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송대성 기자] 일본 남자배구는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 예선 라운드에서 10승 2패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2위로 결승 토너먼트에 오른 일본은 아시아 역대 최고 성적인 3위로 대회를 마쳤다.
준결승 무대에서 세계 최강 폴란드에 덜미가 잡혔지만 3-4위 결정전에서 세계랭킹 3위 이탈리아를 꺾고 당당히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본 여자배구 역시 예선 라운드를 7위로 마쳐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세계랭킹 2위 미국을 만나 고개를 떨궜지만 장신이 즐비한 강팀을 상대로도 아시아 배구가 경쟁력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 탄탄한 인프라가 더 많은, 잘하는 선수를 배출한다
일본 배구가 아시아 최강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존재하지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탄탄한 인프라다.
지난해 기준 일본배구협회에 등록된 팀만 무려 2만 4,316개에 달한다. 여기에는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 실업, 클럽 등이 포함됐다. 실업과 클럽 등은 일반과 리그에 참가하는 팀을 분류했고, 고교는 전일반과 시간제를 구별해 집계했다.
모든 부분에서 한국과 큰 차이를 보였지만 가장 돋보인 부분은 고등학교와 대학이다. 일본 고등학교(전일반)의 경우 남자는 2,581개 학교가 배구부를 운영 중이다. 여자는 이보다 많은 3,497개 학교가 배구 꿈나무를 키워내고 있다. 대학 배구부 역시 남자가 367개교, 여자가 346개교로 엄청난 숫자를 자랑한다.
배구를 접할 기회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구 인구 상당하다. 지난해 기준 일본배구협회에 등록된 인원은 무려 42만 2,789명이다. 남자 고교부는 5만 4,581명 여자 고교부는 5만 8,426명이다. 대학 역시 남녀 각각 8,065명 7,726명으로 대한배구협회에 등록된 전체 인원을 웃돈다.
2022년 전일본배구여자대학선수권대회 4위를 차지한 고베 신와대학 야마모토 키요카즈 감독은 일본의 이같은 인프라에 대해 "일본 학교는 기본적으로 체육관을 갖추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곳은 학생들이 최우선 활용할 수 있게 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체육관에서 농구와 배구부를 운영하고 있는데, 장소가 협소하더라도 네트로 공간을 분리해 모두가 스포츠활동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많아야 더 많은 선수를 확보할 수 있다.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야 선수가 모이고 그 선수를 이끌 지도자 수도 많아진다"라며 "배구 지도자는 한 선수를 잘 키우는 능력보다 많은 선수의 기량을 함께 향상시키는 능력이 더 필요하고 강조된다. 그러면서 상위 그룹의 레벨로 함께 올라간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배구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인프라
일본의 탄탄한 배구 인프라는 한 선수의 말에서도 느껴졌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배구를 시작했다는 고베 신와대 4학년 키하루는 배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많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초등학교 때 배구를 접하고 재미를 느꼈는데 훈련하면서 너무 힘들다고 느꼈다. 그래서 중학교에 진학하면 배구를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중학교에 배구부가 있어 다시 배구를 하게 됐다. 그리고 또 그만두고 싶었지만 진학한 고등학교에도 배구부가 있어 그만두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지금까지 배구와 함께하고 있다."
힘들어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이 수없이 많았지만 일본의 탄탄한 인프라가 키하루를 계속 배구로 붙잡아 둔 것이다.
단순히 팀만 많은 게 아닌 각 연령별 리그도 활발하다. 대학 배구의 경우 간사이 지역에서도 1부부터 7부리그까지 존재한다. 지봄과 가을에 리그가 열리고 학교가 속한 그룹에서 우승을 차지해야 차기 리그를 상위 그룹에서 치를 수 있다.
즉 현재 7부에 있는 팀이 봄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면 같은 해 가을 리그는 6부리그에서 치른다. 쉼 없이 우승해도 7부에서 1부로 오르기 위해선 4년여의 시간이 필요하다. 1부리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팀은 전국 대회인 전일본배구대학선수권에 나설 자격을 획득한다.
모든 선수들이 V리그에 진출할 수는 없기에 대학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상담도 학교에서 활발히 이뤄진다. V리그로 진출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배구부 학생은 선생님으로 거듭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스포츠트레이너, 전력분석, 심판 등으로 진로를 정하는 경우도 적잖다. 이러한 부분을 지도자가 함께 고민해 주는 게 현재 일본 배구의 모습이다.
◇ 이기는 배구가 아닌 지지 않는 배구를 한다
고베 신와대학의 경우 35명의 선수 중 신장 170cm가 넘는 선수는 단 7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148cm의 단신 선수도 있었다.
고베 신와대학은 도로공사와 연습 경기에 170cm가 넘는 선수 3명을 기용했다. 팀의 주장이자 미들 블로커인 시미즈(172cm),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 마키하루(172cm), 그리고 몽골에서 온 제벤프레브(MB·178cm) 등이다.
나머지는 160cm 초반대에 불과했다. 주전 아포짓 스파이커 다나카의 신장은 165cm였다. 하지만 다나카는 부족한 높이를 한 템포 빠른 스파이크와 상대 블로킹을 활용한 공격으로 펼치며 신장 열세를 극복했다.
이들은 '원 팀', '조직력', '기본기'가 절로 생각나는 경기력을 선보이는 팀이었다. 상대 하이볼 상황에서는 3인 블로킹을 시도하지 않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어차피 높이로 상대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사이드 블로커 한명은 곧바로 자리를 옮겨 수비에 치중했다. 자신들의 강점인 기본기와 수비로 승부를 걸었다.
수 없이 반복한 훈련 덕분에 경기 중 발생하는 네트 플레이 상황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상대에게 쉽게 공을 넘겨주는 것이 아닌 리바운드 플레이로 공격 기회를 만들고 다시 세팅 플레이를 펼치는 약속된 플레이에 6명 모두가 한 몸이 된 듯 움직였다.
아포짓 스파이커 다나카는 "우리는 이기는 배구가 아닌 지지 않는 배구를 하고 있다. 키가 큰 선수들이 많은 학교를 만났을 때도 우리는 '키가 큰 팀이 이기는 게 아닌 배구를 잘하는 팀이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렇게 많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고베 신와대학의 경우 목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요일에 수업이 끝난 뒤 하루 4시간씩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훈련에는 부상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참가한다. 그 누구도 훈련에 불평불만을 쏟아내지 않는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배구를 하기 때문이다.
/고베=송대성 기자(snowbal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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