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국내 주요 상장사들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면서 각 기업들의 안건에 대한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시즌에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여성 사외 이사 증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비대면 주총이 본격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또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Rule)'이 올해 주총에서 처음 시행되면서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일부 기업들에게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으로 오는 26일이 '슈퍼 주총데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정기 주총을 열겠다고 한 상장사는 셀트리온, 카카오게임즈, KB금융 등 총 257곳이다.
이달 25일에는 SK텔레콤, 녹십자 등 상장사 188곳이 정기 주총을 연다. 29일에는 카카오 등 152곳이, 30일에는 122곳, 24일에는 119곳, 19일에는 84곳이 정기 주총을 개최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주총 집중 예상일을 피해 주총을 잡는 기업들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고 있지만 올해도 26, 30, 31일에 주총을 열려는 회사가 많다"며 "이는 외부감사법과 상법 개정으로 감사 업무 부담이 커진데다가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업무 지체 영향이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 주총 대세
주요 대기업 중에선 포스코가 오는 12일 가장 먼저 정기 주총에 나서며 포문을 연다. 이어 17일에는 삼성전자, 24일 현대자동차와 LG전자, 25일 SK텔레콤 등이 정기 주총을 개최할 예정이다.
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 온라인 주총에 나서는 기업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포스코가 처음으로 온라인 중계 방식 주총에 나서며 삼성전자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온라인 생중계를 도입키로 했다. 삼성SDI, 삼성전기 등 다른 삼성 계열사들도 온라인 중계를 병행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 네이버도 온라인으로 주총을 생중계할 계획이며, LG 계열사들도 사전 전자투표 도입 소식을 알리며 주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각 기업들이 온라인 생중계를 시도하고, 전자투표를 적극 장려하는 분위기"라며 "올해 주총 풍경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질 것 같다"고 밝혔다.
◆ 전자업계 '투톱' 삼성·LG, 굵직한 현안 산적
올해 주총 시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삼성전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 1월 재수감된 상황인 만큼 오너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계획과 함께 대규모 신규 투자와 관련해 주주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마련할 지 주목된다.
또 이번 주총에선 3월로 임기가 만료되는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부회장, 김현석 생활가전(CE)부문 사장, 고동진 IT·모바일(IM)사장 등 3인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과 특별 배당금(10조7천억원)이 포함된 재무제표 승인 안건이 다뤄질 예정이다.
이 외에도 박병국, 김종훈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도 상정된다.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김선욱 사외이사의 재선임은 별도 안건으로 진행되며, 올해 이사 보수한도 승인 건도 처리될 예정이다.
김기남 부회장과 박재완 이사회 의장은 앞서 발송한 주주 서한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환경과 사회가치 제고 등을 포함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본격화했을 뿐 아니라 준법 경영에 대한 노력도 기울였다"며 "현장 중심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준법 문화의 정착과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적극 부응함으로써 신뢰받는 100년 기업의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LG전자는 전장(VS)사업본부 전기차 파워트레인(동력전달장치) 관련 사업에 대한 분할계획서 승인절차를 안건으로 올렸다. 지난해 말 세계 3위 자동차 부품 업체인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 분야 합작법인을 설립키로 한 데 따른 것이다. LG전자는 오는 7월 합작법인을 공식 출범할 예정으로, 분할회사인 LG전자가 물적분할을 통해 분할신설회사의 지분 100%를 갖고 마그나는 분할신설회사의 지분 49%를 인수한다.
더불어 LG그룹 주총에선 구본준 고문이 LG상사, LG하우시스 등 계열사를 갖고 독립하는 계열 분리 안건을 다룰 예정이다. 신설지주사는 LG상사·LG하우시스·실리콘웍스·LG MMA 등 4개 자회사와 LG상사 산하의 판토스를 손자회사로 거느리는 구조다. 대표이사는 구 고문과 LG상사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송치호 고문이 맡는다. 자산 규모는 7조원 안팎이며, 분리기일은 5월 1일이다. 신설 지주사의 사명은 'LX'가 유력하다.
◆ 新 자본시장법 시행 앞두고 사외이사 '여풍'
내년 8월 시행될 새 자본시장법 여파로 올해 주총에선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곳들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여성 이사 선임이 필수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주요 상장 계열사는 사상 처음으로 이번 주총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다. LG전자, LG유플러스 등 LG그룹 5개 상장사도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키로 했다. 내년에는 LG화학, LG생활건강,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자산 2조원 이상 LG 상장사들이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할 계획이다.
