3세대 팬덤'으로 불리는 개딸(개혁의 딸)·위드후니(with후니) 등이 주도하고 있다. 각각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이다.
◇ SNS 발전과 함께 커진 '팬덤정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전에 따라 이들의 활동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정치인 팬덤들의 전통적인 활동 공간인 포털의 카페부터 카카오톡 오픈채팅, 페이스북 그룹, 인스타그램 등 여러 SNS에 자신들의 팬덤 이름을 명시하고 활동하고 있다.
현재 정치권의 대표적인 팬덤은 이 전 대표 지지 세력이다. 정치권에선 이들을 '개같은 딸'이라는 멸칭을 사용하며 비하하지만, 이들의 활동 영역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네이버 카페에 '재명이네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가입자만 20만명이다. 이 뿐만 아니라, '잼기사단·잼나이퍼' 등 여러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개설해 활동 중이다. 이들 채팅방은 각 지역명을 달고 있고 개설된 채팅방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이와 비교하면 '위드후니'의 세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그러나 카페 가입자 수 9만명으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그룹 등을 통해 활동 반경을 넓히 있다.
각 팬덤의 특징은 자발성이다. 이들 모두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감으로 스스로 팬덤을 만들었고, 해당 정치인에 대한 소위 '홍보'를 위해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정치인들의 소통 창구다. 각 정치인들의 SNS가 이들이 모이는 광장이 되고 정치인들과 소통하며 고도의 '친밀감'을 형성하며 서로 연대한다는 특성이 있다. 현재 정치인들이 필수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소통 창구는 페이스북이다. 기존에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의정활동을 홍보하는 창구였다면, 최근에는 지지층의 댓글에 답장을 보내며 '쌍방형 소통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를 공식적 소통 창구로 적극 활용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 의원의 인스타그램에는 '**주민은 언제든 DM(direct message·쪽지)으로 아파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시면 맞팔갑니다'라는 소개글이 있다. 현재 초점은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화성을 주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서울 노원병 주민을 대상으로 했다. 이 의원은 이외에도 다양한 SNS를 통해 지지층과의 소통에 주력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에 대한 홍보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 주민과의 친밀감을 높여 표심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20·30세대 남성이 주축이 된 이 의원 지지층은 개혁신당 창당과 현재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당내 평가가 있을 정도다.
◇ 'SNS 통한 팬덤이 당 내 입지에도 영향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아이뉴스24>와의 통화에서 "정치에서의 SNS 활용하고 팬덤의 발생은 비례한다"며 "팬덤이 발생하기 위해선 '친밀감'이 필요한데, SNS를 통해 정치인이 자신의 의견에 응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개인적 친밀감이 높아지고 팬덤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팬덤은 사실 감성적 지지인데, 이성적 지지가 아니다 보니 감성적으로 지지하는 인사의 정치적 상대방을 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부연했다.
신 교수가 지적한 '감성적 지지'는 정치권도 문제로 생각하는 부분이다. 정치인에게 팬덤이 생기는 것은 곧 '대중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는 의미다. 고정 지지층이 생기는 만큼, 자신의 의정활동 홍보뿐만 아니라, 나아가 당내 입지도 견고해질 수 있다. 이는 당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는 만큼, 자신이 아닌 같은 소속 정치인이 팬덤을 가지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에 따른 팬덤정치의 왜곡현상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다. 보통 주식시장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지만, 정치권에선 단어 그대로의 뜻인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라는 주객전도에 공감을 표하는 분위기다. 특정 정치인과 세력이 일부 극렬 강성 지지층의 의견을 '민심'으로 포장해 공당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조짐이 감지된 예는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다. 추미애 의원을 지지한 민주당 '당심'과 우원식 의원을 선택한 '의심'(국회의원의 마음) 간 간극이 발생하자, 민주당은 당원들의 대규모 탈당 사태에 봉착했다. 진화에 나선 민주당은 결국 그동안 개방한 적 없는 당내 선거인 국회의장단 후보자 및 원내대표 선출 선거에 권리당원 투표 결과를 20% 반영하기로 했다.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방침에서 결정된 사안이지만, 당내 적지 않은 의원들은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이들은 강성 지지층의 공격에 노출됐고, 결국 반대 입장을 가진 다른 의원들이 비공개로 입장을 전달하는 상황까지 초래됐다.
