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전다윗 기자]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차로 꼬박 4시간쯤 달려 들어선 경상북도 영양군. 주변 풍경부터 다르다. 눈 씻고 찾아봐도 그 흔한 아파트, 빌라 한 채 발견하기 어렵다.
옹기종기 모인 한옥 몇 채가 듬성듬성 눈에 띈다. 대형버스가 들어가기엔 길이 너무 좁아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내려 걸어야 하는 동네다. 대낮 거리에는 사람 한 명 없고 이따금 새소리만 들린다.
영양은 경북 지역에서도 청송, 봉화와 함께 손꼽히는 오지. '육지 속 섬'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다. 군을 통틀어 인구는 1만5000여 명. 경북 울릉군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다. 교촌에프앤비는 이 조용한 도시에서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18일 방문한 '발효공방 1991'은 2022년 설립한 농업회사법인으로, 교촌의 손자회사다. 전통주와 장류 등 발효식품을 만든다. 교촌은 이 사업을 위해 영양군과 업무협약을 맺고 100년 넘게 막걸리를 빚다가 폐업한 영양백년양조장을 복원했다.
핵심 제품은 단연 막걸리다. 발효공방1991이 제조하는 '은하수 막걸리'는 영양백년양조장의 '감향주'를 현대화한 제품이다. 달고 향기로운 술이란 뜻의 감향주는 찹쌀과 누룩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물을 거의 넣지 않아 수저로 떠먹는 되직한 막걸리다. 쌀이 귀하던 시절이라 양반들만 먹을 수 있던 고급 막걸리였다. 최초의 한글 요리서 '음식디미방'에 소개되기도 했다.
은하수 막걸리는 물, 쌀, 누룩 외에 어떠한 첨가물도 넣지 않고 만든다. 재료는 모두 영양에서 생산된 것만 쓴다. 깔끔한 청량감이 특징인 도수 6도 제품, 원재료 함량이 높고 걸쭉한 도수 8도 제품 2종류로 구성됐다. 현재는 경상북도 영양 지역 내 로컬푸드 매장 등 현지 매장과 서울 이태원 '교촌필방', 여의도 '메밀단편', 광장시장 '박가네 빈대떡' 등에서 한정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교촌이 막걸리 사업을, 그것도 영양에서 하게 된 건 막걸리 애호가인 권원강 회장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다. 평소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권 회장은 영양에 자주 들렀는데, 우연히 먹게 된 감향주 맛에 반했다고 한다. 송숙희 발효공방1991 발효사업부문장은 "(권 회장이) 이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막걸리라며 '전수 받으라'고 하셨다. 마침 해당 양조장이 2017년부터 폐업한 상태라 영양군에서도 고민이 많은 상태였다. 논의 끝에 교촌과 영양군이 협업해 양조장을 계승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발효공방 1991에서 한 달에 만드는 막걸리는 약 5000병. 1년 동안 약 6만 병만 생산한다. 전통 방식을 고수해 사람이 직접 만드는 데다, 양조장 공간도 협소한 탓이다. 이곳에서 함께 만드는 구들 고추장, 된장도 아직 시중에서 판매할 정도의 양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사업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교촌 측은 영양군과 함께 추진 중인 '발효감각 복합 플랫폼 조성 사업'이 완료되면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발효감각 복합 플랫폼 조성 사업은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일원에 대지면적 6323㎡ 규모 대형 복합테마시설을 조성하는 것이 골자다. 단순 제품 생산을 넘어, 은하수 막걸리 등 발효공방1991의 대표 제품을 활용하는 내외국인 대상 발효 체험 및 교육, 내부 시설 관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해당 사업은 최근 국토교통부가 공모한 '민관협력 지역상생협약 사업'에 최종 선정돼 향후 3년간 총 100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오는 2026년 발효감각 복합 플랫폼 준공 시 은하수 막걸리 등 전통주 4종의 생산량은 연간 40만리터, 장류 5종의 연간 생산량은 35톤으로 늘어난다. 올해 2억원 수준인 은하수 막걸리 매출은 1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발효공방1991만의 효모, 누룩 개발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교촌은 이곳에서 개발할 기술과 소스 사업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송 부문장은 "교촌의 핵심은 소스다. 레드, 허니 등 간장에서 나온 소스가 인기 제품의 기반이 됐다. 한식과 연계성도 커 'K푸드'로 확장할 여지도 있다. 이 소스 사업을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 권 회장의 의지"라며 "이 과정에서 발효공방1991은 차별화된 발효 핵심 기술 역량을 확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강조했다.
수제맥주에 이어 막걸리로 주류 포트폴리오 확대, 소스 사업과 시너지 외에도 교촌은 발효감각 복합 플랫폼 준공으로 ESG 경영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발효감각 복합 플랫폼을 중심으로 지역 관광을 활성화해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영양군과 상생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교촌 측은 발효감각 복합 플랫폼 준공 시 연계 생활 인구가 3년 누적 30만명 유입되고, 지역 농산물 구매가 연간 13억5000만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영양 및 인근 지역 교통·관광 자원과 발효감각 복합 플랫폼을 연계한 체험 코스도 준비 중이다. 송 부문장은 "지역 상생 노력을 통해 영양에 활기를 불어넣어 ESG 경영을 실천하는 것도 주된 사업 목표"라고 했다.
/전다윗 기자(dav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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