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현동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상호출자 기업집단 간 채무보증을 우회하는 총수익스와프(TRS) 거래를 금지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반쪽짜리 개선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TRS에 대해선 거래할 수 있게 됐고,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내렸던 SK실트론 사례를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지난 19일 예고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적용되는 탈법행위의 유형 및 기준 지정고시' 제정안은 계열사가 발행한 채무증권 등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파생상품을 다른 계열사가 금융기관을 통해 사들여 실질적인 채무보증 효과를 발생시키는 행위를 탈법행위로 규정했다.
공정위는 실질적인 채무보증 효과를 발생시키는 거래로 TRS, 신용연계채권(CLN), 신용부도스와프(CDS) 등을 열거했다. 가장 대표적인 거래 구조가 TRS다. TRS는 대출채권이나 증권 등의 기초자산에서 발생하는 실제 현금흐름과 사전에 정한 확정 현금흐름을 교환하는 거래다.
대출채권이나 회사채의 채무자가 대기업집단의 계열사라면, 이런 기초자산을 보유한 자는 대출금이나 회사채의 채권자가 된다. 이 경우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TRS 계약을 맺으면, 보증인과 채권자 간의 채무보증과 유사한 형태가 된다. 대출채권의 현금흐름을 보장해 주고, 그 대가로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 것이 TRS 계약이기 때문이다.
◇ 채무증권 TRS 금지…주식 연계 TRS는 예외 적용
채권과 채무보증의 이 같은 유사성에 착안해 공정위는 회사채와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TRS를 채무보증 우회 수단으로 명확히 했다. 효성그룹이나 롯데그룹처럼 부실 계열회사를 지원하기 위한 우회 수단으로 CB를 발행하고, 특수목적회사와 계열사 간의 TRS 계약으로 계열회사 지원 효과를 차단한 것이다.
공정위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채무보증 금지 제도 개선은 TRS, 자금보충약정 등을 통한 채무보증 우회 사례가 빈번해진 데 따른 대응 차원이다. 하지만 공정위의 행정예고는 한계도 분명하다. 채무증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TRS만 규제하면, SK실트론 TRS 같은 사례는 용인해 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SK실트론 TRS는 SK실트론이 발행한 주식을 SPC에 넘기고, SPC는 해당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했다. SPC는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TRS 계약을 체결했다. SK실트론 TRS는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거래라는 점에서 금지 대상 TRS라고 할 수 없다.
다만, SK실트론이 주식을 통해 조달한 자금의 상환 의무가 TRS를 통해 최태원 회장에게 이전됐다. 공정위는 해당 거래에 시정명령과 함께 최태원 회장과 SK에 과징금을 부과했었다. 해당 사건에 대해 2심 법원은 SK와 최 회장의 승소 판결을 내렸고, 현재 대법원에서 10개월 넘게 쟁점을 다투고 있다.
공정위의 SK실트론 제재 근거는 공정거래법상의 사업 기회 제공금지 조항이었기에 SK실트론 TRS를 우회 채무보증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은 있다. 그럼에도 총수 개인이 계열사 주식을 대상으로 한 TRS 거래를 통해 지분을 취득하게 된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는 다분하다.
채무증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TRS 금지의 효과는 분명하다. 동시에 그 부작용도 속출할 것으로 예상한다. 당장 최근 대기업집단에서 활발하게 이용하는 주가수익스와프(PRS·Price Return Swap)가 문제다.
◇ SK온 등 PRS 활용 자금조달에 면죄부
PRS는 계약 기간 중 주가 흐름에 따른 차익을 보장해 주는 스와프거래다. 채무증권처럼 원리금에 상당하는 현금흐름의 보장과 이전 형태는 아니지만, 주가 흐름에 해당하는 자금의 이전이 보증과 유사한 형태로 거래된다고 할 수 있다.
SK온은 지난달 제3자배정 유상증자로 1조원을 조달했고, 이달에도 5000억원을 조달했다. 해당 신주는 한국투자증권, 신한은행 등이 설립한 SPC가 인수하고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PRS 계약을 체결했다. 롯데케미칼과 CJ ENM, 넷마블 등도 PRS를 통해 수천억원을 마련했다.
기업들의 PRS를 통한 자금조달 사례는 기초자산이 주식이냐, 채무증권이냐와 상관없이 TRS를 통해 보증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회사의 차입금을 모회사가 담보해 준다면, 자회사에 대한 신용공여 제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자체를 공정거래법상 계열사 간 채무보증으로 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이런 점으로 학계 등에서는 TRS에 대한 제도 보완 방안으로 공정거래법상의 채무보증 금지 조항을 자금보충약정과 TRS, CDS 등 신용공여 성격의 자금 지원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의 필요성을 지적해 왔다.
이에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상의 채무보증 금지 조항을 신용공여 성격의 자금 지원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으로 확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citizen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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