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상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한번 집권하지 않아도 이미 너무 많은 일을 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꿔 놓았다.
미국 국내에서는 빈부 갈등·인종 갈등·종교 갈등·성차별 등 거의 모든 갈등을 활성화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그 갈등을 정치에 이용해 대통령이라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 또 코로나 마스크 안쓰기 캠페인에서 보듯이 맹목적인 추종자들을 호도해 위험에 빠트리고 있지만, 그들은 선거 캠페인에서 여전히 맹신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233,000명이 코로나로 사망했다. 이 수치는 제1차 세계대전·한국전·베트남전·걸프전에서 사망한 희생자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국가비상사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방역의 총책임자인 트럼프는 책임을 회피하면서 계속해서 코로나의 위험을 외면하고 있다.
더욱 이해하지 못할 장면은 그런 트럼프를 많은 미국인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외 없이 트럼프 유세장에는 거의 마스크를 쓰지 않은 군중들이 운집한다. 마스크를 벗어 던진 트럼프는 자신의 책임을 벗어버리려는 잠재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트럼프가 뱉어 놓은 수많은 거짓말을 지적하는 언론에 대해 ‘가짜 뉴스’로 몰아세우면서 ‘저런 사람도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구나’하는 놀라움을 전 세계에 전해줬다. 정직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미국에서 리처드 닉슨은 워터게이트를 은폐하기 위해 한 거짓말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46년이 지난 지금은 미국이 많이 달라져 있다. 미국의 팩트체크 기관들이 검증한 바와 같이 트럼프는 하루에도 수십 번의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댔다. 그래도 트럼프는 건재하다. 더 이상 정직은 미국의 덕목이 아닌 것 같다.
국제적으로는 2차 대전 이후 구축해 놓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점령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미국이 수십 년 동안 공을 들여 관리해 온 동맹 관계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동맹 국가들에 대해 경제적 호혜 조치로 유대를 이어 오던 정책을 바꿔 무차별적 관세 폭탄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국가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패권 국가로서의 미국은 위상이 나날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힘이 쇠락하면서 국제적인 분쟁의 위기가 세계 곳곳에서 커지고 있다. 미국이 이란의 군사령관을 암살하자 이란은 이라크 내 미군 기지에 탄도 미사일을 발사해 다수의 미군이 부상했다. 이 사태로 미국과 이란은 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었다.
또 남중국해의 해상 운송로를 놓고 대립하면서 중국과의 긴장이 높아졌다. 중국은 지난 8월 분쟁 지역인 스프래틀리 군도를 향해 중거리 탄도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미군 정찰기가 중국 비행금지구역을 침범하자 이에 대한 경고였다. 이어 미군은 탄도 미사일을 장착한 군함을 스프래틀리 군도에 급파하면서 무력 충돌의 긴장이 높아졌다.
◇미국의 이미지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라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퓨연구센터가 최근 1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외에서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다.
많은 유럽 국가들은 지난 20년 동안 미국에 대한 긍정적 생각이 국민들 사이에서는 가장 낮았다. 영국은 41%로 그나마 높은 편이지만, 프랑스는 31%로 지난 2003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또 독일은 26%에 그쳤다.
미국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부정적 반응의 주요 원인이었다. 응답자 중 15%만이 미국이 코로나 팬데믹에 잘 대처했다고 응답했다.
◇기후 변화
트럼프가 기후 변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꼭 집어 말하기는 힘들다. 트럼프는 기후 변화를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값비싼 거짓말’, ‘심각한 주제’ 등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명백한 것은 취임 6개월 후 트럼프는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 발표해 환경론자들을 절망에 빠트렸다. 파리기후협약은 기온 상승을 섭씨 2도 이하로 낮추기 위해 2백여개 국가가 모인 협의체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많은 공해를 배출하는 국가인데, 환경론자들은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재선되면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파리협약에서 탈퇴하면서 트럼프는 “지나친 규제로 미국 기업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업에 대한 지나친 규제라는 주장은 공해 규제의 빗장을 빼버려 석탄·원유·가스 등을 생산하는 원가를 낮추려는 트럼프에게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돼 왔다.
