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주주에 대한 이사(理事)의 충실 의무를 명문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자 재계가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 확대로 기업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민주당이 당론으로 정한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가 충실 의무를 다해야 할 대상이 현행 '회사'에서 '모든 주주'로 확대됐다. 또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집중 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규모 확대' 등도 담겼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에 한해 1주 1의결권 원칙에 대한 예외를 두는 것으로 주식 한 주에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소수파 주주도 자신이 원하는 이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넓히자는 취지다.
예를 들면 이사 3명을 뽑을 때 1주를 가진 후보도 3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되고, 이 3표를 자신이 원하는 이사에 몰아줄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감사 선임과 그 과정에 최대주주와 그들의 가족 등 특수관계인까지 합한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주가 부양을 위한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 추진 이유로는 지난 2020년 LG화학이 배터리 사업을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할 때 LG화학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를 들었다.
경제 8단체는 그러나 "섣부른 상법 개정은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돼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훼손시키는 '해외 투기자본 먹튀조장법'으로 작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단체들은 "소송 리스크에 따른 이사의 의사결정 지연은 기업의 신산업 진출을 가로막고, 투기자본에 의한 경영권 공격 확대로 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며 "기업 경쟁력 하락은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켜 선량한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고 국부를 유출시킬 수 있다"고 호소했다.
4대그룹 한 관계자는 "이사충실 의무 대상이 현행 회사에서 '모든 주주'로 확대되면 기업 입장에선 수백만 주주를 만족 시킬 만한 전략을 내놔야 한다"며 "그게 가능한 일인가?"라고 되물었다.
국내에서 지분 1% 미만 소액주주가 많은 기업은 삼성전자, 카카오, 네이버,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이 대표적이다.
지난 연말 기준 삼성전자의 소액주주 수는 460만명, 카카오는 190만명 수준이다. 네이버(96만명), 현대자동차(89만명), LG에너지솔루션(83만명)도 소액주주 수가 많은 국내 대표 기업들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외국기관 연합'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은 지난해 말 기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 기업 150사를 대상으로 '감사 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 투표제'가 도입될 경우를 상정해 이사회 구성 변화 시나리오를 분석한 결과, 외국기관 연합이 30대 기업 중 8곳의 이사회 과반을 차지할 수 있다는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당은 물론 국회 상임위 전문위원들도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 당론 채택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대주주는 물론 소액주주, 기관투자자,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 서로 이해관계가 전혀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이사가 어떻게 모두 보호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정무위원회 전문위원들도 상법 개정안 검토 보고에서 "주주의 개념이 불명확한 점, 기존 법 체계와 정합성(整合性)이 떨어지고 기업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신중한 접근을 권고한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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