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몬 로바토의 ‘넷플릭스 세계화의 비밀(안세라 옮김, 유엑스리뷰)’에 따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텔레비전은 “멀리서 보다(tele-vision)”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 생태계에서 영향력을 높여 가고 있는 OTT를 이용하는 행위 역시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멀리서 본다는 행위에 포함된다. OTT도 텔레비전처럼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직접적으로 체험하기 어려운 정보와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달해 준다는 면에서 기존의 텔레비전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텔레비전 연구자들은 텔레비전 산업이 없어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OTT가 새로운 형태의 텔레비전이 되어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조너선 그레이와 어맨다 로츠는 ‘텔레비전 연구(윤태진, 유경한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전통적으로 텔레비전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 인식과 텔레비전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론 모두를 부정한다. 이들에 따르면 유튜브에서 제공되는 콘텐츠는 텔레비전에서 공급하는 콘텐츠를 재목적화 한 것이다.
조너선 그레이와 어맨다 로츠는 텔레비전을 둘러싼 변화된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텔레비전 연구의 지평을 넓혀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러 가지 각도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OTT와 관련된 논의 역시 텔레비전이라는 제도의 관점에서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텔레비전 산업 관점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데이터가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OTT 사업자는 물론이고, 기존 방송 사업자까지 현재는 데이터 활용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시 ‘텔레비전 연구’로 돌아오면 이 책의 저자들은 텔레비전 연구를 함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프로그램・텍스트’, ‘수용자’와 함께 ‘제도’를 꼽는다.
여기서 얘기하는 제도란 텔레비전이 놓여 있는 다양한 역학 관계를 의미한다. 텔레비전은 산업적인 측면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텔레비전은 광범위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텔레비전과 OTT를 포함한 텔레비전이라는 제도에 있어 데이터가 핵심적인 요소가 되어 가고 있다. OTT가 이용자에게 데이터를 활용하여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기존의 방송 사업자들은 OTT와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통한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존 방송 사업자들이 데이터와 관련하여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를 위해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사업자들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규제 환경의 조성이다.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의 경우 기술규제, 요금규제, 채널규제 등으로 인하여 자유로운 서비스 구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규제로 인해 OTT와 비교할 때 제한된 범위의 서비스만을 제공할 수 있다면 이용자 입장에서 유료방송 플랫폼 서비스를 OTT 보다 편의성이 떨어지는 열등재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기존 방송에 적용되고 있는 다양한 광고 규제와 내용 규제도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부합하게 개선해야 한다. 규제완화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은 사후규제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허가나 M&A 시에 붙는 조건들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데이터 활용이 중심이 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미디어 분야에 특화된 데이터 거버넌스 혹은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부처 통합이나 개편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분야와 관련된 부처와 사업자들이 데이터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을 검토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 3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데이터 활용과 관련된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필요한 경우 사업자간 데이터를 결합하거나 공유하여 데이터의 가치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 결합 사례가 충분히 축적되어 있지 않으므로 관련 부처에서 가능한 데이터 결합 및 활용 사례를 만들어 제시하는 등의 방안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용자의 데이터 리터러시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데이터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 나에게 추천해주는 콘텐츠나 서비스가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K 콘텐츠 이용순위가 높아지면서 넷플릭스를 포함한 글로벌 SVOD 사업자의 콘텐츠 이용순위를 공개하는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서 제공하는 순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승리호'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직후 1위를 차지하자 K 콘텐츠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으나 과연 플랫폼에서 자체적으로 공개하는 이용순위가 믿을 만한 것이냐 하는 의문도 제기됐다.
이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가 이용자 입장에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요한 것은 이용자들이 데이터 기반 사회에서 데이터 기반 서비스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데이터 관련 문해력을 높이는 것은 데이터 기반 환경에서 정부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OTT로 인해 텔레비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봤을 때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데이터라고 얘기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다.
OTT 사업자들이 기존의 텔레비전 제도를 이해하면서 성장해 왔듯이 기존의 텔레비전 사업자들도 OTT로 인해 변화된 지형을 데이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도 데이터 기반 환경에 맞게 보다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사업자든 정부든 데이터 관련 고민은 이용자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용자 중심으로 사고 하지 않는다면 사업자가 내놓은 서비스는 선택받기 어렵다. 최적화가 강조되는 데이터 기반 환경에서 사업자가 더욱 이용자 중심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 입장에서 최고의 정책적 기대효과는 국민 복지 향상이다. 데이터 관련 정책도 이용자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데이터 기반 환경에서 텔레비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대답에 대한 물음은 현재진행형이고,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지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는 텔레비전의 형태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
◆노창희 실장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석·박사를 취득한 방송 전문가로 현재 미디어미래연구소 방송통신정책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이가도 한 노 센터장은 방송학회와 정보통신정책학회의 편집위원, 방통위 보편적 시청권 연구위원회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올바른 정책적 방향에 대한 연구 및 저서 등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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