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민혜정 기자] 미국 정부가 반도체 생산 지원금을 받는 기업은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 증진을 최우선으로 두고 기업의 초과 이익 공유, 재무 건정성을 검증 받아야 한다는 엄격한 조건을 내걸었다.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거나 계획 중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앞서 미국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을 받을 시 중국 공장 투자를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사실상 경영 개입에 가까운 깐깐한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보조금이 기업에 이익이 될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계륵에 가깝다는 우려도 나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표한 반도체 생산 보조금 6개 심사 기준의 골자는 미국의 경제·안보 목표 달성이다.
미국 상무부는 미국에 군사용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거나 국방부 등 미 정부기관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공개하는 기업을 우대하기로 했다.
또 상무부는 재원이 낭비되지 않도록 보조금 사용을 철저하게 감시하겠다는 방침이다. 2천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예상치를 넘는 초과이익을 올리면 이를 미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상무부는 "전망치가 크게 초과하는 경우만 이에 해당하며 공유분은 지원금의 75%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사업에 따라 초과 이익 공유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예외 조건을 달았다.
미 상무부는 보조금 한도를 설정하지 않았지만 설비투자액의 5~15%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원은 직접적인 보조금과 대출, 대출 보증 등의 형태로 이뤄진다. 지원 대상엔 반도체 연구·개발은 물론 설계, 생산, 패키징에 이르기까지 반도체 모든 과정이 포함됐다. 기술 수준은 첨단은 물론 보급형 반도체까지 아울렀다. 사실상 반도체 공급망 전체를 자국 안에 포섭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상무부는 "보조금과 대출 등을 포함한 총 지원액은 전체 설비투자액의 35%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조금 심사 기준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경우 10년간 중국 투자가 제한되는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 세부 규정과는 별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 진출한 분야인 메모리 반도체와 패키징에 대한 투자 규제는 미 상무부가 추후 별도 기준을 발표하기로 했다.
다만 상무부는 "중국 등과 공동 연구 또는 기술 라이선스를 진행하면 지원금 전액을 반환해야 하며 10년간 우려국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가 금지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보조금 신청 대상이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170억 달러를 들여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SK하이닉스도 미국에서 첨단 패키징 공장 신설을 준비 중이다.
문제는 반도체법의 '가드레일' 조항과 깐깐한 지원 잣대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와 다롄에 공장을 운영 중이다. 국내기업으로선 반도체 생산 거점인 중국을 포기하기 어렵다.
업계는 반도체 보조금 지원법안이 '제2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지 전기자동차 생산시설이 없는 현대자동차그룹이 한동안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반도체 기업들의 셈법도 복잡해져셔다.
업계 관계자는 "세부 지침을 봐야 한다"면서도 "가드레일 조항도 고민이지만 민간 기업의 경영 성과까지 통제하겠다는 것 같아서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예외 조항도 있기 때문에 세칙을 보면서 지원받을 수 있는 보조금 규모를 산정해야 할 것 같다"며 "미 정부와 협의가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국내 기업들의 손해를 줄일 수 있도록 미국 정부와 협의를 지속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가드레일 세부규정 마련 과정에서 우리 기업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미 관계당국과 계속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혜정 기자(hye55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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