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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대놓고' 무시하는 정부…반복 지적해도 고쳐지지 않아


정부 중앙부처‧공공기관 보도자료, ‘한글’ 대신 ‘한자식 표현’ 중심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정부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이 내놓는 보도자료를 보면 한글을 사용하려고 노력하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이 매일 내놓은 보도자료엔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한자식 표현이 많다. 한글로 써도 아름다운 단어가 있음에도 굳이 한자식 표현를 고집한다.

당당하다 못해 복지부동(伏地不動)이고, 왜 고쳐지지 않는지, 노력은 하는 것인지 연민이 들 정도이다.

우리나라는 한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자를 풀어쓰면 어색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도 현실이다. 문제는 한자를 쓰지 않고 한글로 써도 되는 말과 단어까지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이 한자식 표현을 고집한다는 데 있다.

지난해 한글날, 인천시 연수구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찾은 시민들이 한글관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30일 내놓은 보도자료 ‘미래 준비를 위해 청년들의 인식과 고민에 대해 소통’에서 “금년말 발표 예정인 ‘미래세대 비전 및 중장기전략’에 청년들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 검토해 반영하겠다고 밝혔다”라고 썼다.

‘금년’은 국립국어원에서 ‘올해’로 고쳐 쓰도록 요청한 지 오래다. ‘ 및’이란 표현도 ‘~와, ~과’로 쓰면 더 좋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은 지난달 26일 ‘국조실-외교부 합동 2030 청년 대상 개발 협력 정책 간담회 개최’라는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이 보도자료에서 “ODA에 대한 청년층, 대국민 인지도와 지지도를 제고할 방안을 논의했다”고 표현했다.

국립국어원은 ‘제고’를 ‘높이는’ 등의 한글로 풀어쓸 것을 권고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6월 28일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인공지능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규제를 발굴하고, 규제유예 대상으로 기획·추진…”이라고 썼다. 여기서 ‘기여’는 ‘이바지’로 고쳐 쓰도록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일 ‘미동부 항만노조 파업 긴급 상황 점검’이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서 산업부는 “정부는 금번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하여 수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수출기업 비상 지원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하여 신속하게 추진하기로 하였다”고 썼다.

해당 보도자료에서 ‘금번’이란 단어는 수 차례 더 사용됐다. 국립국어원 등은 ‘금번’은 ‘이번’으로 바꿔 쓸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이 밖에도 공공기관의 보도자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으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대표 한자식 표현을 꼽아 보면 △조속히(빨리) △금번(이번) △금일(오늘) △익일(다음 날/이튿날) △소관·관할(담당) △기 통보한(이미 통보한) △지체없이(곧바로) △동 사안은(이번 사안은) △해소하며(없애며) △감안하여(고려하여) △~를 득하지 않고(~를 받지 않고) △수여하고자(주고자) △사료됨(생각함) △향후(앞으로) △~에 위치한(~에 있는, ~에 자리 잡은) △약 30여명(약 30명 또는 30여 명) △전년 대비(지난해보다) △기일을 엄수해(날짜를 지켜) △유관 기관(관계 기관) △면밀히(자세히) △타 학교(다른 학교) △게재되다(실리다) △필히(반드시) △상기(위의) △연루되어(관련되어) 등이다.

현재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이 고집하는 형식과 단어를 토대로 하나의 보도자료를 작성하면 아래와 같다.

○○○ 장관은 소관 기관장과 함께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과 관련해 9일 간담회를 개최했다. 금번 간담회는 기 통보한 R&D 예산안을 토대로 전년 대비 늘어난 예산안에 대해 장관이 관련 설명을 하면서 시작했다. 금번 간담회는 타 부처와 구별되는 예산안을 설명하고 향후 집중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 장관은 “예산 집행 시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장관은 “지체없이 예산안이 현실 부분에 적용될 수 있도록 유관 기관장들은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라며 “부작용은 해소하고, 구체적 현실을 감안해 예산안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금번 간담회는 서울 중구에 위치한 △△△에서 열렸다. 간담회에는 A 기관장을 비롯해 약 30여명이 참석했다.

이를 국립국어원에서 권고하는 단어와 형식으로 고쳐 쓰면 다음과 같다.

○○○ 장관은 담당 기관장과 함께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과 관련해 간담회를 9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이미 통보한 R&D 예산안을 토대로 지난해보다 늘어난 예산안에 대해 장관이 관련 설명을 하면서 시작했다. 이번 간담회는 다른 부처와 구별되는 예산안을 설명하고 앞으로 집중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 장관은 “예산을 집행할 때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장관은 “곧바로 예산안이 현실 부분에 적용될 수 있도록 관계 기관장들은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라며 “부작용은 없애고 구체적 현실을 고려해 예산안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간담회는 서울 중구에 있는 △△△에서 열렸다. 간담회에는 A 기관장을 비롯해 약 30명이 참석했다.

어떤 보도자료가 더 읽기 쉽고 눈에 들어오는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국립국어원은 2014년 수정해야 할 단어들을 정리해 ‘한눈에 알아보는 공공언어 바로 쓰기(공공언어 바로 쓰기)’라는 책자를 만들어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에 배포한 바 있다. 2019년 개정판까지 만들어 여러 부처에 제공했음에도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한글날만 되면 반복되는 기사와 여전히 바뀌지 않는 중앙부처의 태도가 빚어내고 있는 ‘악순환’이다.

‘공공언어 바로 쓰기’는 공공기관 보도자료 등 공문서에 대해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 사용 △지나치게 긴 문장 삼가기 △조사 어미 등 생략할 때 어법 고려 △어색한 피동 표현 자제 △한자식(~적인, ~하에 등) 표현 삼가기 △일본식 표현(~에서의 등) 자제 등을 주문했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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