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핵실험 강행 때문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핵무기 개발은 언제나 과학의 사회적인 책임을 묻는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미국의 ‘맨하튼프로젝트’ 참여 과학자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폭탄 때문에 비판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맨하튼프로젝트 책임자 오펜하이머는 전쟁이 끝난 뒤 트루먼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내손에는 피가 묻어있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비록 핵무기 개발에는 실패했지만 나치 독일 아래서 핵무기를 개발했던 독일 과학자들은 어땠을까? 당시 독일의 핵무기 개발을 이끌었던 사람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로 유명한 하이젠베르크였다. 그는 1923년 22세의 나이에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26세의 나이로 라이프치히 대학 정교수가 될 만큼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하이젠베르크는 청년운동 지도자로 적극 참가하는 등 정치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2차세계대전 중 미국 망명 권유를 뿌리치고 독일에 남아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물리연구소 소장으로 히틀러의 우라늄 계획을 이끌었다. 하지만 미국이 1945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미국과 독일의 핵무기 개발 경쟁은 끝이 났다.
비록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졌지만 독일 과학자들 역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핵무기 개발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치에 협력하려 했다는 ‘불순한 의도’에 대해 비판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일이 미국보다 먼저 우라늄의 핵분열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져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불순한 의도에 대한 해명’과 ‘무너진 자존심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절묘한 증언을 했다. “자신이 조국을 위해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치가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방해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포함한 양심적인 독일의 과학자들이 핵무기를 ‘안’ 만든 것이라는 얘기다.
정말 하이젠베르크는 핵무기를 ‘못’ 만든 것이 아니라 ‘안’ 만든 것이었을까? 독일이 핵무기 개발에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 성공한 원자로를 통한 플루토늄239 생산 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에 대해 “자신은 그 가능성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폭탄이 아니라 발전소를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중수를 감속재로 사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젠베르크의 그럴듯한 변명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것이었지만, 몇몇 과학사학자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런 변명을 할 당시는 그는 이미 미국 정부의 핵에너지 공식 보고서인 ‘스미스 보고서’(Smyth Report)’ 사본을 통해 미국 핵무기 계획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알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준비된 변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진위를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건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1944년 미국 그로브즈 장군은 독일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알소스(Alsos)’란 암호명의 특공대를 조직했다. 그리고 1945년 4월 경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독일의 우라늄클럽 과학자 10명을 체포해 영국 캠브리지 근처 팜홀이라는 시골에 6개월이 넘게 억류했다. 이곳에서 이들의 대화 한마디 한마디가 비밀리에 녹음됐는데, 50년간 비밀로 분류됐던 이 자료가 90년대 후반 공개됐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 후 이들이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를 들어보자.
한 : 그들은 우리보다 50년 정도 앞서 있었어. 어떻게 30kg 정도의 순수한 우라늄 235를 가지고 폭탄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이젠베르크 자네는 왜 2톤이 필요하다고 했었나?
하이젠베르크 : 그들은 아마 우리가 모르는 동위원소 분리법을 사용했던 것 같아.
디브너 : 우리가 실패한 이유는 관리들이 즉각적인 결과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미국처럼 장기적인 정책을 펴지 못한 게 우리가 진 원인이야.
바이체커 : 우리도 그들에 근접하긴 했지만, 결국 전쟁 중 완성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잖아.
하이젠베르크 : 나는 우리가 우라늄 엔진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가 폭탄을 만들고 있다고는 결코 생각한 적 없네. 나는 그것이 폭탄이 아니라는 사실이 심장 밑에서부터 기뻤을 뿐이야.
대화를 통해 하이젠베르크가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려 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독일의 과학자들이 적어도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이론적 실수를 범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안 만들었다’는 그들의 주장보다는, ‘만들려고 했어도 못 만들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더 적절하다.
그럼 하이젠베르크가 나치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전쟁이 끝나고 나치가 패망한 후 ‘선량한 독일인’들이 독일의 정권을 되찾게 되었을 때 독일의 과학을 구원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는 나치 정권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의도가 나치가 아닌 민족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결정이 사회와 정치에 가져올지도 모르는 결과들을 고려하지 않았던 점은 비판의 대상이다. 과학자가 과학의 정치적인 본성을 무시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지금 북한의 핵실험에 참여한 과학자 중에는 이런 고민을 하는 과학자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글 : 안형준 과학전문 기자)
/ *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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