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유범열 기자] 국민의힘의 '히든카드'로 꼽혔던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 21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했다.
한 전 장관은 같은 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퇴임식 후 기자들과 만나 비대위원장직 수락 이유에 대해 "9회 말 2아웃 2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애매해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며 "용기와 헌신으로 해내겠다. 국민의힘을 이기는 정당으로 이끌어가겠다"고 밝혔다.
총선을 앞두고 위기에 놓인 당을 이끌게 된 만큼, 비대위원장으로서 한 전 장관의 책임은 막중하다. 이런 가운데 그가 역대 당의 비대위 흥망을 살펴보면 국민의힘을 '어떻게 하면 이기는 정당으로 만들 수 있을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 '김희옥 비대위', 계파 가운데서 우왕좌왕
지난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과반에 한참 못 미치는 122석을 얻어, 더불어민주당에 원내 1당 자리를 빼앗긴 김무성 대표 체제는 선거 직후 붕괴했다. 총선 패배 책임이 당에 있는지, 청와대에 있는지를 두고 벌어진 친박과 비박 간의 계파갈등은 차기 지도체제 수립 과정까지 이어졌다.
결국 그해 5월 당시 정진석 원내대표와 비박계 수장으로 꼽힌 김무성 전 대표, 친박계 수장으로 꼽힌 최경환 의원이 3자 회동을 통해 김희옥 전 법무부차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세웠다. 김 당시 비대위원장은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혁신하겠다"며 그해 8월 예정된 전당대회 전까지 직을 수행했다.
다만 김희옥 비대위는 3개월 남짓 시간 동안 별 힘을 쓰지 못했다는 평가다. 6월 김희옥 비대위가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에 이른바 '배신의 정치'로 찍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유승민 의원을 윤상현 의원 등과 함께 복당시켰고, 이에 친박계가 집단 반발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김 비대위원장이 친박계 편을 드는듯한 모습을 보이며 비대위 회의에서 복당안 표결 처리에 반대하자, 비박계는 정진석 원내대표 중심으로 그를 강하게 비토했다. 이에 김 비대위원장이 당무를 거부하면서 당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결국 정 원내대표가 김 비대위원장에게 "복당 처리 과정에서 너무나 거칠고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언사를 행했다"며 사과하고, 김 비대위원장이 당무에 복귀하면서 갈등은 일단 봉합되는 듯 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전당대회에서 친박계인 이정현 당시 의원이 대표 자리에 오르며 잔존하고 있었던 ‘친박·비박 계파갈등’이 다시 머리를 들었다.
◇ '친박계' 청산 실패한 '인명진 비대위'
새누리당 비대위는 이정현 당시 대표가 취임한지 불과 4개월만에 다시 꾸려지게 됐다. 이 대표 취임 두 달만인 2016년 10월 터진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능성이 제기되자, 이 대표는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고, 당 내 이탈표를 포함 가결표가 무려 234표로 박 대통령이 직무정지되자 이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대표 사퇴 이후인 2016년 12월 당은 인명진 전 윤리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인 비대위원장의 당면 과제는 박 대통령 탄핵에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친박계 인적 청산'이었다.
그는 같은 달 30일 "박근혜정부 하에서 새누리당 4년간 책임있던 자리에 있으면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사람, 당대표면 당대표, 정부 중요자리에 들어간 사람은 대통령을 잘 못 모셨으니 책임져야 한다"며 친박계 핵심을 향해 이듬해 1월 6일까지 탈당하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를 받아든 친박계는 반발했고, 당시 계파 핵심으로 꼽힌 서청원 의원과 최경환 의원을 중심으로 인 위원장과 지속적으로 대립각을 세웠다. 당대표를 지냈던 이정현 의원이 탄핵 사태 책임을 지고 2017년 1월 초 사퇴했으나, 인 위원장이 줄곧 요구해온 친박 핵심 탈당은 거기서 끝이었다.
