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바이오 산업에서 특허 분쟁이 증가함에 따라 국내 기업의 피해를 방지하고자 전문가 참여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업계는 이 법안이 특허 분쟁의 공정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국가전략전술 보호를 위해 특허심판 선진화법(특허법 일부개정법률안,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특허심판 선진화법은 해외 대형 기업과의 특허 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내 기업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특허심판에서 전문심리위원과 기술심리관 참여 제도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가전략기술은 외교·안보 측면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인정되며, 국민경제와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술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 이동수단 △차세대 원자력 △바이오 △우주항공·해양 △수소 △사이버보안 △인공지능 △차세대 통신 △첨단 로봇·제조 △양자 기술 등 12개 분야가 포함된다.
김 의원이 선진화법을 발의한 배경은 기존 특허심판에 전문심리위원과 기술심리관 제도가 도입됐지만, 권고사항에 불과해 활용이 저조하고 이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2022년 기준 우리나의 산업재산권 출원량은 55만 건으로, 지식재산권(IP) 5대 강국 중 3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전문심리위원회의 활용은 26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출원량이 증가함에 따라 특허 분쟁 규모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분쟁 내용 또한 복잡해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심화되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미국에서 진행된 국내 기업의 화학·바이오 분야 특허 침해 소송은 6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9년 3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각 2건, 지난해 4건과 비교해 눈에 띄게 증가한 수치다. 전기·전자 분야 소송은 2021년 110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 8월까지 68건으로 점차 감소하고 있는 반면, 바이오 분야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 발생한 소송 6건 중 5건은 국내 기업이 피소된 사례다.
김 의원은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가전략기술을 세계적인 기업이나 '특허괴물'로부터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며 "일부 대형 기업이 후발주자를 견제하기 위해 고의로 특허 분쟁을 일으키는 사례도 있는 만큼 선진화법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백신 개발 전문 기업인 SK바이오사이언스는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의 특허 소송에 휘말린 적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16년 우리나라 첫 폐렴구균 13가 백신인 '스카이뉴모 프리필드 시린지'를 개발했으나, 화이자가 해당 백신이 자사의 '프리베나13'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진행했다. 대법원은 2018년 화이자의 손을 들어줬고, 이에 따라 SK바이오사이언스는 프리베나13의 특허 존속기간인 2027년 4월까지 자사의 백신 출시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외에도 SK바이오사이언스는 화이자의 자회사가 제기한 특허권 침해금지 소송을 치르기도 했다. 이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러시아 제약사와의 기술이전 계약을 통해 연구용 백신 원액을 수출하면서 불거졌다. 이 또한 화이자 측이 특허침해로 간주하며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당시 SK바이오사이언스는 해당 계약이 연구목적에 국한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화이자는 백신 원액 수출이 완제품 제조에 활용될 수 있다며 앞선 대법원 판결을 위반한 행위라고 반박했다.
1심 재판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승소했다. 연구목적의 백신 원액 수출이 특허권 침해 범위를 벗어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국내 법이 해외 기업의 특허를 과도하게 보장한단 점을 문제로 보고 있다. 여러 기술이 적용된 바이오의약품 특성상 특허법 이외에도 각종 의학적 지식을 요구하는데, 우리나라 사법 기관 등은 현행 특허법 기준만으로 판결을 내린다는 의견이다. 또한 김 의원이 발의한 선진화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대부분의 바이오 분야 특허 분쟁이 법관들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며 "법관들이 짧은 시간 관련 지식을 습득해 판단하고 있어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재판부의 기술 이해도가 기업의 막대한 손익을 가르는 것인데, 선진화법 의무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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