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텐 서녕의 세레나데]츄리닝 발씨


성이 손씨이신데 내가 발차장님 이라고 닉네임을 붙여 드린 분이 계시다. 혹, 손 씨 성 가지신 분들 봉기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만한 사연이 있으니. 중간에 자르지 말고 진득하게 reading 하시기 바란다. 한 6개 월 전 쯤, 밤늦게 술 생각이 나서 조용히 술 한 잔 하고 싶다고 츄리닝 바람으로 들어서신 분이 있었다. 우리 가게가 2층이라 손님이 없겠다 싶어 들어오셨단다.

우연찮게도 고향이 동향이라 다른 손님들보다도 빨리 친숙해졌고 발차장님이 오시는 날이면 같이 사투리를 쓰니까 내 사투리도 덩달아 날개를 달고 가게 안을 휘젓고 다녔다. 한 마디로 시끄러운 날이 되는 것이다.

탈향을 한지도 6년이 훌쩍 넘었건만 난 정말 사투리가 고쳐지지 않는다. 작정하고 서울말 흉내를 한1년은 try해 봤는데 그놈의 몹쓸 억양 때문에 온갖 소리 다 들었다. 얌전하게 얘기하면 혹시 조선 족 아니냐하고, 좀 웃길라 치면 강원도서 감자 캐다 왔나하고, 말이 좀 빨라지면 ‘절라도여? 경상도여? 헷갈리네~~ 어디요?’라고 묻고...이상하긴 했나 부다. 내 고향은 오간데 없고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거 같아 1년 만에 try 종지부를 찍었다. 그 이후론 지금까지 사투리로 밀고 나가고 있다.

말 투 때문에 <칼 댄 신봉선이다>라는 소리는 귀 안에 고속도로 낼 만큼 들었다. 얼굴은 안 닮았단 얘기다. 언젠가 한 번 또 봉선이 운운 하는 분 있길래 “내가 자갈치 박 봉선이요.” 라고 했더니 실제 가게로 박봉선씨 찾는 전화를 미령이가 받았었단다. 내 참 아무리 그렇지만 마를린 몽로에서 신 봉선이로 전락하다니 너무 급경사 아닌가 싶다.

발차장님과는 말투 때문에도 반가웠지만 정작 더 가까워 진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야구!! 나도 여자 치곤 어지간한 광팬이지만 발차장님에게는 머리에 쇠똥도 안 벗겨진 중삘이였다. 원래 부산 사람들이 야구응원을 좀 별나게 한다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이 분은 얼마나 광팬이던지 TV 중계라도 있는 날이면 와이프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리 친정가 있다가 오던가, 아님 가까운 친척 집에라도 피신했다가 들어오는게 생활화됐을 정도란다.

여기까지 듣다보니 갑자기 문득 편린 같은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집 단칸방에 세 들어 살던 신혼부부가 있었는데, 이 부부는 권투경기가 있는 날이면 세숫대야고 밥그릇이고 할 거 없이 두들겨 부시고 던지고 아주 난리가 아니었다. 유명한 권투 선수가 졌던 모양이었다. 연탄집게가 오가고 톰과 제리처럼 쫓고 쫓기고... 난리통 다음날엔 어김없이 새댁이 눈탱이 시퍼래져서는 빨래 방망이로 우그러진 세숫대야 편다고 세면가에 쭈그리고 있는 걸 자주 목격 했던 기억이 난다.

‘설마 이 부부도?? 시대가 어느 시댄데 그러고도 살아남았을 리가 없지. 암~’

발 차장님네는 역시 21세기 가족답다. 경기 중에 심하게 광분을 하시는 관계로 관리실에서 불이 날 정도로 조용히 하라는 전화가 오다가 나중엔 경비 아저씨가 밥줄 잘린다고 쥬스 사들고 사정하러 온단다. 이기면 그나마 괜찮은데 지는 날엔 뭐가 씌였는지 마누라한테 겁 없이 시비며 깐족대다가 결국엔 쫓겨나는 걸로 상황 종료 된단다.

