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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17> 몽골제국의 쇠락한 근세 역사를 생각하며


오후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데 행복한 뉴스가 전해져 일행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장현수 KPMG 몽골지사장 기사가 울란바토르 자동차정비소를 전부 뒤져서 중고 부품 '터보'를 구해서 고장 난 '터보'를 교체했다고 한다. 몽골인들에 보급이 별로 안 된 한국의 SUV 중고차 부품 발견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기적적인 일이다. 모두가 부품 교체에 환호하였다.

오늘 저녁 식사는 테를지 국립공원 근처 식당에서 몽골 전통 요리 '후르헉' 요리를 먹는다. 매우 비싸고 귀한 음식인데 김교태 회장의 배려 덕분이다. 후르헉 요리는 양 한 마리를 분해해서 커다란 양철통 속에 넣고, 불에 달구어진 700도, 800도 뜨거운 돌을 양철통 속에 계속 넣어 익힌 몽골 전통 요리다. 요리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동차 수리 소식에 모두가 귀한 한국 소주를 마시며 "가자! 이스탄불"을 합창한다.

몽골 전통음식 후르헉 파티. [사진=윤영선]

이제는 몽골고원과 고비사막 통과에 걱정이 없어졌다. 아내는 "걱정거리인 자동차 수리에 우리가 크게 기여했다" 매우 좋아한다. 저녁 식당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칭기즈칸 골프장'(골프장 이름) 클럽하우스다. 골프장 주인이 한국인인데 국립공원에 골프장을 운영하다니 대단한 사업수완이다. 점심으로 삼겹살에 이어 저녁에 양고기 요리(후르헉)을 먹게 되니 배가 불러서 귀하게 준비한 후르헉 요리를 거의 남겼다. 남은 양고기는 자동차 수리에 공헌한 몽골 운전기사에게 포장해서 주었다. 후르헉은 몽골인들에도 귀한 음식이라 기사가 무척 고마워한다.

골프장 클럽하우스 식당 옆 좌석에 몽골에 운동하러 온 한국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났다. 이들도 우리의 여행담을 듣고 감동하며, 꼭 완주하라고 덕담을 준다. 숙소는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호텔이라 매우 깨끗하다. 오랜만에 밀린 빨래를 하였다. 건조한 사막성기후라 속옷을 빨아 걸어 놓으면 금세 마른다. 정말 홀가분한 기분으로 편안한 호텔에서 어젯밤 못 잔 꿀잠에 빠졌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는 몽골고원의 분지로 해발 1300미터 이상 도시이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어 '붉은 영웅' 뜻이다. 1911년 청나라 멸망 후 몽골은 왕국으로 독립했다. 1919년~1920년 중국 군대가 침략하였다. '수흐바타르' 장군이 러시아군 도움으로 중국 군대를 격퇴했다. '붉은 영웅' 수흐바타르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도시 이름을 울란바토르로 바꿨다고 한다. 근세 몽골은 중국의 침략에 대비한 생존 전략으로 친러시아 외교를 하게 된다.

겨울은 석탄 난방으로 도시 매연이 심한 지역인데, 여름철 7월은 공기가 매우 맑다. 울란바토르는 몽골 인구의 약 절반이 산다. 기후변화로 유목이 잘 안되어 전입인구가 많다. 중국인들은 우매할 '몽(蒙)' 한자를 사용, 야만인으로 비하하는 의미의 몽고(蒙古)로 부르는데 몽골인들은 몽고(蒙古) 라고 부르는 국호(國號)에 자존심이 상한다고 한다. 몽골공화국과 우리가 1990년 국교 수립 후 우리나라에 국호를 '몽골'로 표기해 달라고 외교적으로 부탁했다.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울란바토르 시내 호텔 근처를 산책한다. 울란바토르 시내에 한국브랜드 편의점, 커피숍 등이 매우 많다. 몽골 국민 중에서 한국을 다녀간 사람이 매우 많아서 한국 브랜드 가게가 잘 된다고 한다. 몽골인의 꿈은 한국에 가는 것인데, 한국 입국비자 받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아침에 한국 편의점에서 한국산 인스턴트 커피, 햇반, 과자 등 보급품을 샀다. 시내에서 만나는 몽골인들을 우리와 외모가 무척 닮아서 마음이 무척 편안하다. 우리 신생아의 70%가 태어날 때 엉덩이에 '몽골반점'을 갖고 태어나는 특성상 몽골인에 약간의 동질감을 느낀다. 유전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실제로 우리 민족과 가장 닮은 종족은 만주 여진족, 일본인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대통령궁이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 [사진=윤영선]

아침 일찍 울란바토르 시내 중심부를 통과해서 고비사막 방향으로 향한다. 오늘은 몽골 남쪽 고비사막 국경도시 '자민우드'까지 약 680킬로를 가야 한다. 일정이 빡빡하여 울란바토르 티베트 불교 사찰, '간단 사원' 지붕을 멀리서 보면서 지나간다. 몽골고원 초원을 가는 도중에 마을에서 많은 티베트불교 사원을 자주 보게 된다. 몽골이 16세기 티베트불교 도입 후 몽골 주민 대다수는 티베트불교 신자이다.

안내를 맡은 앙케씨에게 언제 절에 가는지 물어보니 음력 설날, 경조사 등 특별한 날에만 간다고 한다. 티베트불교는 티베트 주민과 뭉골 주민이 믿는 불교 종파이다. 우리에게 대숭불교, 소승불교는 익숙하지만, 티베트불교는 낯설다. 역사적으로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영적 종교 권력과 세속 정치권력은 상호 이익을 위해 타협과 거래를 자주 했다.

