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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빌린 돈 안 갚아야 대접받는 사회


[아이뉴스24 박은경 기자] "이러면 누가 제때 돈을 갚겠습니까?"

은행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 한마디는 시장 질서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신용을 믿고 돈을 내주는 금융거래에서, 신용에 금이 가는 순간이다. 금융회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 불이익이 없다면, 도덕적해이를 막기는 힘들다.

저신용 차주의 재기를 돕는다는 취지에 반대하는 이는 없다. 그러나 '연체기록 삭제가 저신용 차주의 재기를 돕느냐'는 질문에는 금융업계 관계자 대부분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관계자들은 저신용 차주를 위해선 연체기록 삭제보다 채무조정을 확대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모든 연체자가 저소득·취약계층이 아닌 데다, 상환 여력이 갑자기 나아질 수도 없는 일이어서 그렇다.

금융위원회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금융위원회는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정책이 아니다"고 해명하지만, 신용 사면은 지난 11일 당정협의회에서 얘기가 나온 지 하루 만에 발표됐다.

금융위원회 등의 설치에 관한 법률(금융위원회법)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건전한 신용 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을 확립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는 스스로 건전한 신용 질서를 흐트러트리고, 금융거래 시스템을 깼다.

지난해 말 발표한 '은행권 민생금융 지원방안'도 매한가지다. 총공급 2조원 중 소상공인에 1조6000억원의 이자를 환급해 줬다. 나머지 4000만원도 소상공인의 임대료와 전기세를 내고 남은 금액을 취약계층에 공급한다고 했다.

당시 한 경제학과 교수는 "소상공인에 대한 매표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때도 윤석열 대통령이 "소상공인이 은행의 종노릇 한다"는 발언이 있은 지 두 달 만에 발표한 정책이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9월 26일 윤 대통령이 "보이스피싱을 엄단하겠다"는 발언이 있은 지 두 주도 지나지 않아 '비대면 금융사고 예방 추진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금융당국과 감독 당국이 포퓰리즘에 얼마나 젖어있는지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중앙 행정기관인 금융위가 정부의 정책을 반영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시장 질서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설립 취지를 벗어나 스스로 정체성을 부인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다.

/박은경 기자(mylife1440@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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