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오는 15일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국내 주요 기업이 정기 주주총회에 나선다. 올해도 상장사 절반 이상의 주총이 이달 하순에 몰리면서 어김없이 '주총 대란'이 재연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각 기업들은 신사업으로 미래 준비에 나서는 한편, 이사회 전문성·주주가치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일까지 정기 주총 일정을 확정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리츠, 스팩 제외)는 모두 1천640곳으로, 이 중 62%에 달하는 1천17건이 3월 마지막 주에 몰렸다. 정기 주총 건수가 가장 많은 날은 29일(344건)로, 24일(271건), 28일(화요일) 등 3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49.9%에 달한다.
자본시장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매년 가장 많이 주총이 몰리는 3일에 개최되는 비중은 2020년 58%, 2021년 51%, 2022년 53% 등 비슷한 수준이다. 행동주의 투자 열기가 최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되풀이되는 '주총 쏠림 현상'으로 주주권을 내실 있게 행사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금융 당국이 노력하고 있지만 '무용지물'이란 평가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2018년 2월부터 주총 분산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사전에 발표하는 주총 집중일에 주총을 개최한다고 발표한 상장사들은 그 사유를 신고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그러나 주총 집중일에 주총을 열어도 특별한 제재 없이 형식적 신고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신고 제도의 실효성이 극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는 자율준수 프로그램 참여 기업에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시 4점 이내의 벌점 감경, 공시우수법인 선정 시 가점(60점 중 5점) 부여 인센티브를 준다.
재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감경되는 벌점은 2점 이하로, 인센티브가 충분한 프로그램 참여 유인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제도의 실효성이 적으니 매년 주총집중일에 주총을 개최하고, 형식적 신고 사유를 제출하는 상장사들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민감할수록 '슈퍼 주총 데이' 좋아"…물적분할 앞둔 DB하이텍 '눈길'
실제로 풍산, GS건설 등은 2020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주총집중일에 주총을 개최했다. 이들 기업의 주총집중일 개최 사유는 '결산 및 외부감사인의 회계감사 소요기간, 장소대관 및 기타 일정을 고려했지만 결국 불가피하게 주주총회 집중일에 개최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매년 같았다.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기업들도 눈에 띄었다. 가장 많은 기업의 주총이 열리는 요일은 3월 중 금요일(29%)로, 총 479곳의 주총이 예정돼 있는데 공교롭게도 지배구조상 중요한 안건을 표결하는 기업들의 주총이 이 때 몰렸다.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17일)과 남양유업(31일)을 비롯해 소액주주들이 주주제안을 제출한 BYC(24일), 농심(24일) 등이 대표적이다. 차기 대표이사 선임을 앞두고 표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보이는 KT(31일)도 포함됐다.
DB하이텍은 금요일은 아니지만 가장 많은 기업들이 주총을 진행하는 이달 29일을 택했다. DB하이텍은 반도체 설계사업(팹리스)을 자회사로 분사하는 물적분할을 이번에 안건으로 올렸는데 소액주주들이 이를 반대하고 나서며 지난 9일 사측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들은 향후 신설 법인의 상장 가능성을 열어둔 정관 문구를 삭제할 것 등을 요구하며 오는 14일까지 공식 답변하라고 압박했다.
사외이사 선임의 건도 문제가 되고 있다. 앞서 지난달 14일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는 회사에 주주제안을 통해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한승엽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 선임을 제안했고, DB하이텍은 이를 제4-2호 의안으로 정했다. 또 집중투표제를 6호 의안으로 올렸다. 상법상 주주총회 결의는 일반적으로 표결 결과 가결됐을 때 효력이 발생하는 만큼, 집중투표제가 2호 의안에서 결의될 시 다음 안건인 사외이사 선임에서 집중투표제가 적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LG전자, 현대제철 등 일반적으로 기업들의 주주총회 정관 변경의 건은 재무제표 승인의 건 바로 다음인 제2호에 기재되곤 하는데 DB하이텍은 이를 제6호 의안으로 미뤘다"며 "회사의 입맛대로 사외이사를 선임하기 위해 일부러 집중투표제를 6호 의안으로 미룬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이사회 전문성 강화 나선 재계…신사업 드라이브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차, LG 등 주요 기업들은 이사회 전문성·주주가치 강화와 함께 복합위기 속에서 미래 준비를 위한 새로운 먹거리 마련에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당초 관전 포인트였던 이재용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안건을 포함하지 않았다. 책임 경영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 등을 고려해 등기임원 복귀 시점을 미룬 것이다.
