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유전무죄 무전유죄


[아이뉴스24 김동호 기자]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그 해 가을, 한 탈주범의 외침은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정확히는 1988년 10월 15일 밤, 서울 북가좌동에 위치한 한 가정집에 탈주범 4명이 침입했다. 이들은 가정집에 있던 가족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10시간 가량 대치하며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질범들은 자신의 형량이 불평등하다고 주장하며 농성을 벌였다. 인질범 중 마지막까지 경찰과 대치했던 지강헌은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외쳤다.

그는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소리쳤다.

결국 인질범 대부분이 사살되거나 자살하면서 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이 사건은 이른바 '지강헌 사건'으로 불리며 이후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영화의 제목은 '홀리데이'로, 지강헌이 최후의 순간에 호주 록밴드 비지스(BeeGees)의 노래 '홀리데이(holiday)'를 들었던 것이 모티브가 됐다.

1988년 10월 발생한 '지강헌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 '홀리데이'가 제작됐다. 당시 지강헌이 인질극을 벌이는 도중 외쳤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이후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 '홀리데이'의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지강헌이 언급했던 전경환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으로, 당시 수십억원 규모의 사기 및 횡령 등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전씨는 2년 정도 실형을 살다가 풀려났으며, 이후에도 또 다시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지강헌 역시 다수의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라는 점에선 동정의 여지가 없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그의 외침은 상당한 사회적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 말은 당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며, 더 나아가서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라고 할 수 있다.

지강헌 사건이 있고 난 후 30여년이 흐른 2019년 10월의 어느 날, 국내 1위라고 불리던 사모펀드회사가 대규모 펀드 환매중단을 선언했다. 환매중단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투자자는 3천600여명, 피해액은 1조6천억원으로 추정되는 라임자산운용 사태다.

라임자산운용은 환금성이 낮은 해외자산에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투자했음에도, 피해자들에겐 언제든 환매할 수 있는 개방형 펀드라고 소개했다. 또 해외자산의 부실을 인지한 이후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펀드 자금 돌려막기를 통해 부실을 숨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당국과 사법당국의 대대적인 조사와 수사가 진행됐지만, 몇몇 관련 인사가 구속됐을 뿐 여전히 많은 의문점들이 남아있는 상태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청와대 및 여권 유력인사 연루설 등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보다 철저한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어 터진 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도 마찬가지다. 안전한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속여 펀드를 판매한 옵티머스의 경우엔 명백한 사기로 볼 수 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더디기만 하다. 금융당국은 은행과 증권사 등 펀드 판매사들의 팔을 비틀어 투자 피해자 달래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일부 은행과 증권사가 펀드 판매액 전액을 보상해 주기로 결정했다. 다른 판매사들도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강산이 3번이나 변했다. 라임과 옵티머스 뒤엔 누가 있는가?

/김동호 기자(istock79@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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