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태헌 기자] 쿠팡이 8일 1분기 실적 발표에서 분기 매출 9조원을 사상 처음으로 돌파한 가운데, 한국 제조업체들이 만든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의 직매입과 구매를 22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중국산 극초저가 상품을 앞세워 한국 유통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중국 알리 익스프레스·테무 공습에 어려움을 겪어온 품질 좋은 국산 중소기업 등의 제조사 상품을 크게 늘려 한국 제조업 생태계를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컨퍼런스콜을 통해 "2024년은 한국 중소기업과 제조사들에 대해 필수적인 지원을 확대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중국의 초저가 제품에 직격탄을 맞은 패션이나 의류, 액세서리 분야의 한국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쿠팡의 직매입과 판매가 크게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韓 제조사 상품 판매 규모 1년 만에 '5조' 늘린다…中 타격 심한 패션 中小 등 수혜예상
김 의장은 이날 한국 제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올해 국산 제조사 제품을 대대적으로 늘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한국 제조사 상품의 구매와 판매 규모를 지난해 17조원(130억달러)에서 올해 약 22조원(160억달러)으로 늘리겠다"며 "2024년은 한국 제조업과 중소기업 파트너들에게 필수적인 지원을 확대하는 중요한 한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5조원 가량의 국산 제품을 추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쿠팡의 국내 프로덕트 커머스(로켓배송·로켓프레시 등) 매출은 30조7998억원으로 국내 제조사 비중(17조원)은 56% 수준이다. 하지만 올해 국내 제조사 제품을 22조원으로 늘릴 경우, 지난해 대비 한국 제조사 제품 비중이 7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쿠팡은 분기 사상 처음으로 매출 9조원을 돌파, 9조4505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8% 성장했다. 프로덕트 커머스 활성고객(제품을 분기에 한번이라도 산 고객)은 2150만명으로, 전년(1860만명)과 비교해 16% 늘어났다. 매출은 크게 올랐지만, 영업이익(531억원)은 전년 대비 61% 감소했고, 순이익은 적자전환해 당기순손실 318억원을 기록했다. 분기 당기순손실은 2022년 2분기 이후 7분기 만이다.
영업이익이 크게 하락하고 당기순손실을 낸 상황에서도 쿠팡이 중국산 제품 대신 국산품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이어서 주목된다.
김범석 의장은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진출은 업계 진입 장벽이 낮으며, 유통산업은 어떤 산업보다 고객들이 클릭 만으로 몇 초 만에 쇼핑 옵션을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고객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소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차이나 커머스 등장으로 ‘락인’(lock-in) 효과가 사라진 유통시장에서 고객의 마음을 다시 끌어오기 위해 국산품을 크게 늘리겠다는 것이다. 최근 알리와 테무는 가격은 저렴하지만 저품질과 미인증 문제가 불거져 나왔고, 유사상품·가품 문제 또한 지속적으로 지적받고 있다.