우 의장의 소위 '수난시대'는 국회의장 선출 이후까지 이어졌다. 방송4법을 두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벌인 지난 17일 우 의장은 "한발씩 물러나 잠시 냉각기를 갖자"고 중재에 나섰다. 곧바로 재명이네 마을과 잼기사단 오픈채팅방에선 "이럴 줄 알았다"며 비난이 쏟아졌고, 일부 당원들은 우 의장에게 직접 항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을 인증하기도 했다.
◇ 다양성 실종 원인 vs 세대교체 수순
강성 지지층의 공격은 당내 다양성에 직격탄을 날리는 모양새다. 현재 8·18 전당대회가 진행되는 민주당은 이 전 대표의 독주와 함께 최고위원 후보들의 '이재명 마케팅'이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당내에는 '김부겸·김동연·임종석·이탄희·박용진' 등 쟁쟁한 후보군이 있지만, 4·10 총선 당시 비명(비이재명)계 공천 학살 이후 강성 지지층의 '문자 폭탄'에 머리도 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이른바 세대교체 현상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한 야권 인사는 "이재명 전 대표야 당 내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당대표 연임이 자연스러운 것 아니냐"면서 "최고위원 후보들이 '친명' 일색이라고는 하지만 앞 선 선배들 뒤로 후배들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현역 의원들의 이른바 '재명이네 마을 문안 인사'도 3세대 팬덤정치의 독특한 현상으로 지적되고 있다. '재명이네 마을' 카페 하위 섹션으로, 민주당 의원들이 작성한 글이 게시되는 '민주일꾼'에는 여러 의원들이 찾아오고 있다. 의정활동 홍보글도 있지만, 최근에는 최고위원 후보들의 글이 많다. '오해'를 풀기 위한 해명부터 지지 호소까지 해당 게시판을 다방면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전 대표의 팬덤에 기대는 현상으로, 그만큼 정치 팬덤 영향력이 당내 경선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 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은 전국민을 대의하는 헌법기관인데, 특정 그룹에 의해서 국회가 좌지우지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대의민주주의 원리에도 맞지 않다"며 "특정 정치인을 좋아하는 팬클럽이 존재할 수 있지만, 문자 폭탄 등을 통해 반대 의견을 내는 정치인을 공격해 의견도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 정점식 SNS 닫게한 '위드후니'
최근에는 한 대표 지지층인 '위드후니'도 '개딸'처럼 당내 의사에 관여할 조짐이 보인다는 염려가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1일 정책위의장직에서 사퇴한 정점식 의원은 위드후니의 집중 공격 대상이었다. 친윤(친윤석열)계로 평가되는 정 의원은 새롭게 출범한 '한동훈 체제'의 사퇴 요구에도 버티기에 들어갔다가 댓글 테러에 노출됐다. 결국 자신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를 모두 비공개로 전환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21대 국회 당시 이 전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로 촉발된 '수박 색출'(비명계 의원들에 대한 멸칭) 사태처럼 반대 의견을 내는 정치인에 대한 공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기반이 없는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기반을 잡기 위해선 팬덤만큼 강력한 우군은 없다"며 "한 대표에게 팬덤은 '독이든 사과'일 수 있는데, 달콤하게만 생각하고 가까이 한다면 결국 팬덤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릴 것인 만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팬덤의 부작용은 '왝더독 현상'으로 꼬리가 몸통을 흔들면 안 되는데, 팬덤이 당 의사를 주도하는 상황이 된다면 당 공식 기구는 무력화되는 만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소수 팬덤은 국민 대다수 의견 아니야"
전문가들도 정치권이 '왝더독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핵심 문제는 '여론의 왜곡'이다. 정치인 입장에서 지역구 활동을 제외하면 지지층과 소통하는 창구는 SNS가 유일하다. 팬덤이 SNS를 중심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만큼, 이들의 의견이 대다수 국민을 대변한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팬덤이 아닌 정당 지지층과 일반 국민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신 교수는 "정치인 입장에서 팬덤은 필요한데, 일정 부분 자신의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팬덤 숫자는 얼마 안 되는데, 그 작은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여론이라고 착각을 하게 만들어서 실제로 여론을 만든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의 손을 대지 않고 정치적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본인은 이미지 관리만 하면 되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팬덤이라는 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도 "마니아층이 없는 정치인은 보다 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같은 진영에 있는 다른 경쟁 후보를 공격하거나 억누르려고 하는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면 홍위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 지도자는 팬덤이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감정적으로 다독여야 할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이 전 대표의 경우 삐끗하면 주도권과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팬덤한테 기대는 것인데, 정치 지도자는 '종교 지도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주훈 기자(jh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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