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주훈·라창현 기자] 그동안 제3자의 간접 증언만 있었던 공천 개입 의혹이 뒷받침 될 만한 실체가 31일 일부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직접 나서 지난 2022년 6월 재·보궐선거 당시 공천 거래를 의심할 만한 윤 대통령의 음성 파일이 공개한 것이다. 의혹 당사자는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아니라 윤 대통령이 됐다. 이날 녹취 공개를 기점으로 정국은 격랑 속으로 들어갔다.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긴급기자회견 열고 직접 공개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긴급기자회견에서 문제의 녹취파일을 공개한 후 "많은 국민이 공천개입 의혹 관련 '확실한 물증이 없고 전언이다'라고 의심한 것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 '명확한 물증'"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실은 "당시 윤 당선인은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공천 관련 보고를 받은 적도 없고, 또 공천을 지시한 적도 없다"고 일축했지만, 해명과 별개로 이번 음성 파일이 가진 의미는 상당하다는 평가다.
사실관계와 법리공방을 떠나 윤 대통령의 육성이 직접 확인되면서 향후 제기되는 공천개입 의혹은 더 무게를 싣게 됐다. 이번에 공개된 녹취파일이 '제보'에 의한 것으로, 또 다른 결정적 음성 파일도 등장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은 현재 자체 운영 중인 제보센터를 통해 '공천개입'과 관련된 다수의 음성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아이뉴스24>와의 통화에서 "김 여사 문제는 모르는 체 할 수 있고, 국정농단이라고 주장해도 (김 여사에게)법적 권한이 없는 만큼 단순 일탈에 불과할 수 있다"면서도 "윤 대통령이 직접 등장한 것은 그동안의 국면과 다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치권 "더 심각한 통화 있을 수 있어"
개혁신당 관계자도 "윤 대통령의 육성이 등장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한들 이제 상관이 없어졌다"며 "이로써 명씨가 윤 대통령과 나눈 훨씬 심각한 통화가 더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론'도 분수령을 맞게 됐다. 줄곧 탄핵을 주장한 조국혁신당은 이번 녹음파일을 고리로 여론전에 속도를 더욱 올리고 있다. 혁신당 소속 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보다 더 명백한 탄핵 사유는 없다"며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할 동력을 상실한 만큼 즉각 하야하거나, 다음 달 4일 국회 시정연설은 예산안이 아닌 자진 사퇴에 대한 입장 밝혀야 한다"고 윤 대통령을 압박했다.
다만, 민주당은 신중한 분위기다. '심리적 탄핵'이라는 공세를 통해 '탄핵 여론전'에 동참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대통령 탄핵 요건을 충족할 만 한 물증이 없기 때문에 실제 탄핵을 주도할 경우 기각 결정 가능성에 따른 역풍을 맞을 위험이 있다. 이에 따라 우선적으론 여당의 분열을 노리고 있다. 탄핵 소추 가결에 따른 의석수를 우선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민주 "진실 밝힐 여정에 여당도 협조해야"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변명과 거짓 해명으로 이 사안을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절대 그렇게는 안 될 것"이라며 "대통령의 코가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고 있는데, 국민이 대통령을 신뢰할 수 있겠나"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여정에 여당은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정치권에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행보에도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대통령실·친윤(친윤석열)계와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 대표 입장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영향력을 키울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당내 분열로 탄핵 국면까지 치달을 경우, 이를 방어할 마지막 인사가 한 대표라는 것이다. 그동안 세몰이로 한 대표를 눌러왔던 윤 대통령 입장에선 '거래'를 해야 할 시점까지 왔다는 관측이다.
개혁신당 관계자는 "한 대표는 주도권 확보를 위해 그동안 주장했던 김 여사를 내달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며 "윤 대통령도 현재 상황에선 팔 하나는 내줘야 하는 상황이고, 다음 주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내려가는 상황이라도 온다면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尹 탄핵' 현실화 가능성은 의문
정치권과 별개로 전문가들은 아직 탄핵 국면까지 부상할 '결정적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의 육성이 등장했지만, 민심을 탄핵으로 향하게 할 동력에는 미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정치권에서 탄핵을 밀어붙인다고 탄핵당하는 게 아니라 과거 박근혜 정부 때 촛불혁명처럼 여론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면서 "설령 불법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처럼 사안이 위중하지 않으면 탄핵 결정 안 되니까 (민주당으로서는) 적극적으로 탄핵을 밀어붙이진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거 하나만 가지고 대통령 탄핵을 시키긴 쉽지 않다"며 "잘못 탄핵소추 했다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면 역풍이 불어 코너에 몰려 있던 윤 대통령이 살아난다"며 "(탄핵은) 차후로 미룬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민주당에서 저렇게 하는 이유는 대통령의 사실상 퇴진 투쟁에 들어가는 건데, 김건희 특검법은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 대표가 딜레마 속에서 우왕좌왕하면서 결국 신뢰를 잃을 것이고, 이를 계기로 야당은 총공세를 펼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발뺌하면서 시간을 끌면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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