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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7> 오딧세이 시베리아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하리라...더 자주 여행을 다니고 더 자주 노을을 보리라"미국 켄터키주에 살던 나딘스테어 할머니가 85세에 쓴 시'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은 9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에 소개되면 널리 알려졌다. 지난1970년대 소년 윤영선도 김찬삼교수의 세계일주 여행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세계여행을 꿈꾼다. 그의 꿈은 바쁜 관료생활로 하염없이 미뤄졌다. 그랬던 그가 고교 졸업 50년만에 꿈을 실천했다. 나딘스테어 할머니의 시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이르기 까지 50일간의 자동차 여정이다. 그는 여행기간동안 멈춤과 느림의 시간속에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태고적 고원의 웅장함을 느꼈다고 한다. 70 나이에 꿈을 이룬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의 횡단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아침 9시 우수리스크 마르코폴로 여관을 씩씩하게 출발한다. 7월9일 아침 날씨는 15도, 낮 기온은 25도 이내로 매우 쾌적하다. 시베리아는 여름에도 저녁에 이불을 덮고 잔다. 오늘 목적지 하바롭스크까지 680km를 가야 한다. 부산에서 평양까지 거리와 비슷하다.

실제로 오늘이 시베리아 대평원 자동차여행의 첫날이다. 세 대의 차에 2명, 3명, 3명이 나누어 타고, 운전 중 서로 통신은 서울에서 준비해 간 워키토키 무전기로 한다.

먼저 1호차 H회장이 무전기 사용 방법을 알려 준다. 말할 때는 스위치를 누르고 말하고, 본인 말이 끝나면 스위치에서 손을 떼야 한다. 미세스 송이 처음 실수를 자주해서 웃음이 터진다.

차 안에서 바라본 우수리강 원경. [사진=윤영선]
차 안에서 바라본 우수리강 원경. [사진=윤영선]

우리 자동차 옆을 지나가는 러시아 차량 운전사와 승객들이 우리 차를 유심히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엄지척 신호를 보낸다. 휴게소 주차 중에는 지나는 사람들이 자동차 옆에 붙어있는 여행 지도를 호기심으로 바라보며 어디에 가는지 질문을 한다.

우수리스크를 벗어나자 멀리 아무르강 하류 우수리 강이 보인다. 우수리 강에 헤이그 밀사 정사인 '이상설 선생' 유허비가 있다.

이 선생은 1917년 우수리스크에서 사망하였는데,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 유고는 모두 불태워 강물에 흘려보내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으로 유해를 화장 후 우수리 강에 뿌렸다.

광복회가 우수리 강에 이 선생 유허비를 세웠다. 이 선생은 신식 서양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독학으로 수학, 화학, 법학을 공부하였고, 영어, 불어 등 7개 국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탁월한 언어 실력으로 헤이그에서 열리는 1907년 '만국평화회의' 대표가 된 것으로 생각이 든다.

이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수학책을 직접 지어서 고려인 학생에게 '수리 과목'을 가르쳤다. 근대 한국 수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20대 나이에 성균관 대사성을 거친 천재 학자임을 알게 되었다. 성균관대학 600주년 기념관에 역대 대사성 명단과 함께 선생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유유히 흐르는 아무르강에서 맴도는 고혼(孤魂)이시여 이제는 평안하소서" 멀리 고국에서 온 후생(後生) 인사드립니다.

호텔 방에서 미세스 송은 보온병에 뜨거운 물로 인스턴트 믹스 커피를 준비한다. 운전 중 졸음을 예방하기 위해 서울에서 커피, 녹차 등 준비해 왔는데 처음 사용이다.

장거리 여행을 위해 김치, 고추장, 장아치, 컵라면, 팩소주, 햇반 등 한국식품을 가방 한 개에 가득 준비하며, 미세스 송은 "한국인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김치와 고추장을 먹어야 한다. 이것은 한국인 영혼의 음식 '소울 푸드'(soul food)이다."라고 말한다.

30년 전 미국 유학 시절 여름방학 때 가족과 함께 장기간 미국 대륙여행 경험의 노하우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일행이 편도 1차선 시베리아 횡단 간선도로를 달리고 있다. [사진=윤영선]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일행이 편도 1차선 시베리아 횡단 간선도로를 달리고 있다. [사진=윤영선]

'시베리아'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이 있다. "원시림, 광활함, 혹독한 추위, 자작나무 숲, 영화 닥터 지바고의 설원" 등 대자연 관련 단어가 연상된다.

여행은 언제 가느냐가 중요하다. 겨울철, 여름철 대자연의 얼굴은 전혀 다르다. 현재의 시베리아는 초여름 연한 녹색의 향연이다. 위도가 높아 봄이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나뭇잎 색깔이 연한 녹색을 띠고 있다. 차창 밖 줄지어 서있는 연녹색 산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평안하다. 도로 옆으로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산림 사이 사이에 작은 농가 몇 가구, 널따란 대초원 초지, 매우 큰 면적의 농지가 나타난다. 우수리스크를 벗어나서 두 시간 지나니 인가도 거의 없다. 도로 옆으로 모스크바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만났다 헤어졌다 계속 나아간다. 아마도 바이칼호까지 약 3500 킬로를 철도와 나란히 서쪽으로 갈 것이다.

