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삼성전자 출신을 통한 반도체 핵심 기술 유출 시도가 또 다시 발생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다툼이 격화되는 가운데 국가 핵심 기술 유출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의 정보 관리 능력 헛점도 잇따라 발견돼 업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 자료를 통째로 복사해 중국에 그대로 건설하려던 전 삼성전자 상무 A씨가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 '반도체 1등' 삼성 노린 中…韓 기술 훔치기 '혈안'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박진성 부장검사)는 이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A 씨를 구속 기소했다. 또 A씨가 세운 중국 반도체 제조 업체 직원 5명과 설계 도면을 빼돌린 삼성전자 협력업체 직원 1명 등 6명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A씨는 삼성전자 상무를 거쳐 SK하이닉스 부사장을 지내는 등 국내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권위자로 평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지난 2018~2019년에 중국 청두시 자본으로 반도체 업체를 설립한 A씨는 대만의 전자제품 생산판매업체로부터 약 8조원 규모의 투자 약정을 받아 중국 시안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2018년 8월부터 2019년까지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인 반도체 공장 BED(Basic Engineering Data)와 공정 배치도, 설계도면 등을 부정 취득·부정 사용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반도체 공장 BED는 반도체 제조가 이뤄지는 공간에 불순물이 존재하지 않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술이다. 공정배치도는 반도체 생산을 위한 핵심 8대 공정의 배치, 면적 등 정보가 기재된 도면이다. 이 기술들은 30나노 이하급 D램 및 낸드플래시를 제조하는 반도체 공정 기술로,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
A씨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국내 반도체 핵심 인력 200여 명도 고액 연봉을 주고 영입했다. 또 영입한 직원들에게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계 자료를 확보해 사용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시했고, 직원들도 이에 따라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번 기술 유출로 삼성전자가 최소 3천억원에 이르는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A씨는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에서 불과 1.5㎞ 떨어진 곳에 복제판 공장을 건설하려다가 검찰의 수사에 덜미가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 삼성이 공 들인 기술…몰래 빼가기 바쁜 中
삼성전자의 기술 유출 문제는 이번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업계의 우려가 높다. 올 초에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파운드리(위탁 생산) 소속 직원 B씨가 불법 정보 유출 혐의로 조사를 받았는데, 재택근무 중 전자 문서 등 회사 보안 자료에 접근해 스마트폰으로 이를 촬영한 혐의다.
삼성전자는 해당 직원이 퇴사를 앞두고 하루에 수백 개의 반도체 관련 파일을 열람한 것을 확인, 즉각 자체 조사를 벌였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은 문서의 외부 반출과 스마트폰을 통한 정보 반출이 불가능하지만, 재택근무 때는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회사 측은 이런 허점을 해당 직원이 이용해 불법적인 일을 벌인 것으로 파악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C씨 역시 중국 반도체 업체로 이직한 지난 2018년 8월 최신 반도체 초미세 공정과 관련된 국가핵심기술 및 영업비밀 등 33개 파일을 이메일로 링크한 뒤 외부에서 이를 열람, 촬영해 부정적으로 취득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C씨 등 중국 업체로 이직한 엔지니어 2명과 삼성엔지니어링 연구원 2명도 지난해 10월 재판에 넘겼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전 연구원 D씨는 2018년 8~10월 퇴사 전 빼낸 기술 자료를 새로 입사한 중국 반도체 컨설팅 업체에서 활용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듬해 삼성엔지니어링 연구원 E씨는 D씨에게 반도체 초순수(Ultrapure Water) 시스템 운전 매뉴얼, 설계 도면 등을 건네고 자신도 중국 업체로 넘어갔다.
이 사건은 1심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국외 누설 등) 및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 혐의가 인정됐으나, 재판부는 C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하는데 그쳤다. 이에 검찰은 "공판 과정에서 혐의를 극히 일부만 인정하면서 반성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에서도 기술 유출 사건이 벌어졌다. 세메스가 개발한 반도체 세정 장비 기술을 빼내 중국 업체 등에 팔아 수백억원을 받아 챙긴 세메스 전 연구원 F씨 등 일당 7명은 지난 2월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세메스를 퇴직한 F씨가 2019년 설립한 반도체 장비제조업체 법인 역시 벌금 10억원이 선고됐다.
F씨 등은 2018년 3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3년여간 세메스의 영업비밀인 반도체 습식 세정장비 제작 기술 등을 부정 사용해 장비 24대의 설계도면을 만든 뒤 이를 이용해 710억원 상당의 장비 14대를 제작, 중국 경쟁업체 또는 중국 반도체 연구소에 수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F씨 등은 세메스에서 퇴직해 회사를 차린 뒤 퇴사 시 관련 정보를 반납하지 않거나 협력업체 대표 등으로부터 기술 정보가 담긴 부품 자체를 받는 수법으로 설계도면, 부품 리스트, 약액 배관 정보, 작업표준서, 소프트웨어 등 거의 모든 기술을 빼냈다.
이들이 유출한 반도체 세정장비는 세메스의 독보적인 기술로 만들어진 주력 제품으로, 반도체 기판에 패턴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장비다. 황산이 포함된 고온의 액체로 세정하는 장비, 이송 로봇의 팔을 2개에서 4개로 늘려 세정 속도를 높이는 장비가 대표적으로, 이 같은 장비의 기술 정보를 집중적으로 유출해 형상과 치수가 사실상 동일한 제품을 만들어냈다.
