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예진 기자] 파업 13일차를 맞은 부산대학교병원 노조가 불법 의료 실태를 공개하며 부산대병원 측을 압박하고 나섰다.
보건의료노조 부산대병원지부는 25일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에서 ‘불법 의료 증언대회’를 열었다. 증언대회에는 부산대병원과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노조원 2천여명이 참여했다.
행사에서 현직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4명은 하얀색 가면을 쓰고 병원의 불법 의료 실태를 밝혔다.
자신을 부산대병원 병동간호사라고 밝힌 A씨는 “간호사는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환자에게 적절한 간호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의사가 제때 처방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근무를 하며 처방이 없는 10여명의 환자의 처방을 내려달라고 의사에게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지금은 어렵다. 전날 처방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해달라’면서 대리처방을 요구한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부산대병원 외래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조무사 B씨 역시 부산대병원에서 근무하며 가장 놀랍고 당황스러웠던 점으로 환자의 진단명을 정하고, 처방도 직접 하는 점을 꼽았다.
B씨는 “환자 진단, 처방, 동의서 받기는 모두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해야하는 일”이라면서 “진단명은 비슷한 것이 많지만 모두 내용이 다른 질환이어서 간호조무사가 선택하는 진단명으로 환자가 치료를 받게 되는 건 부담감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초진 환자가 내원하면 의사를 만나기도 전에 검사부터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과정에서 검사 처방을 내기 위한 환자 진단명을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정하고 입력한다”며 “우리가 낸 진단명이 제대로 확인되거나 수정되지 않은 채 환자 진료가 이뤄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대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C씨 역시 “저희 부서는 매일 마다 의사업무를 간호사가 대신하는 불법의료 파티를 열고 있다”면서 “간호사들은 간호업무에 더해서 의사가 입력해야하는 대리처방, 수술 중 사용하는 약물 대리처방, 심지어 마약 처방과 수혈 처방까지 대리처방을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우리 조합원들은 무엇보다 현재 3천58명인 의대정원을 증원해서 공공병원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고 적어도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를 명확히 해야함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수술방 진료 보조 간호사를 말하는 일명 ‘PA간호사’인 D 간호사는 “수술방에서는 수술 어시스트를 하고 병동에서는 수술환자 드레싱과 절개 부위·상처 관리, 입원 환자에 대한 수술 설명, 동의서 서명받기, 집도의 서명까지 제가 알아서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2월 20일부터 24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한 부산대병원·양산부산대병원 간호사 678명 중 599명(90.7%)이 ‘의사를 대신해 처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처치·채혈 등 의사 업무를 대리한 적 있다’고 답한 이도 80.4%에 달한다. 응답자의 55.2%는 ‘의사 아이디로 접속해 직접 처방한 적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노조는 지난 20일 파업 참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불법 의료 사례를 조사한 결과 ▲의사가 지시해 마약류 약물을 간호사가 구두 처방한 사례 ▲간호사들이 의사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대리 처방하는 사례 ▲사망진단서를 간호사가 수정한 사례 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번 파업을 통해 ▲165명 인력 충원 ▲불법 의료행위 근절 ▲자동 승진제 개선 ▲비정규직 직접고용 전환 ▲적정 임금과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 이번 증언대회를 통해 ‘대리처방 금지’와 ‘대리 동의서 서명 금지’, ‘불법 의료 근절 매뉴얼 마련', '의사가 처방 확인' 등 불법 의료 행위 근절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추진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불법 의료 근절은 환자 안전과 생명이 걸린 문제이고, 직원들에게는 직업 윤리적 소명 포기에 따른 심적 고통과 의료법 위반에 따른 법적 책임이 뒤따르는 문제”라면서 “사측은 ‘불법 의료는 다른 병원 곳곳에 만연해 있는 문제’라고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권역거점 공공병원으로써 모범적으로 근절에 앞장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증언대회 이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부산시민사회단체는 “‘인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다’, ‘병원의 현실은 그렇다’는 변명이 아니라 부산시민의 입장에서 당연히 의사에게 진료 받아야 할 안전한 진료권을 빼앗긴 것에 부산대학교병원장은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면서 “부산대병원장도, 부산광역시도 부산 시민의 안전과 생명과 직결되는 부산대병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촉구했다.
/부산=정예진 기자(yejin0311@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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