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종성 기자] 미국 정부가 북미 지역에서만 최종 조립·생산된 전기차에만 구매보조금 혜택을 지급하는 등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를 시행하기로 하면서 국내 전기차 보조금 지원 제도도 개편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이 자국의 전기차 산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보조금 혜택을 주는 반면, 한국은 국산차와 수입차 구분 없이 지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보급 목표에 치중한 보조금 정책이 자국 산업 육성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개선되는 등 보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5일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IRA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이날부터 오는 7일까지 사흘 일정으로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국 정부와 의회 주요 인사를 만난다고 밝혔다.
IRA는 북미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한국산 전기차는 최대 7천500달러의 구매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현대차와 기아는 현재 아이오닉5와 EV6 등 전기차를 전량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고 있어 미국 내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난주 산업부·기획재정부·외교부로 구성된 정부 합동 대표단의 방미에 이어 이번에는 안 본부장이 직접 미국을 찾아 고위급 대미(對美) 협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최근에는 국회에서도 여야 합의로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 우려 결의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이번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차등 지급 결정으로 국내 전기차 보조금 지원 정책에 대한 개편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기차는 아직 가격이 높아 많은 국가가 보조금을 통해 소비자들의 실구매가를 낮춰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 유럽 등 여러 국가에서는 보조금을 자국 산업 육성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에서 생산하지 않은 전기차에는 아예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30만 위안(약 5천800만원) 이상인 전기차의 경우에는 배터리 탈부착 장치(BaaS 기술)가 내장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에 따라 지리차, 베이징차 등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배터리를 탈부착하는 차량의 출시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사실상 자국산 우대 정책을 펼치는 셈이다.
유럽과 일본도 자국 완성차업계가 가진 이점을 활용해 보조금을 차별 지급하고 있다. 독일은 자국 브랜드가 강점을 가진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에, 프랑스는 르노가 주력으로 생산하는 경·소형 전기차 위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자유무역협정(FTA) 등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일종의 우회로를 통해 자국 산업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한국은 연비·주행거리·에너지효율·가격 등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지만, 국내산과 수입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의 차별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전기차 시장에서 미국과 중국의 전기차가 국산차보다 오히려 큰 혜택을 누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로 미국 IRA 통과 이전부터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한 전기차의 무역 적자는 꾸준히 확대됐다. 중국은 상용차를 중심으로 2017년부터 전기차 무역적자가 큰 폭으로 늘었고, 고가의 미국 테슬라도 한국 시장에서 선전했다.
특히 초소형 전기차의 경우 중국산 플랫폼을 사용한 차에 대당 400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돼 한국 세금으로 중국 초소형 전기차 산업을 육성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중국산 전기상용차(버스·화물) 판매량은 1천35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159대)에서 8배 이상 급증했다. 이에 국내 전기상용차 시장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점유율도 같은 기간 1.1%에서 6.8%로 크게 높아졌다. 특히 중국산 전기버스의 경우, 국내 시장 점유율 48.7%를 차지했다.
정만기 KAMA 회장은 "무차별 보조금 제공 등으로 전기버스 등 전기상용차 시장에서 점유율이 급증 중인 중국산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며 "수입산과 국내산 간 무차별 원칙은 지켜가되, 국내·외산 간 차별 대우를 하는 중국 등 일부 국가의 경우엔 상응 대책 마련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국내 미래차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기차 보조금 제도 개선, 전기차 수출업체에 대한 한시적인 법인세 감면, 전기차 수출보조금 지원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전기차 보급 목표 달성에 치중한 나머지 전기차 수입 촉진책으로 변질되고 있는 무공해차 보급목표제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전기차 보조금 개편에 긍정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국내 전기차, 배터리, 국내 투자 등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는 입장이다. 환경부도 보조금 지급 개편을 추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추진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올해 말 '2023년 전기차 보조금 지침'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서 특정국가의 제품을 명시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국제규범상 어렵지만, 자국산 제품의 특성을 고려한 보조금 지급 방식을 만들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세울 수 있다"며 "국내에서도 전기차 보조금의 실익을 높일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을 꾸준히 모색해야 하며, 특히 전기차 관련 기업의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종성 기자(star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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