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서온,안다솜 기자] "집단 전세사기 사건을 일으킨 한 축이 깡통 빌라 매물을 중개한 중개보조원이나 무자격 중개컨설팅업자 같은 불법 중개업자들인데, 여전히 한켠에서 활개를 치고 있어요. 심지어 범죄가 적발된 지역에서도 말이에요. 또다른 먹잇감을 물색하고 있는 것이겠죠. 반드시 범정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고, 강력한 제재도 필요합니다."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수요자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정보 불균형이나 사회적 위계 등에서 찾을 수 있지만, 이런 불합리한 거래가 가능하게 만든 이른바 '선수'들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지적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정부가 사기꾼들이 설치지 못하도록 법적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8일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제2회 전체회의를 개최하고 인천, 부산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피해사실 조사를 완료한 268건 중 265건의 피해자 결정을 의결했다고 밝혔는데, 이 사건에서도 전문 자격증을 가진 것처럼 위장한 사기꾼들의 실체가 숨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사기 특별법' 시행 이후 첫 번째 피해자 결정이다. 국토부는 앞으로도 매주 수요일 분과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순차적으로 개최해 신속한 피해자 결정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또한, 같은 날 정부는 특별단속을 통해 신축 빌라 관련 광고 중 전세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표시·광고 5천966건을 게재해온 관련자 48명을 수사 의뢰하고, 상습적 불법광고 게시자의 재위반 사례 451건을 적발해 관할 지자체에 통보했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올려 세입자를 유인하려는 전형적인 미끼 매물이 대다수였다.
◆'물 흐린 중개보조원'…"제도 폐지하자" 목소리도
정부가 전세사기로 인한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중개 시장의 고질병으로 지목돼온 미끼 매물과 불법 중개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전방위 강력 대응에 나섰지만, 그간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중개보조원' 제도의 허점을 해소하기 위한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빌라왕 사태' 등 최근 불거진 조직적 전세사기에 중개보조원이 적극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각에선 중개보조원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중개보조원은 중개대상물에 대한 현장안내와 일반서무 등 중개업자의 중개업무와 관련된 업무를 지원한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어도 4시간 의무교육을 수료하면 누구나 중개보조원으로 일할 수 있는데, 직접 신분을 밝히지 않는 이상 일반 소비자가 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꾸준히 지적받아 왔다.
실제 최근 관악구 봉천동 일원 투룸 전세 매물을 계약한 20대 A씨는 "처음 방문한 중개업소 실장한테 매물을 소개받아 계약까지 완료했는데, 계약서 작성까지 완료하고 난 뒤 갑자기 대표의 도장을 받아야 하니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며 "알고 보니 자격증이 없는 중개보조원이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혼란을 막기 위해 중개보조원은 반드시 자신이 중개보조원임을 밝히도록 관련 법이 개정돼 오는 10월 19일부터 시행된다. 또 무분별한 경쟁을 막고자 중개보조원 고용에도 제한을 둔다. 현재는 필요한 만큼의 중개보조원 인력을 무한대로 고용할 수 있지만, 개업·소속공인중개사 수의 5배까지만 허용한다.
무등록·무자격자, 특히 공인중개사를 가장한 중개보조원의 실질적인 중개 등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충남 태안군은 내달부터 공인중개사 명찰제를 시행한다. 명찰에는 공인중개사 이름과 사진, 중개업소 명칭, 등록번호 등이 적혀 있다. 중개보조원은 명찰을 차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20년 경력의 중개사 A씨는 "결국 불법중개업자가 빌라왕을 키워냈다.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한 강서구, 화성시 일대는 아직도 불법중개 천국"이라며 "소비자는 불법중개업소인지 구분이 쉽지 않고, 중개업소(부동산)에 근무한다고 하면 모두 공인중개사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대대적으로 현수막을 내걸어서라도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세사기와 같은 불법 행태를 주도한 중개보조원 제도를 폐지해야 전세사기와 같은 선량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전세사기 원흉' 중개보조원?…개정안 실효성 '도마 위에'
소비자에게 중개보조원임을 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채용인원을 개업공인중개사와 소속 공인중개사를 합한 수의 5배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공인중개사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중개보조원임을 고지받지 못한 경우가 여전히 있을 수 있고, 더욱이 숫자만 제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이하 한공협) 관계자는 "중개사무소 1곳에서 중개보조원을 100명을 넘게 고용하는 예도 있다. 이 경우 100명에 대한 관리·감독이 물리적으로 매우 어렵다"며 "그러나 일반적인 중개사무소에선 실무선상 내 1~2명 수준에서 채용하거나 채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중개보조원 제도를 없애는 것이 오히려 낫겠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고, 협회 차원에서 검토를 요청한 바 있다"며 "법 개정에 따라 대표를 포함해 소속 중개사가 4명이면 보조원을 20명까지 고용할 수 있어 여전히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공협에서도 이런 의견이 나오는 것은 중개보조원들로 인해발생하는 거래 사고가 상당한 수준에 달한다는 평가가 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한공협이 거래 사고 유형을 조사한 결과 중개보조원이 일으킨 사고 건수가 절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중개사들 사이에서는 보조원들로 인한 중개업계 이미지가 실추되거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는 건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보조원을 없애고 중개사들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한공협 관계자는 "중개보조원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국토부와 검찰 합동 수사 결과 나온 것도 보면 중개보조원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며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만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거래 사고도 대폭 줄일 수 있다. 소비자 재산권 보호 측면에서도 중개보조원 제도를 돌이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일부 중개업소에 한해 무분별한 중개보조원 채용이 가능한 환경에 노출되면서 중개사를 가장한 보조원의 불법행위 관리·감독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한, 중개보조원 제도 자체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불법행위는 암암리에 이뤄져 이를 밝혀내고 증명하기도 매우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보조원의 경험이나 자본력이 많은 경우엔 중개사가 휘둘리며 제대로 감시자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례마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공협 관계자는 "공인중개사 이름으로 등록은 돼 있지만 사무소 대표는 보조원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게 외형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며 "병원을 예로 들면, 간호사가 의사를 고용해서 개원한 것과 같다. 일부 사례긴 하지만 매우 기형적인 형태의 중개사무소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약 거래사고나 사기 등 중개사고가 발생하면 중개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제도 근간이 흔들리는 문제"라며 "주변 부동산에서도 이를 알고 있지만, 증거가 없어 적발이나 신고도 쉽지 않다"고 했다.
이로 인해 중개보조원 숫자를 줄이고, 중개보조원임을 고객에게 알리는 것이 과연 실효성 있는 전세사기 대책인지 더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공협 관계자는 "보조원들에 대한 관리·감독 등 제도가 수정·보완되고 있지만 결국 중개보조원 제도를 어떻게 운용할 건지가 가장 큰 문제"라며 "단순히 수를 줄인다고 이들의 불법행위를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개보조원이 손님이 오자마자 '저는 보조원입니다'라고 알리는 것을 성실히 행할지 의문이다. 손님과 보조원 사이 '알렸다. 못 들었다' 주장이 엇갈리면 이 역시 애매한 상황"이라며 "중개보조원 제도와 관련해 더욱 실효성 있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서온 기자(summer@inews24.com),안다솜 기자(cott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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