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민혜정 기자] 삼성은 오는 25일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별세 3주기, 27일 이재용 회장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아이뉴스24는 30년전 '뼈를 깎는 수준의 혁신'을 주문했던 이 선대회장의 '신(新)경영 선언' 정신을 되짚어보고 이재용 회장이 구상하는 '뉴 삼성'을 조명해 본다.[편집자]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 호텔에서 임원 200여명에게 한 명언이다. 당시 취임 5년째이던 이 회장이 후쿠다 다미오 고문에게 삼성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홀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후였다.
이 선대회장은 임직원들을 향해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되고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며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고 혁신을 주창했다.
이 선대회장을 '시대의 혁신가'로 명명하게 된 이 기념비적 사건은 이후 두고두고 재계는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 변화와 혁신을 얘기할 때마다 회자돼왔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변화 밖에 없다'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사상가인 헤라클레이토스의 통찰에 비견되는 일화다.
목적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다 바꿔 기업과 기술과 제품을 혁신하려는 이 선대회장의 이노베이션 경영은 7·4 출퇴근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등에 녹아 있다. 1993년 국내 최초 대졸 여성 신입 사원 공채 실시(1993년) △1995년 공채 학력 제한 철폐 등도 같은 맥락이다.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에 이어 이 선대회장의 혁신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애니콜 화형식'이다. 이 선대회장의 신경영 설파에도 임직원들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이미 삼성이 국내 대표 대기업으로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큰 변화보다는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이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타고난 승부사답게 이 선대회장은 칼을 빼들었다. 1995년 3월 9일 경북 구미 공장 앞에서 '애니콜 화형식'을 단행한 것. 이 선대회장은 애니콜의 불량률이 12%에 달하자 15만대의 애니콜을 모두 불태웠다. 이 때 충격을 받은 임직원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혁신 DNA가 확산되면서 신경영 선언 이듬해인 1994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256메가(Mb) D램 개발에 성공한다. 이어 1996년 1기가(Gb) D램을 개발하며 반도체 선도 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 선대회장이 고 이병철 창업회장 등의 우려에도 불구, 반도체 사업 투자를 결행해 '시대의 승부사'로 불리게 된 것도 혁신 DNA의 발현으로 읽힌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안주해선 안된다는 강인한 혁신 정신이 오늘의 글로벌 톱기업인 삼성을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의 혁신가' 이 선대회장이 남긴 업적은 삼성전자의 '숫자'에 아로새겨져 있다. 신경영 선언이 나온 1993년 3조1000억원 수준이던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600조가 넘는다. 매출액은 11배 이상 늘어 41조원에서 466조8000억원이 됐다. 특히, 영업이익은 4900억원에서 55조 6000억원으로 100배가 늘었다.
25일은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3주기다. 이를 기념해 이 선대회장의 혁신경영을 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가 18일 열린다. 이 행사를 주최하는 한국경영학회의 김재구 회장의 말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근본적인 변혁을 강조한 '신경영 선언'에서 2012년 '창조경영'에 이르기까지 한순간도 변화와 혁신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민혜정 기자(hye55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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