16세기 후반 쇠퇴한 몽골의 왕(알탄 칸)이 본인의 통치적 정통성 확보와 국민통합의 수단으로 티베트 불교를 도입했다. 1571년 몽골의 왕(알탄 칸)이 당시 활불(活佛)로 소문났던 티베트 라싸의 승려 '소남 갸초'를 몽골로 초청하고, '달라이 라마' 명칭을 하사했다. '달라이'는 '바다'의 뜻으로, 달라이 라마는 '지혜의 바다', '전 세계의 스승' 뜻이다. 티베트 불교는 '환생과 윤회'를 믿음으로 한다.

티베트 승려 '소남 갸초'는 알탄 칸을 칭기즈칸의 환생한 인물임을 선언하여 보답했다.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몽골 왕(알탄 칸)은 몽골족 영웅인 '칭기즈칸', 원 세조 '쿠빌라이'의 환생한 인물임을 내세워 정치적 정통성을 확보하였다. 고대 신라의 법흥왕은 토착 세력의 반대로 뒤늦게 불교를 도입하였다. 법흥왕(法興王)은 왕 이름도 불교식으로 지어서 후진적 부족 국가에서 불교를 국민통합에 이용한 왕이다.

아들 진흥왕은 '호국불교' 기치를 내세워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확립에 불교를 이용하고, 삼국통일 기틀을 만든다. 종교와 정치권력의 상호 거래는 많은 국가의 사례이다. 현재 인도에 망명한 티베트불교 수장은 14대 달라이 라마이다. 달라이 라마는 죽은 다음에 다시 환생하는 부처이므로 이름이 계속 승계된다. 소남 갸초는 실제로 1대 '달라이 라마'이지만, 본인의 죽은 스승을 1대, 2대 달라이 라마로 추존하고, 본인은 죽은 스승의 환생한 인물로서 3대 달라이 라마로 호칭했다.

몽골고원 유목민 주거지 게르 천막. [사진=윤영선]

몽골 칸의 지원으로 소남 갸초의 '홤모파'는 당시 티베트의 유력 종파 '홍모파'를 제치고, 티베트의 불교 종파 중에서 가장 강력한 종파로 성장하였다. 티베트불교의 몽골 도입은 몽골의 정치적 통합에 기여했지만, 몽골인들의 호전성과 상무 정신을 약화시켰다. 얼마 후 만주의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에 복속되고, 몽골초원의 유목민 강자는 이후 소멸하게 된다. 물론 16세기 중반 이후 서구 산업사회의 산물인 총기류는 유목 기마병의 복합궁을 압도하게 된다. 자본과 기술이 없는 초원과 사막의 유목민은 서구의 신무기를 따라갈 수 없다.

현재 몽골공화국 영토는 과거 몽골제국의 영토에서 북쪽의 초원 지대인 바이칼호 주변 초원은 17세기 러시아에 빼앗기고, 남쪽의 내몽골 스텝 초원은 중국에 빼앗겼다. 과거 몽골제국의 1/3로 줄어든 가장 척박한 외몽골 사막지대가 현재 몽골이다. 근세 몽골은 러시아의 위성국가로 준 식민지 상태로 있다가 1991년 소련연방 해체 후 독립국이 되었다.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했던 세계의 중심국이 변방의 약소 주변국으로 변모한 역사이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중국, 러시아) 사이에 낀 약소국 몽골의 근세 역사를 보면서, 19세기 말 4대 강대국(청나라, 일본, 러시아, 미국) 사이 끼어있던 약소국 조선왕조 모습이 아른거린다.

한가롭게 몽골고원의 단조로운 초원을 보면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땅에 바짝 붙어 자라는 매우 키가 작은 풀만 있고, 나무나 숲은 볼 수가 없다. 초원에 유목민 주거지 게르 천막이 띄엄띄엄 나타난다. 광야에 외톨이로 떨어져서 살아가는 유목민의 고독함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몽골 사람은 술이 세기로 유명하다. 과거 초원에서 외롭게 혼자 살다가 오랜만에 친구나 손님을 만나면 독한 술을 밤새워 마신다고 한다. 현대인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다음 날 출근할 일도 없고, 공기도 좋으니 아마도 밤새워 폭음이 부담이 안 될 것이다.

지금은 게르 천막 옆에 자동차, 오토바이가 있어서,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쉬울 것이다. 요즘은 몽골의 목동도 말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초원의 가축을 기르고 있다. 오늘 사막의 일기예보를 찾아보니 '가시거리'가 무한대로 나온다. 몽골 사람의 평균 시력이 3.0이고, 최고 좋은 사람의 시력은 5.0이라는 말이 있다. 고비사막의 광대한 광야를 달려보니 이해가 된다. 넓은 광야는 야성미와 장엄미의 멋진 조합이다.

인터넷이 끊기니 수시로 문명권과 소통이 단절된다. 수백 킬로의 단조로운 초원과 사막을 지나가고 있다. 현대의 치열한 경쟁사회에 사는 우리는 타인과 비교함으로 행복과 불행을 가진다. 이곳은 타인과 비교할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평화롭다. '내려놓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평안한 마음이다.

"배움의 추구는 날로 더해가는 것이고, 도(道)의 추구는 날로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무위(無爲)에 이르게 된다"

경계선이 없는 끝없는 사막 한복판에서 2500년 전 중국 '노자'의 말이 불현듯 가슴에 와닿는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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