쿠팡이 한국 중소기업과 제조사에 대한 직매입을 확대하면 중국 초저가 상품에 맞대응이 어려운 국내 패션·가전부터 지방 농가의 매출도 올해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수도권 공장에서 양말을 생산하는 '팝콘앤키키' 이동현 대표는 "과거 코로나 여파로 경영위기에 몰렸다가 쿠팡 입점 이후 매년 20~30%씩 성장하다 지난해 매출 180억원을 냈다"며 "한번 쓰고 버리는 저품질의 중국 양말 물량이 몰려오면서 버텨낼 힘이 점점 없어지고 있지만, 쿠팡의 직매입과 로켓배송으로 버티고 있다. 쿠팡 매출이 50% 이상인만큼 쿠팡이 무너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2014년 로켓배송 출범 이후 10년간 성공을 이끈 핵심 요인 중 하나로 브랜드 인지도는 작지만 국산 중소기업의 품질력 높은 상품이 지목됐다. 쿠팡의 소상공인(매출 30억원 이하) 수는 2015년 1만2161명에서 지난해 21만명으로 20배 이상 늘어났고, 쿠팡 전체 입점 업체 가운데 중소상공인 비중도 80%에 육박하고 있다.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매년 20~30%에서 2~3배 이상의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25년째 직접 국내 공장에서 의류를 제조·생산해온 '문컬렉션' 문장현 대표는 "도매 유통으로 도저히 우후죽순 생기는 신규 플랫폼과 경쟁으로 운영에 위기를 겪어왔다"며 "2022년 쿠팡 입점 이후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뛰며 안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직매입 확대로 '신선신품 새벽배송'…전국 농어촌도 성장세 가팔라질 듯
중국 알리와 테무에는 없는 강점인 신선식품 새벽배송(로켓프레시)에 납품하는 지방 농가의 과일과 채소,수산물 등에 대한 직매입 규모도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로켓프레시는 이번 1분기 전년 동기와 비교해 70% 성장했다"며 "지방 농가와 어가에 대한 직매입 확대로 이들에게 중요한 지원을 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은 시간과 자금을 절약했다"고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12월 1일 기준 농가 수는 전년보다 2.3%(2만3800가구) 감소한 99만9000가구로, 저출산과 인구감소 여파로 사상 처음 100만 가구가 무너지면서 활성화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방의 잦은 기후 변동, 복잡한 도매 유통 구조 등도 작용한다.
하지만 쿠팡과 손을 잡은 농가들은 올해 성장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경남 창녕군 농업회사법인 ‘신신팜’은 올해 쿠팡의 직매입 확대로 매출 300억원을 목표하고 있다. 지난해 창립 이후 15년 만에 최대인 매출 220억원을 냈는데 올해 성장 목표치가 훨씬 높아졌다. 쿠팡 납품 전인 지난 2019년 전체 매출이 100억원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5년 만에 3배 성장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신신팜 최상록 대표는 "복잡한 유통구조가 아닌 직거래 기반의 유통업계 유일한 새벽배송으로 갓 재배한 싱싱한 농산물로 전국 판로를 확대하게 됐다"며 "폭염 같은 기후 변화, 소비자 가격이 크게 오르는 도매 유통 관행을 뒤집은 쿠팡에서의 성장 덕분에 동남아 수출길도 열리게 됐다"고 전했다.
우박이나 냉해, 폭염 같은 기후변동으로 시즌마다 쿠팡이 대규모로 매입해온 못난이 채소나 과일도 확대될 것으로 관측된다. 쿠팡은 지난 2022년부터 최근까지 5차례에 거쳐 1300톤의 농산물을 매입했다. 지난 3월엔 토마토, 사과, 참외 등 900여톤을 전국 주요 농가에서 매입해 할인 행사를 벌였다. 쿠팡은 그동안 경북, 경남, 전북, 충북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지역 농산물 판촉을 촉진해왔는데, 이러한 협업도 늘어날 전망이다.
오픈마켓(마켓플레이스) 판매자도 로켓배송을 이용할 수 있는 로켓그로스(판매자 로켓)도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공장이나 농가를 운영하지 않은 소규모 판매자들은 제품 생산 규모가 적어도 쿠팡이 입출고와 반품, 배송, 보관을 대행해주는 로켓그로스를 이용해 로켓배송을 해왔다. 김 의장은 "이번 분기 로켓그로스 판매 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30% 성장했다"며 "판매자의 80% 이상은 로켓그로스 시작한 이후, 90일 이내에 매출이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한편 쿠팡이 최근 중국 이커머스에 대응해 향후 3년간 3조원 물류 투자를 확대해 전국 5000만 인구에게 로켓배송 시행을 추진한다. 쿠팡은 현재 182개 시군구(전체 260개)에서 로켓배송을 운영 중인데, 앞으로 경상도·전라도·충청도 등 저출산 직격탄을 맞은 인구감소지역을 포함해 230개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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