또 '갤럭시S22' 시리즈의 성능 저하 논란으로 한종희 대표(부회장)가 주주들에게 사과했던 지난해 주총과 달리 올해는 논란이 될 만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 한 부회장의 등기임원 임기가 오는 17일 만료돼 재선임 안건을 다루는 것이 그나마 가장 큰 이슈다. 다만 최근 반도체 수요 부진으로 말미암은 위기 상황 극복 전략을 주주들에게 설명하며 대규모 감산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힐 지 주목된다.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SK하이닉스도 주주가치 개선을 위한 전략을 공유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메모리 시장 침체로 수익 악화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해 SK하이닉스는 최근 회사채 발행에 2조원 규모 뭉칫돈을 확보했다.
또 SK하이닉스는 여성 사외이사 확대에도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번 주총에선 SK하이닉스는 김정원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을 사외이사로 신규선임하고, 한애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로 재선임한다. 주총을 통과할 경우 사외이사진은 총 7명으로 늘어나고, 이 중 여성 이사 수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어난다.
삼성전기는 최종구 이사장 사외이사 선임 안건과 함께 여윤경 이화여대 경영학 교수의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을 다룬다. 최 이사장은 금융위원장 시절 공개적으로 '삼성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겨냥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종용했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오는 23일 열리는 현대차 주총에선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1명씩 추가 선임, 이사회 정원을 11명에서 13명으로 확대하는 안건을 논의한다. 사내이사는 5명에서 6명으로, 사외이사는 6명에서 7명으로 늘어난다. 이를 통해 이사회 다양성과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현대차는 먼저 투자자가 배당액을 보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도록 배당 절차를 개선하는 등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도 더 강화할 방침이다.
여기에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선언한 중고차 사업을 올해 본격 추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정관 내 사업 목적에 금융상품판매대리·중개업을 추가하는 것이다. 다만 최근 중고차 시장 침체로 사업 개시 시점은 다소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난해에는 인증 중고차 사업 진출을 계획했다가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 권고로 올해 5월로 진출 시기를 미룬 바 있다.
LG전자는 '기간통신사업'과 '화장품판매업'을 새롭게 추가하면서 미래 먹거리 사업 발굴을 추진한다. 또 서승우 서울대 지능형자동차IT연구센터장을 새 사외이사로 영입해 성장 가도에 오른 전장사업에 더욱 힘을 싣는다는 방침이다.
한화솔루션은 큐셀부문(한화큐셀) 이구영 대표를 사내이사로 선임한다. 이 대표는 미국 조지아주에 약 3조2천억원을 투자해 '솔라 허브' 구축을 추진하는 등 태양광 사업을 이끌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박진규 전 산업부 차관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자립화 움직임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LG이노텍은 오는 23일 주총을 열고 노상도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 교수를 선임한다. 노 교수는 스마트팩토리 분야와 모빌리티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높은 이해도를 갖춘 인물로, 향후 LG이노텍의 B2B·전장 등 신규 사업에 대한 기술 증진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LG디스플레이는 오는 21일 주총을 열고 디스플레이 분야 전문가로 저명한 박상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를 사외이사에 선임할 계획이다. 만일 박 교수가 선임될 경우 LG디스플레이 여성 사외이사는 총 2명이 된다.
이 외에 포스코홀딩스는 17일 주총에서 본사 소재지를 포항으로 이전하는 안으로, 한진은 23일 오너가 3세인 조현민 미래성장전략 및 마케팅 총괄 대표이사 사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하는 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공격적인 신사업 확대보다는 안정적인 사업 유지에 무게추를 두는 기업들이 많은 듯 하지만, 장기적인 신사업 발굴과 인공지능(AI) 등 떠오르는 분야의 전문가를 적극 영입해 미래를 대비하는 곳들도 상당수 있다"며 "올해 주총에선 주주들에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침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과 의지를 밝힐 곳들도 많은 듯 하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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