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보선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정부 출범 720일 만인 29일 처음 머리를 맞대고 '민생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약 2시간 15분간의 이날 회담을 대통령실은 "야당과의 소통, 협치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국정기조 전환 의지가 전혀 없다"라고 냉담하게 평가했다.
◇이재명 "가족 의혹 등 정리해야" 작심 발언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이 대표와 약 2시간 15분간 대화했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에서 각각 3명이 배석한 가운데 열린 회담에서 두 사람이 '독대'하는 시간이 있을지 관심을 모았지만 대화는 8명이 앉은 상태에서만 계속됐다. 별도의 공동 합의문 도출도 없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두 분이 따로 만날 시간이 없었다"고 전했다.
회담은 화기애애하게 시작됐으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날이 서 있다는 평가다. 회담 후 양측 분위기도 엇갈렸다.
이도운 홍보수석은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전체적으로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생 문제에 대해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 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이해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혹평했다. 이 대표는 "답답하고 아쉬웠다"는 소회를 밝혔다고 박 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이 대표가 오후 2시 4분쯤 집무실로 들어서며 "아이고 대통령님" 하며 인사를 건네자, "오랜만입니다"라며 반갑게 맞았다.
이 대표는 라운드 테이블에 앉은 뒤 준비한 모두발언을 하기 위해 A4 용지를 안쪽 주머니에서 꺼내△언론사 압수수색 △긴급 민생회복 조치 △R&D 예산 복원 △이태원특별법 △특검법 △의정 갈등 해결 △연금개혁 △과도한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저출생 대책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로의 전환 등으로 민감한 현안을 줄줄이 언급했다.
이 대표는 "최근에 정부 비판적 방송에 대해 중징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매우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평가받던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 스웨덴 연구기관이 '독재화가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다"고 했다.
이어 민생 경제의 어려움을 얘기하면서 '전 국민 25만 원 지원금 지급' 화두를 꺼냈다. 그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라며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 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시기 부탁드린다"고 했다.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이나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 회복 지원금은 꼭 수용해 달라"고 강조했다.
잦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대한 윤 대통령의 '유감 표명'도 요구했다. 이 대표는 "과도한 거부권 행사, 또 입법권을 침해하는 시행령 통치, 인사청문회 무력화 같은 이런 조치들은 민주공화국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삼권분립,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나 특검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대해서 유감 표명과 함께 향후 국회 결정을 존중하겠다라는 약속을 해 주시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고, 또 정중하게 요청드리는 바다"라고 말했다.
특히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이라는 표현을 쓰며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도 회담 의제로 꺼냈다. 이 대표로서는 할 말을 다 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좋은 말씀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곧이어 "평소에 우리 이 대표님과 민주당에서 강조해 오던 얘기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실 것으로 저희가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尹, '전 국민 지원금' 요구 사실상 일축
비공개 회담으로 전환된 뒤에도 두 사람은 현안 곳곳에서 시각차를 드러냈다.
배석한 이도운 수석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 대표가 제안한 '긴급 민생 회복 조치'와 관련해 "물가, 금리, 재정 상황 등이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지금 상황에서는 어려운 분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똑같이 나눠주는 방식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거듭 밝힌 것이다.
'여야정 협의체' 가동에 대해서도 시각차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 대표는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고 답했다고 한다.
의료개혁, 여야 3자 회동, 이태원 참사법 등에 대해선 일부 공감대를 확인했다.
이 수석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정원 증원도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 대표는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다.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며 "민주당도 협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영수회담 등 만남 정례화에 대해선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 체제가 들어서면 삼자 회동도 할 수 있다"며 "어떤 형식이든 계속 해 나가기로 했다"고 이 수석은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선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방지책, 피해자 유족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면서도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민간조사위원회에서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법리적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은 해소하고 다시 논의한다면 무조건 반대는 아니다"라는 취지로 윤 대통령이 말했다고 한다.
회담에서는 관심을 모은 한덕수 국무총리 후임 인선에 대한 의견 교환도 이뤄지지 않았다.
/김보선 기자(sonnta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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