결국 비박계 주요 인사들이 바른정당을 창당하면서 당이 사실상 분당됐고, 이에 쇄신 작업에 힘을 실어줄 세력이 쪼그라들면서 인 위원장은 벽에 부딪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열린 19대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후보가 선출됐지만 이렇다 할 소득 없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지율 반등에 실패한 당 역시 5월 열린 대선에서 참패했다.
◇ 대통령과 선 그은 '선거의 여왕'
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항상 실패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11년 박근혜 비대위'는 여야를 통틀어 역대 최고 비대위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박근혜 비대위는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1년 당시 국민의힘 전신이던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연패를 거두고, 여기에 당 소속 보좌진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개입사건이 터져 홍준표 체제가 무너지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꾸려졌다.
당시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꼽혔던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 영향에서 벗어나 당 쇄신에 박차를 가했다. 우선 비대위 인선부터 화제였다. 박 비대위원장은 당연직 비대위원인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제외한 모두를 초선 의원과 외부 인사 등 '신인'으로 채웠다. 그는 김세연 당시 의원과 이준석 클라셰스튜디오 대표, 김종인 전 경제수석, 이상돈 중앙대 교수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당명과 당을 대표하는 색도 각각 새누리당과 붉은색으로 바꿨다.
2012년 19대 총선 과정에서는 '경제민주화' 등 중도 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함과 동시에 현역 의원을 대거(25%) 컷오프하며 국민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해 총선 과반 승리를 가져왔다. 박 비대위원장은 같은 해 열린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며 비대위는 당 재집권 성공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 김종인, '대국민 사과'·파격적 쇄신
김종인 비대위는 미래통합당이라는 이름으로 치른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황교안 체제가 더불어민주당에 180석을 내주고 무너지며 등장했다. 앞서 김 비대위원장은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으로 20대 총선 민주당의 선전을 이끈 바 있기에 당 안팎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비대위원장은 전국 선거가 없었기에 공천권을 가지지는 못했으나 총선 참패로 혼란에 빠졌던 당을 비교적 잘 재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9월 당명을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꾼 그는 12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수감과 관련해 비대위원장 이름으로 대국민 사과에도 나섰다.
잃었던 지지율을 차츰 회복하기 시작한 국민의힘은 이듬해인 2021년 4월 열린 서울시장·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하며, 2016년 20대 총선 패배 이후로 시작됐던 당 암흑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거 사례로 비춰볼 때, 한 전 장관이 비대위원장으로 국민의힘을 다시금 '이기는 정당'으로 만들려면 '변화를 완성시켜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변화를 꾀하기는 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실패한 김희옥·인명진 비대위는 당을 더 깊은 수렁에 빠뜨렸다. 그러나 내부 잡음에도 변화 드라이브를 확실히 건 박근혜·김종인 비대위는 당을 다시 본궤도로 올려놨다.
일단 한 전 장관이 현재 당 내 어떤 주요 정치인보다 전국적 지명도가 높고, 차기 지도자 선호도에서도 현재 여권 1위를 달리고 있는 만큼, 그가 쇄신 의지를 강력히 할 경우 당 내에서 집단 반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한 전 장관도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지난 19일 법제사법위원회 회의 참석 차 국회를 찾은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에서 윤석열 아바타라고 비판하고 있다'는 말에 "자신은 공직 생활을 하면서 공공선을 추구한다는 한가지만 생각하면서 살아왔고 누구도 맹종한 적이 없다"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특수관계’ 우려를 지적한 질문이었으나 이를 일축하고 '소신과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 근원적 숙제, '대통령과 거리두기'
다만 한 전 장관이 윤 대통령에 의해 '정권 핵심' 자리에 올라, 윤 대통령과 당 주류 그룹인 '친윤(친윤석열) 중진·영남' 의원의 그늘을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박근혜 비대위와 김종인 비대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전국적 지명도, 주류와의 무관'이라는 두 요소를 다 갖췄기 때문"이라면서 "(친윤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인 한 전 장관이 당 주류 정리 작업을 제대로 하고 윤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이 평론가는 또 "그렇게 되면 주류 기득권이 더 공고해지는 것인데, 국민들이 그것을 혁신이라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범열 기자(heat@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