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무대예술이 아직까지는 재밌어요. 재밌게 숨 쉴 수 있는 것 같아요.”
박정복은 2013년 단역으로 출연한 뮤지컬 ‘고스트’를 기점으로 5년만 공연에 집중해본 뒤 계속 갈지 말지 결정하기로 다짐했다. 그는 “얼마 전에 5년이 지났다”며 “앞이 보이지 않으면 멈추려고 했는데 지금 고(go)를 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2015년 연극 ‘레드’ 관객과의 대화 때 제게 레드와 블랙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있었어요. 당시처럼 열심히 대본 분석을 하고 치열하게 작품에 임하면서 물고 뜯는 게 레드일 것이고, 하던 대로 대사 외우고 트러블을 그렇게 많이 만들지 않는 일상이 계속되면 블랙일 것이라고 답했어요. 저는 블랙이 오면 언제나 그랬듯이 그만두고 싶어요.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좀 열심히 해야 되지 않을까 싶고,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박정복은 2006년 이재준 연출의 연극 ‘청춘정담’을 시작으로 대학로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하면서 배우생활을 했다. 하지만 프로필상 그의 데뷔작은 뮤지컬 ‘고스트’다. 그는 “짧게 짧게 한 공연들을 다 끄집어 와서 언제 데뷔했다고 말하긴 싫더라”며 “한동안 무대를 떠나 있다가 돌아와 정확한 계약서를 쓰고 떳떳하게 무대예술을 시작한 작품이 ‘고스트’”라고 강조했다.
뮤지컬을 하지 않는 박정복의 무대 복귀작이 ‘고스트’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박정복은 “꽤 오래 학생들을 가르쳤다”며 “예술고등학교에도 나가고 조교 생활을 하면서 교육 쪽으로 빠질까 고민하던 시기에 ‘고스트’에 빠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구와 같이 광주의 연기학원에 아예 내려가기로 한 상태였는데 계획된 시기 한달 전 강필석 형이 ‘고스트’ 오디션에서 상대배역 대사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추천했어요. 신시컴퍼니에서 연기를 잘 하는 친구를 쓰고 싶다며 형한테 물어본 거죠. 2주간 똑같은 대사를 몇 백번 하다 보니 오디션을 보러 온 사람들보다 호흡이나 태도가 안정될 수밖에 없잖아요. 편하게 대사를 하니까 외국인 연출들이 저를 특이하게 본 거예요.”
박정복은 뮤지컬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 연출진의 질문에 “노래와 춤을 못 하고 할 생각도 없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에게 제안한 윌리 로페즈 역은 단역이기에 앙상블을 겸해야 되지만 박정복의 거절에 연출진은 박정복에게 역할을 주고 앙상블을 한명 더 뽑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고스트’ 라이선스 초연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배우 인생이 시작됐다.
“저는 앙상블이 아니었죠. 앙상블이란 롤을 감히 할 수도 없었고 그때 만나 지금까지도 가깝게 지내고 있는 이윤형, 최광희, 신우석, 변효준이 앙상블을 했던 친구들이에요. 뮤지컬이란 장르의 앙상블이 되기 위해 얼마나 대단한 친구들이 얼마나 노력해서 하나하나 따낸 건지 그때 안 거예요. 그 사람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감탄했어요. 노래 파트를 나누는 것도 낯설고 당시 전 외부인이었어요. 뮤지컬은 제가 못하는 장르입니다.”
‘레드’ ‘올드위키드 송’ ‘까사발렌티나’ ‘날 보러와요’ ‘유도소년’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거미여인의 키스’ ‘돌아서서 떠나라’ ‘아트’ ‘시련’ ‘보도지침’ ‘알앤제이’ ‘오펀스’ 등 꾸준히 연극 작품에 출연해온 그는 2019년 말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의 타이틀롤을 맡아 변신을 꾀했다. 궁금해서 오디션에 지원했다가 이머시브 공연의 매력에 푹 빠진 박정복. “노래에 대한 트라우마가 커서 뮤지컬을 안 하지만 역할이 작아도 연기만 하는 배역이 하나라도 있으면 하고 싶어 지원했는데 개츠비가 노래가 제일 없어요.(웃음) 제가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고 공연하면서 힐링을 할 수 있어서 저는 잊지 못해요. 무척 재밌고 신선했어요.”
영화예술에도 관심이 많다는 박정복은 “단편영화를 많이 찍었던 시기가 있어서 당시 꽤 많이 공부를 했다”며 “근데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 지금은 그쪽으로 넘어가려면 그 환경에 맞게끔 생활을 해야 되기 때문에 공연예술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며 “병행하긴 성격상 잘 안 돼서 기회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배우로서의 지향점을 묻자 “나를 먼저 사랑해야 되겠단 생각을 했다”며 “흔들리지 않고 자존감을 높이려고 노력도 많이 한다”고 고백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잘생겼다는 말이 정말 싫었어요. 되게 부끄럽기도 하고 놀리는 것 같아 창피했거든요. 그래서 ‘나는 못생겼어’ ‘나는 연기를 못해’ 등의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았어요. 어느날 거울을 봤는데 점점 그렇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애들한텐 ‘너희가 매력적이어야지 교수도 너희를 매력적으로 본다, 마인드컨트롤을 계속 해라’고 하면서 저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단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그걸 떨쳐내려고 되게 노력을 많이 했어요.”
박정복은 “흔들리는 순간도 분명히 있고 그게 고집이 되는 순간도 있겠지만 잘 받아들이고 단단하게 쌓아올리면서 스스로 믿고 내 길을 갈 것”이라며 “그러다보면 돌이켜봤을 때 ‘잘 걸어왔구나’ 스스로 느끼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박정복은 연극 ‘킹스스피치’가 다음달 7일 막을 내리면 곧바로 연극 ‘알앤제이’로 무대를 옮긴다. 지난 시즌에 ‘로미오’를 연기하는 ‘학생1’ 역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30대 후반에 다시 교복을 입는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처음엔 출연을 고사했다.
그는 “진짜 안 하려고 다짐에 다짐을 했는데 되게 혼란스러운 것 같다”며 “고민을 많이 한 끝에,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에서 김도빈 형이 39세에 고등학생 역을 했으니 나도 기준을 39세로 바꿨다”고 웃음을 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박은희 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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