SK㈜도 2015년 통합 지주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다. 한화그룹의 모회사인 ㈜한화도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 영입을 예고한 상태다. 이미 2명의 여성 사외이사가 있는 삼성전자와 삼성SDI, 삼성전기 등도 올해 주총에서 여성을 포함한 기존 이사들을 재선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ESG가 새로운 경영 화두로 떠오르고 있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사회 멤버 중 여성 비율을 높이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여성 사외이사 증가는 기업의 지배구조인 거버넌스를 투명하게 하고 이사회 조직 운영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기 위한 행보의 일환이기 때문에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밝혔다.
◆ '3%룰' 첫 시행…경영권 분쟁서 '변수'
올해는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도 처음 시행돼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일부 기업들의 주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룰'은 상장사의 감사를 선임할 때 지배주주가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최대 3%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으로, 대주주가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에 국민연금과 소액주주의 표 행사가 각 기업의 경영권 분쟁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박찬구 회장의 조카이자 개인 최대주주(10%)인 박철완 상무가 이사진 교체,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발송하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 박 상무는 주총을 앞두고 본인의 사내이사 선임 및 사외이사 4명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주주제안이 성공하게 되면 현재 10명의 이사진에서 과반 이상의 이사회 구성원을 확보하게 돼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박 상무는 금호석화 지분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박찬구 회장과 장남 박준경 전무가 각각 6.69%, 7.17%를 보유 중으로, 이들이 지분율을 합치면 14.84%로 높아진다. 여기에 상법 개정에 따른 3%룰이 적용되면 박 회장 일가는 7%의 지분율을 확보하게 되며 감사위원 선임 안건에서 박 상무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에 7.91%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과 지분율 50%가 넘는 소액주주가 변수로 떠올랐다. 박 상무는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이달 초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제안'을 공개하며 배당성향 50% 확대, 신사업 진출 등 주주가치 제고에 힘쓸 것을 내세운 상태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지주사인 한국앤컴퍼니도 오는 30일 열리는 주총에서 감사위원 선임을 두고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과 차남 조현범 사장이 맞붙는다. 현 지분율은 조 사장이 42.9%로 조 부회장(19.32%)을 앞선다. 이는 지난해 6월 아버지인 조양래 회장이 자신의 지분 전량을 조 사장에게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한 데 따른 것이다.
상법 개정에 따라 대주주 의결권이 각각 3%로 제한되면서 조현범 사장, 조현식 부회장, 차녀 조희원 씨, 국민연금 의결권은 각각 3%로 동등해진다. 이에 지분 10.82%를 보유한 차녀 조희원 씨와 5.21%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표 행사가 관건이다. 이들의 표까지 갈리게 되면 소액주주의 표심에 따라 향방이 갈릴 수 있다.
한진칼의 계열사 ㈜한진은 사모펀드(PEF)운용사 HYK파트너스가 세운 HYK1호펀드로부터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다. 한진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동생인 조현민 부사장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HYK파트너스는 경방이 보유하던 ㈜한진의 지분 전량을 넘겨받아 한진의 2대 주주(9.79%)가 됐다. 지분 3% 이상을 확보해 상법 개정안에 따라 보유기간과 무관하게 소수주주권 행사가 가능한 만큼 주총을 앞두고 주주제안을 상정할 수 있게 됐다.
HYK파트너스는 지난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이사 최대 정원 증원, 정관 변경, 이사 결격사유 규정 신설 등 자신들이 제시한 주주제안 안건을 주총서 상정토록 하는 내용의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한진칼(24.16%)과 오너가 우호세력인 GS홈쇼핑(6.62%) 측의 보유 지분율은 38% 수준이지만 '3%룰'을 적용하면 의결권 행사 가능 주식 수가 18%대로 줄어 HYK(9.79%)와의 격차가 좁아진다. 한진 이사회 8명 중 감사위원을 맡은 사외이사 1명이 교체될 예정이어서 신규 선임 안건에서 표 대결이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올 3월 주주총회에선 감사위원 1명을 등기이사와 별도로 반드시 선임해야 하기 때문에 감사위원을 교체해야 하는 일부 기업은 표 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이 각자 경영 상황에 맞게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를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실효적인 감사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LG그룹 지주회사 ㈜LG의 주총은 구본준 고문이 독립 경영에 나서는 ㈜LG신설지주 설립 안건과 관련해 지분 약 1%를 보유 중인 미국 헤지펀드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에 발목이 잡혔다. 화이트박스는 LG그룹의 계열 분리를 반대하며 "신설지주를 설립하고 계열사를 분사하는 것은 가족 간 경영권 승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므로 주주 가치를 희생시키는 결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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