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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과학자 길 걷다] "한골 넣은 뒤 두·세 번째 골 위해 달려가는 의사과학자 필요하다"


김하일 KAIST 의과학연구센터 소장 “혁신적, 새로운 MD-Ph.D 나와야 한다”

김하일 소장은 “축구경기에서 일찍 한골 넣은 뒤 승리하기 위해 전·후반 내내 수비에만 집중하는 그런 축구가 아니라 한골 넣은 뒤 두 번째, 세 번째 골을 넣기 위해 더욱 분발하고, 노력하는, 그런 축구를 하는 의지가 의사과학자들에게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정종오 기자]
김하일 소장은 “축구경기에서 일찍 한골 넣은 뒤 승리하기 위해 전·후반 내내 수비에만 집중하는 그런 축구가 아니라 한골 넣은 뒤 두 번째, 세 번째 골을 넣기 위해 더욱 분발하고, 노력하는, 그런 축구를 하는 의지가 의사과학자들에게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정종오 기자]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국어만 하는 사람과 영어만 할 줄 아는 사람이 공동연구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국어(의사)와 영어(과학과 공학)을 서로 모르니 (어쨌든 손짓과 발짓으로 소통은 되겠는데) 연구 속도는 물론 성과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국어(의사)와 영어(공학과 과학)를 모두 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이 사람이 국어만 하는 사람과 영어만 하는 사람 중간에 서서 ‘혁신적이고 새로운 역할’을 한다면 공동연구는 그야말로 새로운 길로 접어들 겁니다.”

김하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연구센터소장은 의사과학자에 대해 이렇게 비유했다. 김 소장은 “MD(Medical Doctor)는 ‘의사’이고 학위가 아니라 국가자격증”이라며 “반면 Ph.D는 자격증이 아니라 학위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즉 MD는 의대를 나온 이들이 국가자격시험을 거쳐 ‘의사’라는 호칭을 받는 사람이란 설명이다. 반면 Ph.D는 학사 졸업이후 석·박사 과정을 거쳐 한 분야에서 통달했다는 ‘박사’라는 학위를 받는 과정이라는 거다. 의사과학자(MD-Ph.D)는 자격증을 가졌으면서 정식 학위과정을 거쳐 ‘박사’가 된 사람을 일컫는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 의사 양성구조와 앞으로 지향해야 할 점을 언급하면서 앞으로 의사과학자 육성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의사 양성구조는 크게 4가지 단계가 있다고 김 소장은 설명을 이었다.

첫 번째는 개인병원(Tier0)으로 이곳에서는 임상의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대부분의 개인병원 의사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어 대학병원(Tier1)으로 임상의학자가 일을 하는 곳이다. 임상의학자는 환자 진료와 환자 연구 활동에 대부분 시간을 투자한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와 교수가 여기에 포함된다.

연구중심병원(Tier2)는 ‘임상-의사과학자’가 일하는 곳이다. 환자를 보는 의사이긴 한데 실험실을 운영하면서 연구 활동을 하고 대학병원 연구실에서 역량을 보유한 의사들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생화학, 미생물, 병리학 등의 연구소가 여기에 해당된다.

KAIST 의과학대학원(Tier3)는 의사과학자 육성을 위해 2004년 만들었다. 전일제로 연구개발 활동에 종사하는 의사과학자를 길러보겠다는 방향성을 정했다.

김 소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임상-의사과학자(Tier2)는 물론 의사과학자(Tier3)가 부족하거나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의사양성구조. 의사과학자 육성을 위해서는 Tier3, Tier4를 지향해야 한다고 김하일 소장은 주문했다. [사진=KAIST]
우리나라 의사양성구조. 의사과학자 육성을 위해서는 Tier3, Tier4를 지향해야 한다고 김하일 소장은 주문했다. [사진=KAIST]

이런 상황에서 KAIST는 현재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과기의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김 소장은 과기의전원에 대해 “의대와 병원의 경계를 넘어 활동하는 연구개발 혁신가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Tier4)”라며 “처음부터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의학과 다른 분야가 융합된 혁신적 의사과학자와 공학자를 길러내기 위한 전문 대학원”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과기의전원은 개원의 중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와 대학병원으로부터 두 가지 면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를 떠안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 정원을 더는 늘리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의대를 갖고 있는 대학병원은 정원을 늘리는 것에는 개의치 않는데 새로운 의대 신설은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담당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이를 두고 현재 어떤 정책 결정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숙제를 KAIST가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과기의전원 설립에 속도가 붙을 것인지, 지지부진 상태가 될 것인지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정책 변화에 따라서도 그 속도는 달라질 전망이다.

김 소장은 현재 우리나라 의사 양성 구조에서 의사과학자를 육성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 의과대학들은 의사를 양성해서 전공의를 공급하는 역할이 제일 크다”며 “이런 상황에서 진료를 병행하면서 연구를 수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KAIST는 2004년 의과학대학원을 설립하고 올해 3월 현재까지 183명의 ‘MD-Ph.D’를 배출했다. 김 소장은 “KAIST 의과학대학원 설립이후 2010년대 초 다른 대학병원에서 우리 모델을 기준삼아 비슷하게 만든 곳이 꽤 있다”며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의과학대학원을 운영해 왔는데 이것만으로는 아직 ‘배가 고프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기의전원으로 눈길을 옮긴 이유라는 것이다.

김 소장은 “지금 시대는 바뀌고 있고 의학 분야에서도 바이오는 물론 인공지능(AI)을 비롯해 공학까지 융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의사과학자를 넘어 의사공학자까지 길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KAIST 의과학대학원에서 의사가 된 이들에게 박사 학위를 교육해 봤는데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의사 자격증이 있는 이들이 학위과정에서 바이오 분야는 잘하는데 공학 쪽은 견뎌 내지를 못했다는 점이다. 엔지니어링 쪽은 기본 소양이 워낙 부족해 이를 의사들이 받아들이기에 충분치 않았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정부가 그동안 해 왔던 기초의과학선도연구센터(MRC)에 대해서도 아쉬운 점을 피력했다. MRC 지원사업은 과기정통부가 2002년부터 기초의과학 연구 활성과 인력 양성을 위해 의·치·한의·약학 단과대학당 1개 센터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까지 총 100개 MRC 과제에 약 5천767억원을 투입했다.

김 소장은 “MRC 지원사업이 우리나라 기초의학분야의 발전 단계를 끌어올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전제한 뒤 “다만 이 지원사업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준 게 아니라 ‘고기를 잡아준 것’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KAIST가 과기의전원을 만드는 배경에는 ‘고기를 잡아주는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본격적으로 가르쳐 보겠다는 의지가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의학이 임상 등 진료중심이었다면 이젠 과학과 공학을 덧입혀 기술개발을 하고, 관련 장비를 만들고, 신약을 개발하는 등 융·복합산업으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소장은 “축구경기에서 일찍 한골 넣은 뒤 승리하기 위해 전·후반 내내 수비에만 집중하는 그런 축구가 아니라 한골 넣은 뒤 두 번째, 세 번째 골을 넣기 위해 더욱 분발하고, 노력하는 그런 축구를 하는 의지가 의사과학자들에게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소장은 1998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기초의학을 연구했다. 연세대 의대 생화학 교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의사과학자에 뜻을 두고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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