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오픈사이언스는 디지털 혁신, 데이터 중심의 R&D(연구개발) 혁신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기반이다. 국가 정책에서 오픈사이언스에 대한 철학을 하루 빨리 정립해야 하는 시점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국가슈퍼컴퓨팅센터와 국가과학기술연구망을 기반으로 연구자들에게 과학기술 연구 인프라를 제공하고, 논문·연구보고서 등 과학기술정보를 종합적으로 수집·분석·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R&D와 정책 수립에서 데이터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면서 국가과학기술 데이터를 총괄하는 KISTI에 요구되는 역할도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월 취임한 김재수 KISTI 원장은 '과학기술인프라, 데이터로 세상을 바꾼다'는 KISTI의 비전과 함께 '오픈사이언스 기반의 디지털 혁신'을 기관의 최우선 목표로 내세웠다. 국가과학기술데이터본부장으로 일하면서 오픈액세스, 오픈데이터, 오픈콜라보레이션에 이르는 오픈사이언스 연구를 총괄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차원의 오픈사이언스 정책수립에 기여하겠다는 각오다.
김 원장은 아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콘텐츠, 컴퓨팅,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데이터 기술'에 관한 전문 연구개발(R&D) 기관인 동시에, 대국민 과학기술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서비스 기관으로서 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했다.
특히 비전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추진전략으로 '디지털전환, 애자일, ESG'라는 민간기업에 어울릴 법한 키워드를 제시함으로써,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대응해 조직과 업무를 유연하게 설계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서비스 효율을 높이겠다는 의지도 표현했다.
취임 3개월째를 맞은 김재수 원장을 만나 KISTI의 비전과 데이터 중심 R&D 혁신, 오픈사이언스에 대한 철학을 들어보았다.

-'과학기술 인프라와 데이터로 세상을 바꾼다'는 비전이 KISTI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면서 무언가 거창해 보인다.
"핵심 키워드는 데이터다. 우리가 말하는 데이터 기술은 과학기술 콘텐츠, 콘텐츠를 처리해야 하는 슈퍼컴퓨터와 컴퓨팅 인프라, 데이터를 주고 받는 네트워크, 데이터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기술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KISTI가 갖고 있고,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데이터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들이 있어서 앞에 과학기술 인프라 라는 수식어를 굳이 넣었다.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넣은 것은 보다 안전하고, 쉽고, 편안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연구지원기관으로서 연구개발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더욱 기여하겠다는 선언이다. 인공지능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부와 기업의 의사결정 지원, 기술사업화 지원, 산업 경쟁력 강화, 일자리 창출, 국가·사회 현안 문제 해결 등이 모두 KISTI가 강화해야 할 역할이다. 기업 대상 서비스를 예로 들면 서비스를 그냥 던져주고 마는 게 아니라 성장시키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맨 앞에 내세운 목표가 '오픈사이언스 기반 디지털 혁신, 데이터 중심의 R&D 혁신제제 구축'인데, 국가적인 오픈사이언스 정책 속에서 KISTI가 맡은 역할은 무엇인가?
"기관 차원에서는 국가R&D 혁신을 지원하는 국가 오픈사이언스 체계를 마련하는 게 목표다. 국내외 과학기술정보, 국가R&D정보, 연구데이터, 인공지능(AI) 데이터를 전면 개방하고 AI 기반의 오픈사이언스 통합플랫폼을 구축·운영하고자 한다. 소재, 바이오 등 분야별로 연구데이터를 공유하고 활용하는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국가적으로 오픈사이언스 정책이 제도적으로 확립돼 있지 않고 전담조직도 없다. 다만 KISTI는 국가과학기술데이터본부의 각 센터가 오픈액세스, 오픈데이터, 오픈콜라보레이션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면서 국내의 오픈사이언스 활동을 주도해 왔다. 국제적인 오픈사이언스 운동 참여를 위한 국가 대표기관이 지정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 막스플랑크가 주도하는 OA(오픈액세스)2020 이니셔티브에도 KISTI는 기관 차원에서 참여의향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25개 출연연이 공동으로 엘스비어와 오픈액세스 전환 계약을 체결한 것도 그동안 KISTI가 주도한 오픈액세스 활동의 대표적인 결과물의 하나다. 지난 10여년간의 노하우와 인프라, 협력 네트워크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올해 11월에 열리는 오픈데이터 관련 세계 최대 행사인 IDW(International Data Week)를 한국에 유치한 것도 그간의 연구 활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오픈사이언스를 위해 현재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는?
"무엇보다 국가 오픈사이언스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픈사이언스 관련 활동의 틀을 제공할 법적 제도적 근거규정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연구재단, 과총 등에서도 국가 OA정책을 수립하고 이행계획들을 본격적으로 논의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도 상당부분 논의가 무르익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 차원에서는 우선 OECD가 권고하는 오픈사이언스의 철학을 과학기술기본법에 담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선언적이나마 일단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국가 R&D제도에 반영되고, 각종 하위 규정들에 차례로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국내 연구기관들이 가장 시급하게 요구하고 있는 오픈액세스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 집행도 가능해 질 것이다.