하지만 값싼 천연 가스와 재생 가능 에너지를 공급하려는 정부의 노력 덕분에 여전히 몇몇 탄광은 폐쇄된 상태로 있다. 정부 발표 자료는 지난 해의 경우 미국에서 재생 자원이 석탄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탈퇴 효력은 미국 대통령 선거 다음 날인 오는 11월 4일에 발생한다. 바이든은 선거에서 승리하면 협약에 다시 가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미국이 탈퇴하면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가짜 뉴스의 등장
트럼프는 지난 2017년 10월 인터뷰에서 “내가 만든 말 가운데 ‘가짜 뉴스’가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사실 트럼프가 ‘가짜 뉴스’라는 말을 생산하지는 않았지만, 그 말을 유행시킨 것만은 사실이다.
팩트바닷에스이(Factba.se)가 조사한 소셜 미디어 게시글에서 트럼프는 지난 2016년 12월 트위터를 처음 시작한 이래 2천 번이나 ‘가짜 뉴스’라는 말을 사용했다. 오늘날 ‘가짜 뉴스’를 구글링하면 전 세계에서 11억 건 이상의 결과를 보게될 것이다.
2016년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가짜 뉴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지지했다는 것과 같은 거짓 보도를 의미했다. 그러나 ‘가짜 뉴스’가 대중적으로 사용되면서 의미는 변질됐다.
트럼프는 동의하지 않는 뉴스 기사를 공격하는데 ‘가짜 뉴스’라는 말을 빈번히 사용했다. 2017년 2월 트럼프는 한 발 더 나아가 몇몇 미국 언론을 ‘미국민의 적’이라고 낙인찍었다.
‘가짜 뉴스’는 태국·필리핀·사우디 아라비아·바레인 등의 국가 지도자들도 사용하는 용어인데, 일부 지도자들은 반정부 활동가들과 언론인들에 대한 탄압과 소추를 정당화하기 위해 퍼트려 왔던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가짜 뉴스’라는 용어를 신뢰할 수 있는 보도에 대해 사용하면서 정치인들은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해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끝없는 전쟁과 중동
지난해 연두교서에서 트럼프는 “위대한 국가는 끝임 없이 전쟁을 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시리아로부터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시간이 지나면서 약속을 어기고 유정을 보호하기 위해 시리아에 5백 명의 미군을 잔존시키기로 결정했다. 트럼프는 정권 인수 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시리아 등에서 주둔하던 미군의 규모를 축소시켰다. 그러나 미군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 주둔하고 있다.
물론 주둔군이 없이도 중동 국가들에 압력을 가하는 방법이 있다. 트럼프는 전임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8년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예루살렘의 동부 지역을 포함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것이다.
또 지난달 미국의 중재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및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트럼프는 이를 두고 ‘새로운 중동의 여명’이라고 표현했다. 표현은 별도로 하더라도, 이 협정 서명은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외교적 업적일 것이다.
두 걸프만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1948년 이래 이스라엘을 승인한 3, 4번째의 중동국가이다.
◇미중 무역전쟁
트럼프는 자신이 중재하지 않은 거래는 무시한다. 취임 첫날 트럼프는 전임 오바마가 승인한 12개국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끔찍하다’면서 탈퇴했다. 미국의 탈퇴로 대부분의 이익은 중국으로 돌아갔는데,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영향력 증대를 위한 계기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 협정이 미국인들의 고용 상태를 악화시킬 것으로 파악한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탈퇴를 환영했다. 트럼프는 또 캐나다 및 멕시코와 맺은 북아메리카자유무역협정(NAFTA)도 재협상했다. 트럼프는 NAFTA를 “일찍이 없었던 최악의 무역 협정일 것”이라고 혹평했다.
재협상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노동 조건을 강화하고 자동차 부품 조달에 관한 규칙도 어렵게 만들었다.
