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지혜 기자] "데이터 독점론에 근거한 온라인 플랫폼 규제는 한국의 디지털 산업 발전을 방해할 뿐 아니라, 정부의 디지털 뉴딜 정책과도 충돌합니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0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벤처기업협회·한국여성벤처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ICT 정책 세미나 '데이터 독점론, 그 실체를 분석한다'에서 "경쟁법 차원에서 데이터 독점은 구체적인 증명이 없는 주장 또는 슬로건"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GAFA)의 데이터 독점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연말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발표한 디지털시장법(DMA)이 대표적이다. 이는 온라인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제한을 위해 사전규제를 강화하는 게 골자로, 플랫폼의 의무 및 금지사항을 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방송통신위원회의 '온라인플랫폼이용자보호법' 등 쏟아지는 플랫폼 규제법 기저에는 데이터를 독점한 거대 온라인 플랫폼이 소비자 후생을 저해하고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날 세미나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데이터 독점론은 허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 교수는 "경쟁법상 시장지배력은 유료 시장에만 성립될 수 있어 무료 이용자가 많다는 이유로 데이터를 독점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료 서비스 시장에서도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는 소비자와 판매자의 효율성 증대를 상쇄할만한 경쟁 제한 효과가 있는지 증명된 바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공정위는 무료 시장에서도 독점 여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임경환 공정위 지식산업감시과장은 "무료 시장이라 하더라도 플랫폼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소비자들은 검색 정보를 주기 때문에 실질적인 가치 교환이 일어난다"라며 "거래가 있다면 이를 기반으로 시장을 획정하고, 시장 지배력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데이터 법적 개념 모호…데이터 소유권은 '사상누각'
전문가들은 데이터의 개념 자체가 모호한 데다, 인터넷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지식재산권과 달리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 교수는 "데이터 독점론의 또 하나의 특징은 데이터에 대한 이용자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라며 "인터넷 검색 시 자동으로 생성되는 개인식별정보는 이용자가 온라인 플랫폼을 위해 노동해서 만든 정보도 아니고, 창작물도 아니어서 지식재산권과 유사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권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데이터 소유권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그는 "데이터에 대한 개념·정의조차 정립돼있지 않은 현시점에서 전개되는 데이터 소유권론은 사상누각"이라며 "이런 난맥상 때문에 데이터 소유권을 법제화한 나라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데이터 소유권 도입은 데이터 거래 비용을 높여 오히려 데이터 이용에 걸림돌이 될 수 있고, 일부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의 데이터 독과점 상태를 강화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유럽에선 데이터 소유권이라는 새로운 권리의 창설은 필요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 유럽·한국 상황 다른데…"일방적인 '규제 베끼기' 안 돼"
해외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국내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GAFA가 지배하는 유럽·일본과 달리, 국내엔 네이버·카카오 등 성공적인 인터넷 기업이 많아 자칫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하려다 국내 산업만 옥죌 수 있어서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원 교수는 "유럽의 데이터 독점론은 경쟁법 차원에서 논의된 게 아니라, 유럽 산업 전체가 미국의 일부 거대 플랫폼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며 "데이터 소유권 자체가 법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현 상태에서 시장을 획정하고 시장지배력을 평가하는 건 불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이경원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EU나 일본에서의 논의가 레퍼런스처럼 빈번히 인용되는데, 이들 국가가 지향하는 정책적 목표가 우리나라와 다른 데도 같은 정책을 끌어오는 건 적절하지 않다"라며 "또 온라인 플랫폼은 국경이 없는데, 법이 비대칭적으로 적용된다면 이를 어떻게 해소할지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기보단 기존 법 집행에 무게를 싣는다는 입장이다.
임 과장은 "공정위는 EU처럼 사전규제하기보단 기존 공정거래법으로 (사후)규제하자는 입장"이라며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역시 기존 공정거래법을 온라인 플랫폼 영역에 맞게 조정한 것으로, EU의 DMA처럼 적극적인 사전규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 법 집행을 우선으로 하되, 외부 경쟁 당국의 행보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혜 기자(j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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