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태헌 기자] '닭고기 전문 기업' 하림이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옛 현대상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번 협상 대상자 선정을 두고 하림의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보다 △매수 대금 △선박 물동량 감소 △노조 반발까지 겹쳐 오히려 '승자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HMM의 채권단인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HMM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지난 18일 하림그룹을 선정했다. 하림 측도 HMM 경영권 매도인 측으로부터 이 같은 결과를 통보 받았다고 확인하면서 본격 인수 절차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하림이 HMM을 인수할 경우 소유 중인 팬오션과 함께 컨테이너와 벌크, 특수선을 모두 커버할 수 있어 이상적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HMM은 현재 컨테이너선 105척을 가졌고 팬오션은 9척을 보유하고 있다. 또 벌크선은 팬오션이 199척, HMM이 34척을 소유해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인수전이 마무리되면 하림은 국내 1위 벌크 해운사와 글로벌 8위 컨테이너선사를 소유해 현재 재계 27위에서 13위로 점프한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하림이 HMM을 인수할 경우 이 같은 시너지 효과보다 오히려 자금난 등에 빠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림은 HMM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 57.9%를 약 6조4000억원에 인수할 계획인데, 현재 하림의 현금 보유액은 10조원으로 60%가 넘는 자금을 인수에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또 하림의 자산규모가 17조원대인 것에 반해 HMM 26조원 수준이어서 더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인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승자의 저주'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로 인해 그룹이 풍비박산 난 경험이나 웅진그룹의 극동건설 인수 후 해체된 사례 등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하림은 사모펀드인 JKL파트너스와 인수자금을 함께 조달하기 때문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재계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하림의 HMM 인수에 부정적 견해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난 1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이 이번 인수전을 두고 "우선협상자로 지정된 기업이 전문성이 없는 것 같고 사모펀드도 같이 들어와 있다"면서 "내년부터 해운업계가 굉장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기업이 과연 (HMM을) 살려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도 "'승자의 저주'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면서 "장관이 된다면 주도면밀하게 처음부터 꼼꼼히 살펴 볼 생각"이라고 답했다.
하림은 HMM 인수를 위해 JKL파트너스와 함께 유가증권 매각과 영구채 발행, 선박 매각 등으로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전해졌다. 팬오션은 한진칼 주식 390만3973주를 1628억원에 처분했고, 호반그룹과 약 5000억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도 추진 중으로 알려졌다.
또 하림은 본입찰에서 HMM 영구채 주식전환 3년 유예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림과 경쟁을 펼치던 동원그룹은 지난 8일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매각 측에 입찰 절차의 공정성을 지적하는 내용의 공문을 전달한 바 있다. 특히 우선협장 대상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순방길에 따라나섰던 김홍국 하림 회장으로 HMM 인수 자격이 넘어가면서 향후 이와 관련된 '잡음'의 불씨 또한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아울러 HMM 노조마저 회사 매각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현재 HMM과 단체협약을 진행 중인 노조 측은 사측에 협상 결렬을 통보하고 파업에 나설 방침이다. 노조는 HMM 매각을 중단시키기 위해 모든 방안을 동원할 방침이어서 하림의 인수가 결정되더라도 노사간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선박을 활용한 국제 물동량도 감소세에 접어 들어 하림이 HMM을 인수한 뒤 '적자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실제 이미 글로벌 해운업체들의 영업이익은 감소세고, 일부 회사는 적자 전환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하림그룹이 닭고기 사업에서 벗어나 다방면으로 영역을 확대해 몸집을 키우는 전략으로 보인다"며 "이번 HMM 인수도 팬오션과 함께 사업 다각화와 시너지 창출이라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현재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상당한 매각 대금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한편 하림 측은 "협상을 잘 마무리하고 본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벌크 전문 해운사인 팬오션과의 시너지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안정감있고 신뢰받는 국적선사로 발전시킬 것"이라면서 "HMM과 팬오션은 어떠한 글로벌 해운시장의 불황도 충분히 타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헌 기자(kth82@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