-오픈데이터의 확보도 중요할 것 같다. 정부의 디지털 뉴딜 사업으로 데이터댐 구축도 KISTI가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진행상황은?
"지난해 추경으로 진행된 데이터댐 구축 사업에서 KISTI는 논문·연구보고서 등 과학기술정보 분야를 담당했다. 지난 1월까지 총 450만건의 기계학습 데이터 구축을 완료하고 품질관리 등 최종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연말 쯤에는 일반에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연구자들이 많이 사용하게 되겠지만 AI 벤처기업 등 산업계에서도 활용했으면 좋겠다. 예컨대 AI 과학교사 같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현재 기계학습 데이터를 배포하고 그 안에서 분석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놓았다. 전문분야에서는 한글로 된 기계학습 데이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오픈하면 많이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논문과 연구보고서 외에 연구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공개도 오픈사이언스 취지에서 필요하지 않나?
"연구데이터 공개는 민감한 부분이 있다. 연구과정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연구개발혁신법에 넣자고 주장했지만 안됐다. 국가 연구개발 과제 수행시 데이터관리계획(DMP) 제출에 관한 가이드라인만 적용된 상태다. 수집하더라도 서비스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연구데이터 공개는 연구자가 허락해야 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는 국가자산 관리 활용 취지에서 추진하는 것이지만 반대하는 연구자들도 많다. 인식조사 해보면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실제 제출은 꺼리기 때문에 의무사항으로 강하게 추진하기는 어렵다. 연구데이터에 대한 신뢰성 문제도 있다. 이러한 기술적, 제도적 부분이 같이 가야해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누구나 데이터 기반 R&D를 한다. 하지만 데이터공개·공유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스케일업과 융합이 어렵다는 인식과 문화가 형성되고 제도적인 보상책도 마련돼야 한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연구데이터 거래소 같은 개념을 연구데이터 오픈플랫폼에 구현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가 슈퍼컴퓨팅센터 운영기관으로서 미래 수요에 대응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이미 해외에서는 엑사플롭스(10^18 FLOPS)급 슈퍼컴퓨터가 등장하고 있다. KISTI의 대응은?
"국내에서도 이론성능만으로는 국가 슈퍼컴 5호기인 '누리온'을 뛰어넘는 프로젝트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연산속도만으로 성능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누리온은 거대 우주과학연구 등 민간의 수요와 다른 계산과학 용도로 최적화됐으며 실측 성능은 또다른 얘기다.
엑사컴퓨팅 시대에 대비한 국가슈퍼컴 6호기는 2023년 도입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한 초고성능컴퓨팅 로드맵이 6월 안에는 완성돼 하반기부터는 구축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6호기는 성능도 엑사급으로 구축할 예정이지만 국산 슈퍼컴 개발이라는 과제를 담고 있다. 또한 단순히 성능을 높이는 것 외에도 계산과학과 데이터처리를 융합할 수 있도록 아키텍처를 확장해 성능은 엑사급이면서 인공지능까지 포괄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를 지향할 것이다"
-비전과 목표 추진전략에 '디지털 전환'을 제시했다. KISTI 같은 디지털 전문 연구기관에는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닌가? 또, '애자일 전략'이 공공기관에서 가능할지 궁금하다
"디지털 전환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 KISTI는 해야 하는 일 자체가 디지털 전환 없이 버틸 수가 없다. 그럴려면 기획, 행정, 정책, 연구 전체가 디지털 전환해야 한다. 새삼스럽게? 라는 이야기 많이 하지만 공공기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아직도 많은 부분들이 남아 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 뿐만 아니라 우리 고객의 일까지 겉모습뿐만 아니라 체질적으로 완벽하게 디지털로 전환해야 한다.
애자일 전략도 공공기관에서는 상당히 도전적인 부분이지만 어쩔 수 없다. 공공기관이지만 연구소로서 애자일 전략이 효과를 볼 만한 영역이 충분히 있다고 확신한다. 상황변화에 대한 대응을 신속하게 하고 피드백을 빨리 받아야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할 수 소프트웨어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하지만 보수적인 공공기관에서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성실실패'가 경영진 뿐 아니라 동료들 사이에서도 인정하는 문화가 첫 출발이다. 애자일 전략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변화에 대응하고 선도해야 하는 분야에서는 돌파구로 삼아 볼 생각이다."
김 원장은 새로 제시한 비전과 조직문화를 위해 1대1로 전직원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데이터 경제시대에, 데이터 중심 연구기관으로 KISTI가 주목받고 있는 시점에서 먼저 빠르게 변화하지 않으면 오히려 위기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김재수 원장은=1985년 홍익대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한 후 1987년 한국외국어대에서 전자계산학 석사를 취득하고 2009년 홍익대에서 전자전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 KISTI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국가과학기술데이터본부장, 융합기술연구본부장, 첨단정보융합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최상국 기자(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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