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서온,안다솜 기자] 이달 초 정부가 아파트 분양권 전매제한 규제 문턱을 크게 낮췄지만, 전매할 수 있어도 '실거주 의무 폐지'라는 대못이 남아있다. 매도자는 집을 팔아도 실거주해야 하고, 매수인은 집을 사도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업계는 실거주 의무가 풀려야 분양권 거래를 비롯해 시장이 활기를 찾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지만, 자칫하면 전세시장에 제2의 뇌관이 돼 또다시 '갭투자'에서 시작해 '깡통전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큰 상황이다.
21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여야는 오는 26일로 예정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실거주 의무 폐지를 골자로 한 '주택법 개정안' 심사를 앞두고 있다.
'실거주 의무 폐지'는 분양시장 침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주요 규제 완화책 중 하나다. 이는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의 주택에 적용되는 2~5년간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내용이다.
'분양권 전매제한 규제 완화'는 시행령 개정을 거쳐 이달 초부터 실시됐다. 수도권 기준 최대 10년이던 분양권 전매제한기간을 공공택지·규제지역과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역은 3년, 과밀억제권역은 1년, 그 외 지역은 6개월로 완화했다. 전매제한 완화는 정부의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했지만, 실거주 의무 폐지는 주택법을 개정이 필요해 지난 2월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전매제한 해제로 입주 전에도 아파트를 팔 수 있게 됐지만, 실거주 의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현행법을 위반하게 된다. 현행법상 실거주 의무 위반 시 해당 주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여당을 비롯해 일각에선 청약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건설업계와 금융권까지 위기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를 내며 조속한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앞서 국민의힘은 이달 초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에 걸린 2~5년의 실거주 의무 조항 폐지를 골자로 한 '주택법 개정안' 등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에 막힌 부동산 관련 법안들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부동산 시장 정상화'라는 국민의 바람을 담은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제대로 시행돼야 하는 것은 국민의 명령"이라며 "문재인 정권의 잘못된 부동산 대못 규제는 이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법안 처리 열쇠를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실거주 의무 조항 폐지가 투기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개정안 처리에 난색을 보인다. 다만, 법안 처리 주도권을 쥔 민주당 내에서도 실거주 의무 폐지 여부, 수위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동산 업계에서도 '실거주 의무 폐지'에 신중한 입장이다. 금리 인상 랠리가 어느 정도 진정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현재 시장 상황을 비추어볼 때 실거주 의무를 없앨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또 다른 시장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는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 수요는 당연히 증가할 수 있다"며 "다주택자도 전세를 끼고 집을 살 수 있다. 이 경우 자금이 많이 투입되는지를 본다면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실거주 의무 폐지가 속도감 있게 추진되면 분양시장 활기를 찾을 수 있지만 전세 사기 등에 대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선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갭투자가 증가하면서 투기 수요가 발생할 수 있는 우려에도, 경기 침체기와 같은 시기에선 시장 정상화가 필요하고 상황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현재 미분양이 거의 7만 호 넘게 쌓여있는 상황이고 요즘 분양시장에 들어오는 상당수는 무주택자"라며 "무주택자가 집을 처음 마련하는 분위기에선 입주자의 유동성을 해결한다는 개념에서 접근해야 의미가 있다.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르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투기 발생 가능성이라는 단점과 자금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이라는 장점이 있다"며 "경기가 하락하는 시점에선 어느 정도 수요를 양성화시켜 시장 정상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갭투자 발생 가능성과 함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는 깡통전세 우려가 가장 큰 상황이다.
송 대표는 "지방권에선 깡통전세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분양가 10억짜리 아파트를 4억5천 전세를 끼고 샀다고 가정, 집값이 2~3억원 추락하면 집주인의 자금이 들어간 5억5천만원에 대한 상환 압박감이 매우 커질 것"이라며 "임차인은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고, 경매에 넘어가면 현재의 전세 대책 지원책은 실효성이 부족해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매제한이 풀렸음에도 실거주 의무가 남아 있어 집을 팔아도 실거주해야 하고, 집을 산 사람은 사고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실거주 의무 폐지 필요성이 제기됐다. 시장 정상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한 번 전세시장에서 뇌관으로 작용한 갭투자, 깡통전세 등을 방지하기 위해 이를 고려한 안전망 구축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함영진 랩장은 "전매는 풀렸는데 실거주 의무가 남아있으면 매도자가 그 의무를 완성하기 위해서 집을 팔았어도 입주해서 실거주 의무를 완성해야 한다"며 "산 사람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니,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승현 대표는 "실거주 의무 폐지는 거래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겠다는 건데, 투자자 간의 시장은 괜찮다. 그러나 실거주의 경우 투자자와 임차인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며 "지금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전세시장의 각종 문제와 관련해 정확한 방향성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임대차 3법 역시 졸속이라는 평가가 많았고, 실제 부작용도 속출했기 때문에 깊이 있게 논의해서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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