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약가인하 등 공약으로 인한 수혜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강화될 가능성으로 인해 불확실성도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의 대선 공약인 '아젠다 47'에는 바이오 관련 주요 정책으로 △약가인하 △생물보안법(Biosecure Act) △해외 생산 의존도 완화 등이 포함됐다.
국내 제약기업 입장에서는 약가인하 공약에 대한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전 재임 기간에도 약가인하를 통한 의료비 절감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이 공약의 핵심은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저렴한 제네릭(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동등생물의약품) 사용을 확대하고, 관련 업체 간의 경쟁을 통해 약가를 낮추겠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정부가 직접 약가를 통제하기보다는 국제 가격 비교를 통해 기업의 자발적인 가격 조정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약가인하 공약은 바이오시밀러 기업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 등이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은 바이오시밀러는 14종에 달한다. 지난달 기준 FDA가 허가한 바이오시밀러 62종 중 미국(24종) 다음으로 많다.
이를 두고 산업연구원은 '미국 대선 시나리오별 한국 산업 영향과 대응방향' 리포트를 통해 "트럼프는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의 사용 촉진에 우호적인 입장이라 한국 바이오시밀러 제품의 수요가 최소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의약품 위탁생산개발(CDMO) 사업에 대한 반사이익 기대감도 있다. 이는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생물보안법 통과를 공약한 데 따른 것이다. 그는 선거에서 "의약품을 포함한 필수 상품의 중국산 수입 중단을 목표로 하는 4년 계획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생물보안법은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발의한 법안으로, 거래 제한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중국 제약사의 유전 정보 수집 제한은 물론 미국 연방과의 계약, 보조금 및 대출 등 자금을 제공받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규제 대상은 우시그룹 산하의 CDMO 기업인 우시바이오로직스와 우시앱텍, 유전체 장비 제조·분석 업체인 베이징유전체연구소(BGI), 컴플리트지노믹스, MGI 등 5개 기업이다.
이들 기업이 규제 대상에 오른 것은 미·중 무역 갈등 속에서 중국 정부가 미국 바이오 시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기업 상당수가 중국 CDMO 업체와 계약을 맺은 데다, 이로 인해 중국이 거둬들이는 수익은 조 단위를 넘어선 상태다.
미국바이오협회(BIO)가 124개 기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9%의 기업이 중국 기반 CDMO 또는 중국 소유의 제조업체와 최소 1개 이상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기준 우시앱텍은 북미 시장에서만 약 169억6500만위안(한화 약 3조2000억원) 매출을,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약 79억9000만위안(한화 1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생물보안법은 올해 9월 하원 본회의에서 306표, 반대 81표로 압도적으로 통과했고, 제정까지는 상원 본회의와 대통령의 서명 단계만 남았다. 올해 1월 발의돼 3개월 만에 상·하원 상임위원회를 모두 통과한 만큼, 향후 열릴 상원 본회의에서도 큰 무리 없이 승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신들은 생물보안법이 최종적으로 70% 확률로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의 성향을 고려할 때, 생물보안법으로 인한 반사이익이 실제로 국내 기업에 돌아갈지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그는 자국 경제를 우선시하는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해왔기 때문에, 의약품 공급 정책에서도 자국산 제품을 우선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020년 8월 그는 미국 연방정부 기관들이 필수의약품과 의료장비를 구매할 때 미국산 제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규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약가인하 공약이 우리나라 기업에 단순한 수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며 "트럼프 2기 정부는 1기 때보다 자국 이익을 더욱 중시하는 기조를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가 개입해 협상력 제고 및 대응 논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업계는 그동안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여러 차례 목소리를 내온 만큼, 이번에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준다면 민관 협력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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