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은행, 그 특수성으로 금융안정에 취약"
|금융위의 정권 눈치 보기에 쑥덕쑥덕
[아이뉴스24 박은경,이재용 기자] 금융당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특화은행 설립이 진퇴양난에 빠져들고 있다. 롤모델이라고 홍보했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은 파산했다. 우리 국민연금도 주식과 채권 투자로 1400억원 가까이 물렸다. 현재로선 국민연금이 이 돈을 회수할 가능성은 없다. 시그니처은행에 이어 크레디트스위스(CS)도 휘청이고 있다. 일부에선 미국발 금융 발작이 글로벌로 전이되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금융위원회는 16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 중심의 과점을 깨겠다는 일념으로 SVB와 같은 특화은행을 계속 추진한다고 밝혔다. 아직은 우리나라의 은행들의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은행들의 충당금 적립을 늘리겠다는 계획에 속도를 내고 있다.
◆ SVB 사건의 본질은 특수성 "자산 기반 취약"
최근 금리 인상에 따른 자산 가격 하락과 대량 예금 인출(뱅크런)로 SVB가 파산하면서 특화은행과 관련한 찬반 여론이 거세졌다. SVB 파산을 앞당긴 건 금리 인상이지만, SVB 자산 구조가 구조적으로 금리 인상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SVB는 미국 다른 은행에 비해 현금성 자산이 현저히 낮고 증권투자 비중이 높다. 미국 은행의 총자산 대비 현금성 자산의 비중은 13.3%인 반면 SVB는 6.52%에 그친다. 또 미국 은행이 평균 자산의 23.8%만 증권에 투자한 반면 SVB는 56.7%를 투자해 이자율 리스크에 노출됐다.
취약한 대출 기반도 문제다. SVB는 대출 규모가 작았던 반면 금리 상승기 대부분의 미국 은행은 대출자산을 공격적으로 늘리며 이자 취득에 집중했다. 결국 특화은행이 가진 특수성이 화를 부른 문제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SVB 사건의 본질은 지역은행 파산과 금융 시스템 위기가 아니라 금리와 특수성"이라며 "주 고객이 실리콘밸리 내 테크, 바이오기업 및 VC 등 스타트업이었기에 저금리를 기반으로 예금이 급증했지만, 그 외 부동산 및 개인 등 대출 기반이 약해 자금의 상당 부분을 투자로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는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도 실제로 경험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대형 5대 '조상제한서' 은행은 모두 공적자금을 받거나 다른 은행에 합병됐다. 그전에 SVB와 성격이 비슷했던 기업금융 전문은행 장기신용은행도 퇴출당했다. 장은은 우리나라 금융업 종사자 중 최고의 엘리트들만 모여들었던 은행이었다. 산업은행에는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어 유지했다.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대기업들이 부도 도미노에 빠지자 이들 은행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금융업은 위험(Risk)을 먹고살지만, 과도한 위험은 결국 은행을 망가트린다. 당시 과도한 대기업 편중 대출은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특화은행과 같은 성격이다. 결국 우리나라 은행업은 가계대출 즉 소비자금융 비중이 큰 5대 은행 밖의 중위권 은행들로 재편됐다.
◆ 특화은행, 환경변화 취약…살아남기 힘들어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SVB 사태로 스몰라이선스, 특화 전문은행 등에 대한 논의에 영향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었다"면서도 "금융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전제로 은행권 내 실질적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취지인 만큼 애초 계획대로 6월 말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영수 금융위원회 은행과장도 "SVB 사태에도 특화은행 설립과 저축은행의 지방은행 전환,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등의 과점 체제 해소 방안은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와 금융권에선 특화은행이 가진 취약점을 들어 걱정스러운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미국 특화은행 파산처럼 채권 가격 변동 등 대외 환경 변화에 민감한 특화은행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없다"며 "규제 완화를 통해 튼튼한 산업자본이 금융 산업에 진출하도록 하는 게 더 나은 대안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건전성 규제나 영업행위 규제를 일부 완화해주는 것을 전제로 특화은행 모형을 검토했기에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건전성 리스크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어서 금융 안정을 훼손할 수 있는 특화은행 접근은 신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금융권에선 금융위가 무리하게 특화은행 추진하는 것을 두고 정부의 눈치 보기라는 비판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무리한 시도라는 것을 금융당국에서 모르겠냐"며 "결국 윤석열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이란 평가가 많다"고 꼬집었다. 다른 관계자도 "어차피 김 부위원장도 금융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전제로 한 만큼 앞으로 상황 전개에 따라선 접을 길을 열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박은경 기자(mylife1440@inews24.com),이재용 기자(jy@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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