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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확증편향의 시대, 레드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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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제가 판단했을 때 국회의원을 끌어내는 것은 명백히 위법사항이기 때문에 항명이 될 줄 알았지만, 그 임무는 지키지 않았습니다."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3일 계엄군이 국회의사당에 진입했을 때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더불어민주당 박선원·김병주 의원이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날밤 국회 상황이 담긴 영상 속 군인들은 창문을 깨고 진입했지만, 대통령의 지시를 따라 본회의장 문을 부수거나 정치인들을 끌어내진 않았다.

이날 국회에 온 군인들은 계엄 대상이 아닌 헌법기관(국회)에 침입했으니, 내란죄의 주요 임무 수행 또는 조력자로 지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이들은 '군인 정신'을 운운하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군처럼 상명하복이 강한 조직에서 '계엄 선포 후 국회 침입은 위법'이라는 원칙을 떠올리고, 위법적 지시는 따르지 않았다는 점은 곱씹어 볼 만하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부당하고 위법한 지시에 반대한다면 그 조직의 소속이 아니라고 말하거나 그 조직을 배신했다고 비난할 수 있는 건가? 위법한 지시에 반대할 경우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는가?

과거엔 기업에서도 법에 어긋나거나 부당한 지시를 직원이 거절하기 어려운 권위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최근에는 준법 경영이 자리 잡으면서 위법한 지시를 하는 기업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권위적인 분위기는 남아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한국 특유의 나이, 학번, 입사 기수, 출신 지역, ROTC 기수 등으로 서열을 따지는 문화도 권위적인 분위기 조성에 한 몫 하는 요소들이다. 권위적인 조직일수록 리더의 주장에 반대하기 어렵다. 그의 말과 표정, 기분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기며 조직이 가진 자원을 쏟아 넣게 된다.

아무리 탁월한 리더라도 늘 적중할 수만은 없기에, 소수 의견 혹은 반대 없이 나온 결정은 위험하다. 요즘처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산업 환경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기업들은 레드팀을 둔다. 중요한 전략 회의를 할 때 몇 명을 특정해 '무조건 반대' 혹은 '비관적 전망'을 하는 업무를 맡긴다. 이를 통해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기 전에 예측할 수 있는 부정적 상황, 애써 외면한 단점, 놓치고 있는 사항을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드팀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확증편향'(確證偏向)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어서다.

우리는 웹 서핑, 검색, 유튜브, SNS 등 정보를 접할 때마다 해당 플랫폼이 제공하는 알고리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플랫폼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궁금해 하는 정보를 연속적으로 노출시킨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사용자는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네'에서 '내가 역시 맞았다'는 확증편향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물론 그 정보만 취사 선택한 사용자의 잘못이 첫 번째겠지만, 국가원수마저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 계엄 비극을 만들어냈다고 비판받을 정도니 그 위험에 빠져 있는 것은 어느 특정인만은 아닐 수 있다. 시간을 되돌려보면 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레드팀을 둘 뻔 했었다.

2021년 8월 설화가 잇따르자 신지호 당시 국민캠프 정무실장(현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이 레드팀을 제안했다. 하지만 레드팀은 윤 대통령은 물론 캠프 인사들의 반발을 샀고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후에라도 구설이 계속될 때 레드팀을 뒀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의문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그러니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기 전엔 반드시 반대하는 이들이 어떤 이유로 그러는지 꼭 들어봐야 한다. 계엄이란 초현실적인 상황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이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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