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 지난 2011년 2월 10일. 아버지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그늘에 머물던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의 수장으로 올라섰다. 신 명예회장이 40여 년 이상 유지해 왔던 창업주 체제에서 2세 경영 체제로 탈바꿈한다는 점에서 재계의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특히 20여 년간 이어진 경영수업을 통해 보여졌던 신 회장만의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은 롯데의 미래를 이끌어가기에 충분하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신 회장은 올해 회장 취임 10주년을 맞았다. 롯데그룹은 이날 창립 54주년을 맞았지만 창립기념 행사도, 신 회장 취임 10주년 축하 행사도 없이 조용히 넘어가는 분위기다.
신 회장은 지난 2004년 10월 롯데 정책본부 본부장 취임을 시작으로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섰다. 평소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것으로 알려졌던 신 회장은 사업적으로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특히 롯데쇼핑을 지난 2006년 한국과 영국 증권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시켰고, 활발한 M&A와 글로벌 사업을 주요 성장 축으로 삼아 롯데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실제로 신 회장이 정책본부장을 맡은 후 롯데는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 미국 뉴욕팰리스호텔 등을 비롯해 하이마트, KT렌탈, 삼성의 화학 계열사까지 국내외에서 30여 건의 크고 작은 M&A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현재는 세계 20여 개 국에 다양한 사업부문이 진출해 있으며 해외 근무 인원도 5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롯데는 최근 곳곳에서 불안감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 2015년 경영권 분쟁 이후 중국 사드 보복, 불매운동,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매년 실적 악화가 이어졌던 것이 영향이 컸다. 지난해에는 대부분의 계열사가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국내 5대 대기업집단의 재무현황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5대 그룹 내 롯데의 매출 비중이 2015년에는 8.9%였으나, 2019년에는 7.7%로 1.2%p 감소했다. 롯데그룹 매출은 사업 부진으로 인해 2019년 74조5천억원에서 지난해 60조원대로 떨어졌다.
이탓에 신 회장은 최근 임직원들 향해 쓴소리를 자주 내뱉고 있다. 지난 1월 진행한 상반기 사장단 회의(VCM)에선 "혁신적으로 변하지 못하는 회사들은 과감한 포트폴리오 조정을 검토해봐야 한다"며 "투자가 결실을 보는 전략에 맞는 실행이 필수"라고 다그쳤다. 또 각 계열사마다 명확한 비전과 차별적 가치가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며 해결책으로 '혁신'과 '실행'을 재차 강조했다.
또 신 회장은 "업계에서 가장 먼저 사업을 시작했음에도 부진한 사업군이 있는 이유는 전략이 아닌 '실행'의 문제였다"면서 "이로 인해 롯데의 잠재력이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지난해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는 점에 대해 꼬집었다.
이 같은 모습에 롯데 직원들은 올해 들어 신 회장을 두고 "회장님이 달라졌다", "독해졌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특히 신 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수감됐던 지난 2018년 2~10월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고 분석했다.
재계에서도 신 회장이 '사법리스크'로 공백기를 가질 동안 내부 임직원들이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자신들의 '생존'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 신 회장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에 신 회장은 지난해 철저한 성과주의에 입각해 승진 및 신임 임원 수를 2019년보다 80% 수준으로 대폭 줄였고, 일부 계열사에선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퇴직도 권고했다. '세대교체'를 앞세워 젊은 인재도 전진 배치했다.
롯데는 산업 환경 변화에 제때 대응을 못 한 데다 이렇다 할 만한 신사업도 일구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실제 ▲굵직한 인수·합병(M&A)으로 외형을 키우고 신사업 진출을 이뤄낸 SK ▲바이오산업 진출로 시가 총액 5위에 드는 계열사를 일궈낸 삼성(삼성바이오로직스) ▲장기 투자 끝에 전기차 배터리 등 새 먹거리를 만든 엘지와 같은 변화와 도전 행보를 그동안 롯데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올해 들어 신 회장의 움직임은 빨라진 모습이다. 지난해 처음 글로벌 컨설팅사를 고용해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내부 진단을 받으면서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산업, 쿠팡을 넘어설 이커머스 모델 구축 등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다만 롯데가 남들이 하는 사업을 뒤늦게 따라하는 수준의 조직문화로는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아버지의 그늘에 있던 신 회장이 지난해 초 신 명예회장이 별세한 후 '뉴롯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올해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경영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위기 대응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까지 온 만큼 신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다시 나타날 것으로 관측된다"고 밝혔다.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은 어려운 시기를 마주할 때 마다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위기를 타파하고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맞이해왔다"며 "앞으로도 그룹의 양 성장축인 유통과 화학부문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한 투자를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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