세메스는 기술 개발 연구비 등으로 2천188억원을 투자했으며 기술 유출에 다른 경쟁력 저하로 거래처 수주가 10%만 감소해도 연간 400억원 이상의 손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세메스 측은 이들에 대한 엄벌을 탄원했다.
F씨 등은 세메스 근무 이력을 내세워 투자자를 모집했으며 중국 업체 등의 투자로 천안에 공장을 설립해 장비를 만들어냈다. 또 중국에 합작법인을 설립해 관련 기술을 모두 이전시키고 그 대가로 합작법인 지분 20%를 취득하기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의 첩보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하드디스크 및 휴대전화 등 관련 증거를 인멸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의 중요성이나 취한 이익을 고려하면 집행유예는 솜방망이 수준"이라며 "기술 유출의 처벌 수위를 보면 대부분 집행유예나 낮은 수준의 징역형에 그친다는 점이 해외 기술 유출을 더 조장하는 듯 해 매우 아쉽다"고 밝혔다.
◆ 국가 핵심 기술 유출인데 처벌은 '안일'…삼성, 정보 관리 '도마 위'
이처럼 국내 반도체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사건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의 산업기술 해외유출 적발건수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5년간 112건, 국가 핵심 기술 36건이 유출됐다. 이 중 디스플레이·반도체 부문만 50건에 달한다. 이에 따른 피해예상액(대검찰청 추산)은 25조원을 상회한다.
하지만 관련 처벌 수위는 매우 낮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관련 판결은 1심 재판 기준 집행유예가 39.5%에 달했다. 지난 2020년 서울반도체의 LED 핵심기술을 유출한 전직 연구원이 징역 8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전경련이 집계한 자료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전경련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리된 제1심 형사공판 사건 총 33건을 검토한 결과, 무죄(60.6%) 또는 집행유예(27.2%)가 87.8%에 달했다. 재산형, 유기징역(실형)은 각각 2건(6.1%)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경쟁국인 대만이나 미국, 일본과도 비교되는 부분이다. 대만은 적발 시 간첩죄를 적용해 12년 이하의 징역과 벌금 1억 대만달러(한화 약 44억원) 이하를 부과한다. 미국은 연방 양형기준을 통해 피해액에 따라 범죄 등급을 조정하고 형량을 대폭 확대할 수 있는데, 피해액에 따라 188개월(15년8개월)에서 최대 405개월(33년9개월)의 징역형을 내린다. 일본은 범죄 수익을 모두 몰수하고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외 기술 유출 처벌과 관련해 지지부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을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되게 할 목적으로 유출한 자는 3년 이상 징역과 15억원 이하 벌금을 병과한다. 산업기술은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 벌금이다. 해당 목적을 입증하는데 쉽지 않아 결과적으로는 처벌 수위가 낮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이에 국회는 지난해 '산업기술보호법' 처벌 강화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으나, 경쟁국 대비 처벌 강도가 여전히 약하다는 평가다.
전경련 역시 기술 유출을 국가 경쟁력을 훼손하는 중범죄로 보고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서를 최근 대법원에 제출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이날 처음으로 전체회의를 열어 향후 2년 동안의 양형 기준 심의 계획과 안건 등에 대해 논의키로 했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반도체, 이차전지, 자율주행차 등 주력산업을 중심으로 기술의 해외유출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국가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는 데 비해 기술유출 시 실제 처벌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에만 유난히 기술 유출 사고가 잦다는 점에서 중요 정보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반도체 기술 보안을 위한 방안을 부랴부랴 마련했지만, 올해 3월 말 '챗GPT'를 통해 DS 부문의 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벌어져 논란이 됐다. 당시 '설비정보 유출' 2건과 '회의내용 유출' 1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삼성전자 DS 부문은 유출 사고 인지 후 '챗GPT' 질문당 업로드 용량을 1천24바이트로 제한하는 등의 '긴급조치' 사항을 적용한 데 이어 최근 연내 GPT-3.5 수준 이상의 자체 거대언어모델(LLM)을 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정보 보안 사고 예방을 위해 매년 정기 감사를 실시하고 있고, 2021년 정기감사를 통해 사내 문서관리, 네트워크 취약점, 해킹위협 분야에 대한 보안 관리 체계를 강화했다"며 "협력 관계에 있는 기업에 대해서도 보안 관리 영역을 확대하고 있고, 국가 핵심 기술별 임원급의 관리책임자도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 산업기술보호법에 근거해 체계를 확립, 국가 기관의 정기적인 감사를 받고 필요 시 긴밀한 협조도 받고 있다"며 "고객사와 일부 한정된 담당자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조치했을 뿐 아니라 부사장급 책임자가 있는 정보보호 전담 조직인 통합 벙보보호센터를 운영하며 정보 보호에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후발주자인 중국이 빠른 속도로 선진국과 기술 격차를 좁힐 수 있었던 것은 자금을 앞세운 인재 영입이 한 몫했다"며 "최근 미국 수출 제재 등으로 제약을 받는 중국 입장에선 '반도체 굴기'를 위해 앞으로 더 과감히 인재 빼내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브로커들이 은밀하게 접촉을 시도해왔지만, 이젠 국내 기술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대놓고 시도하는 분위기"라며 "아예 엔지니어 스카우트를 목적으로 한 중국 기업도 속속 생겨나면서 현재 연봉의 3~4배까지 제시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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