한 번은 다 이긴 경기를 9회말 투 아웃에 역전 당하고 분을 삭이지 못해 침 튀기며 "아이고 저 병신들!!"을 연발 하고 있는데 방바닥에 아들래미 밥숟가락이 밟히더란다. 홧김에 "빙신 새끼들!!" 하며 밥숟갈을 걷어찼는데 그 다음 날부터 와이프가 밥숟가락을 안 주더란다. “당신은 지금부터 발로 밥 먹어 알았어?!!” 자질구레하게 바가지 안 긁고 한 방에 보내 버리더란다.

발차장님! 이름 잘 붙이지 않았나 싶다. 야구 시즌 일 때면 게임이 매 번 이기란 법은 없으니까 쫓아내는 것도 한 두 번이고 경비 아저씨 면 마주 칠 때마다 조용히 시키라는 소리도 지긋지긋했던지 어느 날 와이프가 낮은 목소리로 deal을 하더란다.

“여보!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입니다.> 라는 TV광고 카피 알지? 어느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봤대~ :다음중 가구가 아닌 것은?: 1.책상 2.식탁 3.냉장고 4.침대라고 냈더니 글쎄 반 이상이 침대라고 찍었다지 뭐야~. TV에서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했다는 거야~~. 우리 애들도 야구를 무슨 엄마 아빠 이간질시키는 아수라 백작쯤으로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이쯤에서 당신에게 자유를 줄께! 교육을 위해서 경기 있는 날은 애들과 나는 친정으로 보내 줘 알았지? 밥은 연명을 위해서 알아서 먹도록 하고.” deal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에 엄지가 납치당해 인주를 벌~겋게 묻혔단다.

술 생각이 나서 우리 집에 오게 된 첫날도 경기가 있었던 날 이었다. 이겼으면 야식집에 뭐라도 불러 먹고 치웠을 텐데 지고 나서 마누라가 없으니 시비걸 데가 없더란다. 지면 쫓겨나야 일단락 되던 것도 습성이 됐는지 본인도 모르게 지갑 들고 어슬렁어슬렁 나오게 되더란다.

그래서 우리 집과 인연이 된 발차장님은 진 날은 어김없이 오셔서 한 잔하고 국수 챙겨 드시고 가신다. 미령이와 겉절이가 야구에 ‘야’ 자도 모르는 맹인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야구 얘기만 하시는 발차장님이 버거웠던지 가시고 나면 “언니, 난 뭔 얘긴지 통~...... 박찬호가 야구도 해요? 난 축구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아~ 이 무슨 노고지리 우지짖는 소리인가? 박지성과 혼돈하는 모양이다. 하긴 잠깐 있었던 스물 한 살짜리 알바에게 오바마가 누구냐고 물었는데 “가수예요?”라고 되묻던 애 보단 양호하다.

옛날처럼 저녁만 되면 텔레비전 한 번 구경하겠다고 꿍쳐 논 주전부리까지 시청료로 상납해 가며 TV보러 댕기던 시대도 아니건만 휴대폰으로 돈도 송금하는 이 시대에 오바마가 가수로 둔갑 하는 건 좀 걱정되는 대답 아닌가 싶다. 그래~오바마는 몰라도 소시(소녀시대), 원걸(원더걸스)만 알면 된다. 오바마가 니들한테 노래 한번 불러 준 적 있느냐?

그나저나 항상 이기라고 응원하던 내가 ‘게임은 한 번씩 슬슬 지는 맛도 있어야지. 그래야 차장님도 자주 오시고.....흐흐흐’ 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는 새에 하고 있다고 하면 차장님은 야구 빠따로 날 내려치실까? 갑자기 뒷덜미가 서늘해져 온다.

/박선영(피플475(http://wwww.people4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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