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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진단 면제보다 침체된 시장이 문제죠" [르포]


강남 재건축 단지 "작년 약속한 실거주의무 폐지도 물건너가"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재거축 중심 정책 변화에 '혼란'

[아이뉴스24 이수현 기자] "실거주의무 폐지를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한 지가 1년이 넘었는데, 이젠 아예 물건너간 상황 아니에요. 안전진단 폐지는 다를까요? 총선 앞두고 표 얻으려고 발표만 한 것일 수도 있으니 현장에서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경기도 고양시를 찾아 나서 안전진단 면제 등을 담은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한지 하루 지난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일대 재건축 추진 아파트단지의 분위기를 파악해보려고 인근 공인중개업소 A씨에게 문의를 해보니 회의적인 답이 돌아왔다.

또다른 중개업소 대표 B씨는 이렇게 말했다. "안전진단이 사라지면 재건축 속도가 빨라지니 주민들은 기대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공사비는 오르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로 시장이 침체돼 있는 현실이 더 중요한 열쇠 같아요. 안전진단 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할지 모르겠어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샘터마을 아파트 전경. [사진=이수현 기자]

정비사업 문턱을 낮춰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며 의욕적으로 발표한 정부 정책방향에 대해 기대감보다는 신중함이 물씬 묻어나는 현장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 중개업소 대표는 이어 경기 침체와 고금리 등으로 인해 이미 주택 구매 수요가 급감했는데 정부 발표 하나로 살아나겠느냐고 되물었다.

정부는 준공 후 30년이 지나면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물론, 재개발 노후도 요건을 기존 3분의 2에서 60%로 완화하기로 했다. 또한 주거지역 평균용적률을 100%포인트(p) 내외로 상향하고 3종 일반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하면 최대 500%까지 높일 수 있도록 했다.

발표 이후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과 수서동은 대표적인 정책 수혜 지역으로 평가 받았다. 1990년대초 수서택지지구가 개발된 해당 지역은 상록수(740가구)와 까치마을(1404가구), 가람(496가구), 푸른마을(930세대) 등 대부분 단지가 1993~1994년 준공돼 재건축 요건을 갖췄다.

하지만 재건축 추진 단지 조합들의 움직임과 별개로 정부 발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여소야대 국면 속 안전진단 폐지를 위한 법 개정 자체가 쉽지 않고, 개정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딱히 달라질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11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상록수아파트에 정밀안전진단을 위한 주민 모금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이수현 기자]

상록수 아파트 정문에는 정밀안전진단을 위한 주민 모금을 요청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상록수와 가람 아파트는 지난해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한 후 지난달 강남구청으로부터 재건축사업 정밀안전진단 용역 실시계획을 전달받은 상태다.

상록수 아파트 주민 C씨는 "이미 상록수아파트는 주민 모금까지 진행해 정밀안전진단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 발표가 나왔지만 확실히 시행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나. 사업은 계획 변경 없이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록수아파트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안전진단이 면제된다고 해도 시장 상황이 너무 나쁘다. 재건축을 쉽게 추질할 수 있게 해줘도 천문학적인 분담금이 필요하다고 하면 정비사업을 추진하려고 나설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11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까치마을아파트에 리모델링 주택조합설립 추진위원회 안내문이 걸려있다. [사진=이수현 기자]

까치마을 아파트에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현재 까치마을 아파트는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준비하는 단체가 각자 주민 동의를 모으고 있다.

까치마을 아파트 주민 D씨는 "이전에는 까치마을 아파트 재건축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리모델링을 원하는 주민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해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면서 "현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면서 리모델링을 원한 주민 일부가 재건축으로 선회했다. 정권에 따라 정책이 달라지니 리모델링과 재건축 모두 사업을 위한 충분한 주민 동의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까치마을아파트 인근 중개업소 사장 E씨는 "인근 지역 아파트는 재건축을 추진하기 어렵다보니 최근까지 엘리베이터 교체 등 단지를 보수했다"며 "이미 현 단지에서 거주하기 위해 단지를 정비한 만큼 재건축 사업을 추진할만큼 동력을 모으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정책에 주민 뿐 아니라 관련 단체도 불만을 털어놨다. 11일 서울리모델링주택조합협의회는 "서울의 고(高) 용적률 단지의 경우 종상향이 되더라도 재건축이 사실상 불가하다. 전국의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140여개 조합, 120여개 추진위원회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대책은 주택 정책임에도 전국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며 “노후화되는 주택에 재건축만이 정답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윤 정부에게 대선 당시 국민과 약속한 공약을 이행해주길 재차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수현 기자(jwdo9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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