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고정삼 수습 기자] 지난달 25일 오후 8시 23분께 방문한 서울 동작구 사당1동의 남현동 먹자골목. 이 골목은 유동인구만 1만5천여 명에 달하는 사당역과 인접해 저녁 시간대면 평일·주말 구분 없이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이날은 한산했다. 입구를 따라 길게 늘어선 식당들 내부도 손님 발길이 끊겨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20개의 테이블을 구비해 놓은 횟집은 두 명이 한 테이블을 차지한 게 전부였다. 준비된 테이블 3분의 1 이상을 손님으로 채운 식당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오후 9시가 임박하자 식당 안에 자리 잡고 있던 몇 안 되는 손님마저 가게 문을 나섰다.
◆ 자영업자 "반복된 영업 제한에 빚만 눈덩이"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 장기화 대응 일환으로 지난달 23일부터 2주간 식당·카페 영업시간을 오후 10시에서 9시로 단축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시행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실효성 없는 영업시간 단축 조치로 확진자 수는 못 잡고, 애먼 자영업자들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남현동 먹자골목에서 20년간 '터줏대감' 역할을 해온 냉동삼겹살집은 코로나19 이전에는 새벽 5시까지 장사를 해왔지만, 반복된 거리두기 조치로 1년 넘게 7~8시간가량 영업시간을 단축해왔다. 자연스럽게 매출도 반 토막이 났다.
이곳의 직원 김모(60대·여)씨는 "영업시간이 밤 10시에서 9시로 고작 1시간 줄어든 것처럼 보이겠지만, 우리 가게는 (냉동된) 고기를 구워서 홀에 서빙 하기 때문에 사실상 8시면 손님을 못 받는다"며 "결과적으로 하루 영업시간은 2시간 정도 줄어든 셈이고, 하루 매출도 20~30만원씩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냉동삼겹살집 맞은편 대로에 위치한 육회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육회집을 운영하는 박모(70대·여)씨는 "확진자가 늘어나니까 정부가 무슨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한번 조치를 할 때 확실하게 해야 하는데, 자영업자 영업 통제만 강화하고 집회나 한강공원처럼 사람 많이 모이는 장소는 느슨하게 한다"고 토로했다.
◆ 백신 인센티브, 상권별 효과 ‘제한적’
정부는 영업시간을 1시간 단축하면서 백신 2차 접종 완료자를 인원 제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백신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하지만 상권의 주 고객층에 따라 효과는 제한적인 모습을 보였다.
같은 날 오후 9시 40분께 찾은 경기도 수원시의 한 대학가 골목상권에는 대부분의 식당 불이 꺼져 있었다. 장사를 마무리하고 뒷정리를 하고 있던 곱창집 사장 강모(48·남)씨는 이날 은행에서 대출 1천500만원을 받았다고 전했다. 평소에는 평일 100만원, 주말 250만원의 일매출을 기록했지만, 영업시간과 인원 단축이 반복되면서 평일과 주말 각각 30만원, 80만원으로 매출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강 씨는 "영업시간 10시까지에 손님을 4인까지 허용할 때는 그래도 버틸만했다"며 "허용 인원을 2인으로 바꾸더니 지금은 영업시간마저 줄였다"고 푸념했다. 이어 "상권 특성상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대학생들이 대부분이라 백신 인센티브는 있으나 마나"라며 "백신 접종은 계속 늦어져 왔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영업자들에게 전가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비판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음식업종은 배달 체제를 도입해 비대면 문화 확산의 혜택을 입기도 했지만, 고령의 사업주들은 배달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실제 지난 3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0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필요한 앱을 설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60대 이상 응답자는 52%에 달했다. 또 인터넷으로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답한 고령층은 33%에 불과했다.
김밥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하는 박모(63·여)씨는 "이번 달에 배달을 시작했는데, 직원 대부분이 고령이다 보니 기계 다루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한 번은 포스기에서 배달 주문을 잘 다루지 못해 배달이 늦어졌는데, 금방 안 좋은 리뷰가 달렸다"고 말했다.
◆ "영업시간 완화하고 방역수칙 강화해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일고 있는 영업시간 단축 조치에 대해 자영업자들은 "영업시간을 완화하는 대신 방역수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다시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육회집을 운영하는 박씨는 "영업시간은 최소한 10시로 보장해주되, 자영업자들을 포함해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있는 다른 장소나 모임에 대한 행정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곱창집 사장 강 씨도 "식당에 찾아온 손님들이 머무르는 시간이 지금보다는 늘어나야 최소한 적자를 내면서 장사하는 것은 막을 수 있다"며 "환기부터 손 소독제 사용 등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유도하고, 영업시간은 적어도 10시를 마지노선으로 연장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앞서 소상공인연합회도 정부의 영업 단축 조치에 대해 논평을 통해 "'접종 완료자 4인 모임'이 허용되긴 했지만, 실제 매장에서는 입장객 선별에 혼란이 있고 주 고객층인 50대 이하 접종은 아직 시작도 안 된 상황으로 실효성이 적다"며 "매장 면적, 특성 등을 고려해 거듭되는 영업 제한과 '매출 실종' 사태에 놓인 소상공인 문제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수립해줄 것을 정부와 국회에 촉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수도권 지역 식당·카페 영업시간을 다시 오후 10시까지로 확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3일 발표했다. 사실상 정부가 명분만 앞세워 무리하게 추진한 영업시간 단축 조치의 실패를 인정한 셈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그간 거듭된 방역 강화 조치로 생계의 고통을 호소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절규를 정부가 더 이상은 외면하기 어려운 것도 지금의 현실"이라며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는 방역을 탄탄하게 유지하되, 민생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도록 방역 기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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