모스크바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 도로는 고속도로가 아니고, 편도 1차선(왕복 2차선) 협소한 길이다. 러시아의 동과 서를 연결하는 국가의 중요한 동맥 도로, 간선도로임에 비추어 SOC 투자가 미흡하다. 산업용 도로이기 때문에 관광객이나 승용차는 적고, 대부분 차는 짐 운반 화물차이다.

겨울철 눈으로 파손된 도로가 제때 보수가 안 되어 곳곳에 포트홀(큰그릇 크기 도로패임)이 매우 많고, 자동차가 튀어 오르는 바운딩이 자주 있어서 운전 여건이 최악이고, 위험한 길이다. 조금만 전방 주시를 잘못하면 포트홀에 빠지고, 바운딩으로 차가 위아래로 요동을 친다.

화물차들은 천천히 달리므로 화물차를 만날 때마다 추월해야 한다. 반대 차선에서 마주 오는 차를 피하면서 중앙선을 넘어서 추월해야 하므로 140, 150킬로 위험한 고속 운전을 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재정이 어려워서 도로보수가 늦은 것으로 추측된다.

자료를 검색해 보니 러시아 국방비가 전쟁 전 GDP 4.3%인데, 지난해는 GDP의 6.7%(한국은 GDP의 2.9%)로 증가했다. 전비 조달을 위해 세금을 대폭 인상한다고 한다. 소득세율은 전쟁 전 13% 단일세율에서 금년부터 최고 22% 누진세율로 인상, 법인세율도 전쟁 전 20%에서 금년부터 2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우리 부부의 '카메이트'인 L실장은 여수에서 오신 분이다. 자동차 드라이브 자체를 좋아해서 장기간 휴가 내고 참가했다. 주말 잔업, 내년 휴가를 앞당겨 사용 등 어렵게 참석하신 분이다. 향후 두 달 동안 좁은 차에서 함께 보내야 할 자동차 가족이다.

첫 번째 휴게소에서 L실장이 자동차 영문 서류를 여관에 놓고 왔다고 말해서 비상이 걸렸다. 휴게소에서 여관까지 뒤돌아 갔다 오면 4시간이 추가로 걸린다. 다행히 트렁크 깊숙이 숨어있는 서류를 찾아서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우리 일행은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임을 인식한다.

점심은 휴게소의 야외 식당에서 소고기 샤슬릭 꼬치구이로 먹기로 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우리를 유혹한 것이다. 샤슬릭 꼬치를 굽는 러시아 직원이 과거 마산에서 일했다고 하면서 반갑게 인사한다.

하바롭스크 러시아정교회 전경. [사진=윤영선]
하바롭스크 러시아정교회 전경. [사진=윤영선]

우리는 계속 광활한 산림과 대평원을 지나간다. 언어와 단어로 광활한 대평원의 느낌을 전달할 수 없다. 현대인들은 속도의 경쟁에서 중압감을 받으며 살아간다. 빌 게이츠가 말한 '빛의 속도로 변하는 시대'에 뒤떨어지면 낙오자가 된다.

영원성(永遠性)과 유한성(有限性)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영원성의 시베리아 대평원에 잠시 다니러 온 유한성의 한국 나그네가 지나가고 있다.

문명 세계의 속도, 빠름, 효율성, 날짜, 요일, 시간관념을 이곳에서는 잠시라도 잊고 싶다. 무심히 창밖의 초원. 산림, 하늘만 쳐다볼 뿐이다. 하바롭스크까지 680킬로의 먼 거리를 달려 가면서 수시로 급변하는 다양한 얼굴의 시베리아를 마주한다.

어느 구역 100킬로는 소나기가 계속 내리고, 어느 구역 200킬로는 햇볕 쨍쨍한 파란 하늘이 이다. 어디 구역은 흐리고, 안개가 짙게 끼어있다. 동해안에서 서울까지 280여 킬로 짧은 거리를 차로 올 때도 날씨가 여러 번 변하는 것과 비교해 본다.

녹색의 대초원과 자작나무 숲속을 지나, 석양 무렵에 목적지 하바롭스크 화려한 러시아정교회 첨탑을 마주한다.

첫날 680킬로를 무사히 달려왔다. 마침 시내에 고려인 식당이 있어서 저녁 식사는 한식으로 한다. 고객은 러시아인들이고, 외국인은 우리들 일행뿐이다. 검색해 보니 고려인 후손이 8000명 산다고 한다. 1991년 소련연방 해체 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다. 음식을 서빙하는 젊은 여직원이 영락없이 고령인 5세처럼 보인다.

이곳은 하바롭스크 주의 주도이며, 러시아 극동에서 가장 큰 도시(인구 60만)이다. 아무르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하룻밤을 묶는다. 아무르강변의 호텔은 전망도 좋고, 침대와 샤워 시설이 매우 깨끗해서 미세스 송이 좋아한다. 샤워실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피로가 풀린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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