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납치사건' 진실은?…이후락 "진상 밝힐 때가 올 것"


[SBS 방송화면]

[아이뉴스24 정상호 기자] '꼬꼬무'가 1973년에 일어난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의 진실에 대해 파헤쳤다.

지난 1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에서는 김대중 납치사건을 재조명했다.

'김대중 납치사건'은 지난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이듬해 대한민국 중앙정보부가 유신 반대운동을 주도하던 재야 정치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저지른 납치 및 살인미수 사건을 말한다.

일본에 있던 김 전 대통령을 납치해 먼 바다에 빠뜨리려고 한 사건으로, 미국 정부에게 배의 위치가 탄로나면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김 전 대통령은 일본 도쿄도에서 실종된지 닷새째 되던 날인 1973년 8월 13일 서울 동교동 자택 앞에서 발견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한국 정부 개입설을 부인했다. 일본 경찰이 범인의 지문을 채취하는 등 증거를 포착하고 사건 관련자들의 출두를 요구했으나 이를 모두 거부했다. 이후 미국의 배후 영향력 행사와 한일 간의 절충 끝에 김대중의 해외 체류 등 언동에 대한 면책, 김종필 국무총리의 진사 방일 등에 합의했다.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는 당시 일본 총리에게 "이번 김대중 납치사건이 발생한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로서 각하와 일본 국민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표한다. 한국 정부는 두 번 다시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라고 사과하며 같은 내용의 대통령 친서를 전달했다.

이 사건 관련해 지난 2007년 10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는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 요원이 이철희의 반대에 부딪히자 "나는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라고 역정을 낸 적이 있고, 김OO 공사가 "박 대통령의 결재를 확인하기 전에는 공작을 수행하지 않겠다"고 버티다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 정황, 박 대통령이 사건 발생 후 관련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했으며, 진상규명을 하기보다 김종필 총리를 일본에 파견해 외교적 마찰을 수습토록 한 점 등이 박 전 대통령의 사전 지시 가능성과 최소한의 묵시적 승인을 암시한다고 봤다.

진실위는 조사 과정에서 중정과 주일파견관간 송수신 전문내용을 통해 구체적인 납치계획을 담은 'KT공작계획서'가 1973년 7월 19일 작성·보고된 사실과 납치 실행 과정을 밝혀냄으로써 중앙정보부가 사건의 실행을 주도했음을 밝혖냈다.

이날 방송에서는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이 김대중 납치사건 14년 후 사건을 언급한 장면도 공개됐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은 "국가조직력이 개입했다 하는 것을 시인한 적은 없다"라며 '당시 직접 지시했다'는 질문에는 "뉘앙스의 차이다"라며 "사람이니까 흥분하다 보면 또 다르게 말할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대답했다.

'당시 조사한 내용을 일부 밝힐 수 있냐'는 질문에는 "뭐 때가 오겠죠"라며 "한국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 그 진상이 밝혀지는 것도 몇년이 걸렸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진상을 밝힐 때가 오리라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정상호 기자 uma8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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