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효정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영업이 어려워 '코로나 대출'을 받으려고 은행에 갔더니 과거 대출 갚은 기록이 아직도 신용보증기금에 남아 있어 대출이 안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식장 매출은 반토막 났는데 과거 이력 때문에 '코로나 대출'도 안된다니…답답합니다."
충청도에서 요식업을 하는 A씨(51)의 말이다. 최근 국민은행을 찾아 '소상공인 2차 금융지원 프로그램'으로 대출을 신청했던 A씨는 뒤늦게 은행으로부터 '대출 불가' 소식을 전해듣고는 답답함에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19 이전에 발생한 과거 빚을 다 갚았는데도 아직 신용보증기금에는 사업자대출의 대위변제 이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장사하기 어려운 A씨는 대위변제 기록을 남겨두는 제도적 사각지대에 있어 급전 구하기도 어려워진 것이다.
◆ "코로나 대출 안됩니다"는 말에 자영업자는 '암울'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A씨는 지난 8월 초에 국민은행을 찾아 '소상공인 2차 금융지원 프로그램'으로 대출 1천500만원을 신청했다. 지난해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서를 통해 대출을 받기는 했지만 계속 줄어드는 매출에 급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A씨가 신청한 '소상공인 2차 금융지원 프로그램'은 소상공인이 최대 2천만원까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긴급 자금대출 지원제도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차 소상공인 지원프로그램은 9월 현재 목표금액 10조원 가운데 2조5천억원 남은 것으로 집계돼 아직 여력이 상당히 남아있다.
특히 금융당국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소상공인 2차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그동안 어려운 자영업자들을 위해 대출금리를 내리고 대출한도를 늘려줬다. 적용 가능한 업종에 집합제한업종을 포함시키는 등 지원대상을 넓히고 보증심사 요건도 완화해 코로나19로 어려운 소상공인들을 위해 자금을 공급해왔다.
대출은 시중은행에서 보증과 대출이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위탁보증 방식으로, 대출을 신청하면서 은행을 통해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 발급(보증비율 95%)까지 가능해 편리하다. 또한 코로나19로 어려운 소상공을 위해 신보가 보증서를 발급할 때도 금융사 대출금 연체, 국세·지방세 체납 등 간단한 사항만 확인하고 현장조사도 생략해 신속한 자금지원이 가능하다. 보증서를 발급해준다는 것은 한마디로 대출자가 빚을 갚지 못하면 보증비율만큼 신용보증기금이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 코로나 대출은 '불가'…8년 걸려 다 갚은 대출 기록 신용보증기금에 남아있기 때문
A씨는 대출 자격 요건이 되는 줄 알았으나, 며칠 뒤 은행으로부터 대출이 안된다는 소식을 듣고 허탈함을 금치 못했다.
그가 코로나 대출을 받지 못한 것은 과거 빚을 다 갚았는데도 해당 기록이 신용보증기금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A씨에 따르면 1999년 그는 부인과 함께 제조업체를 운영할 때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를 통해 사업자 대출을 받았다. 사업자등록을 부인 명의로 했기 때문에 A씨는 보증인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로 사업자대출과 개인카드대금 등 2천400여만원을 갚지 못했다. 이후 어려워진 형편 때문에 대출을 갚다가 못갚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채무조정제도를 밟았다. 당시 2천400여만원의 빚 중 40%와 이자 등은 보증서를 내어줬던 신용보증기금이 대위변제해줬다. 대위변제는 보증서를 내준 신용보증기금이 대신 빚을 갚아줬다는 뜻이다.
남은 대출금 60%는 2011년부터 8년간 착실히 상환해 2019년에 모두 갚았다. 그렇게 다시 2년의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는데, 신용보증기금에는 그의 대위변제 이력이 남아있어 '소상공인 2차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A씨는 "8년간 남은 빚을 다갚고 지금은 2년이 지났는데 왜 대출이 안되는지 모르겠다"며 "전년대비 작년 매출은 20%, 올해는 40% 더 줄었는데 대출을 이용하기 어려우니 말로만 금융 지원이고 실제로 소상공인은 이런 '보증 대출'을 받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은행에서는 신용보증기금에 대위변제 기록이 남아있어 대출이 거부당했다는 설명을 들어 국민신문고며 신용회복위원회, 신용보증금기금 등에도 문의도 했지만 안된다고 하더라"며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코로나 대출을 이용하려고 지난달 신청 첫날 홈페이지를 통해 대출을 받으려고 보니 40분만에 접수가 마감됐다"고 토로했다.
◆ 과거 빚 갚은 A씨의 기록…왜 신용보증기금에 남았나
원래 A씨처럼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제도 통해 원금을 탕감받은 후 남은 빚을 청산하면 있는 관련 연체 기록이 신용정보원 시스템 등에서 삭제된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채무조정을 신청해 확정되면 연체정보를 지우고 신복위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공공기록만 남긴다"며 "나중에 빚을 모두 갚으면 관련 기록은 사라진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A씨가 과거에 대출을 받았던 상품은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를 바탕으로 받은 사업자 대출이기 때문에 채무조정제도를 통해 빚을 모두 갚아도 신용보증기금 내부에는 과거 기록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빚을 다 갚았어도 신용보증기금 내부적으로 대위변제 정보나 부실 정도 등 관련 기록을 5년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2019년에 채무를 털어낸 A씨는 5년 뒤인 2024년까지 신보 내부적으로 기록이 남게 된다.
이 때문에 소상공인 2차 프로그램의 대출이 실행되지 못한 것이다.
신보 관계자는 "사업주가 신용회복위원회에 보증부대출에 대한 채무조정을 신청하면 보증 후속으로 금융기관에 대위변제가 이루어진다"라며 "보증기관의 부실 및 대위변제 이력을 보유한 기업은 '소상공인 2차 금융지원 프로그램'의 심사항목에 저촉되어 보증지원이 제한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보는 A씨와 같은 채무조정을 완료한 사람들을 위해 재기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보 관계자는 "신용회복지원 절차를 포함한 법적 채무조정을 완료한 자에 대해 '법적 변제의무 종결기업보증' 지원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며 "신용회복지원 절차 등을 통한 채무조정자 등에 대해서는 현장조사 등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해 직접보증을 통해서 지원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A씨는 "채무조정제도를 거친 사람들을 위한 보증이 있다고 해서 신보의 재기지원단에도 전화를 해봤더니 재기지원단의 한 해 지원금이 70억원 수준이라며 우리 같은 소상공인에게는 돌아갈 돈이 없다라는 답변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보 직원에게 문의를 하니 편법적으로 과거 채무조정할 때 탕감받았던 대출 원금을 갚으면 소상공인 2차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하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효정 기자(hyo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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