트럼프의 진짜 승부는 무역에서 이루어졌다. 중국과의 피나는 무역 전쟁의 결과인데, 세계 2대 경제대국이 서로 상대방의 수입품 수천억 달러 상당에 대해 징벌적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 대두 생산 농부과 첨단 산업, 그리고 자동차 산업에는 큰 어려움을 안겨줬다.
중국도 상처를 입었는데, 중국 내 외국 공장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베트남·캄보디아 등으로 옮겨갔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폭은 2016년보다 다소 적어졌다. 미국 회사들이 트럼프의 관세를 피하기 위해 수입을 줄인 결과이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 팬데믹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미국은 여전히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입초 국가이다.
◇중국과의 냉전
2016년 12월 2일 트럼프(당시 당선자 신분)는 대만 총통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매우 비상한 행보를 보였다. 그것은 지난 1979년 양국의 국교 관계가 단절된 이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당시 영국 BBC 방송의 중국 편집인인 캐리 그레이시는 대만을 독립된 국가가 아니라 중국의 한 성으로 간주하는 중국의 ‘경고와 분노’를 촉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트럼프의 이러한 대담한 행동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는 처음이었고, 양국 관계는 최저점으로 곤두박질쳤다.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불법적인 것이라며 중국을 자극했다. 미국은 중국산 상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매기고, 인기 높은 앱인 틱톡과 위챗의 다운로드를 금지했으며 중국 최대 통신장비 회사인 화웨이를 국가 안보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 목록에 올렸다.
그러나 사실 미중 긴장은 트럼프 때 시작된 것은 아니고, 부분적으로 중국의 행동이 유발시킨 측면이 강하다. 2013년 집권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논란이 많은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했고 중국 거주 회교 소수 민족인 위구르족들을 대량으로 격리시켰다.
최근 트럼프는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로 개명하면서, 코로나 발원으로 정권의 위기를 겪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불렀다. 이렇듯 미중 관계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느낌이다.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중국에 대해 유화적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시 주석을 ‘폭력배’로 부르면서 “몸에 민주주의 뼈가 없는 지도자”라고 표현했다.
◇이란
트럼프는 지난해 말 “이란은 어떠한 미군 시설에서 발생한 사망자, 혹은 피해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란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것은 경고가 아니라 위협이다”라고 트윗에 게시했다. 새해 전날이었다.
며칠 후 전 세계가 놀라는 일이 일어났는데, 이란에서 가장 강력한 장군이며 중동의 군사작전을 진두지휘해온 카셈 술레이마니가 암살된 것이다. 이란은 보복에 나서 이라크에 있는 2개의 미군 기지에 대해 10여 발 이상의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군 1백여 명 이상이 부상했는데, 전문가들은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은 없었지만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었다. 이란의 미사일 발사 몇 시간 후 미군은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잘못 알고 격추시켜 타고 있던 176명이 몰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일련의 상호 계산 착오가 불신으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은 1979년부터 멍청이 짓을 서로 많이 했다. 이 해에 미국이 지원하는 팔레비 국왕 정부가 전복됐고, 52명의 미국인들이 미국 대사관 안에 인질로 감금됐었다.
2018년 5월 트럼프는 2015년 맺은 이란과의 핵협정을 파기하면서 긴장을 서서히 고조시켰다. 이란과의 핵협정은 미국이 경제 봉쇄를 해제하는 대가로 이란이 핵프로그램을 제한하는데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핵협정 파기 당시 트럼프는 ‘이란 정권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가장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라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뜻에 따라 협상을 하기 위해 이란 지도자에 압력을 가하는 협박이이었다. 이란은 굽히지 않았다. 이후 미국이 가한 제재는 이란 경제를 심각한 상태로 몰고 갔다.
지난 해 10월에는 식료품 가격이 61%나 올랐고, 담배값도 80%나 뛰었다. 그러자 고통을 참지 못한 이란인들은 항의 시위에 나섰다. 미국과 이란은 코로나19로 인해 직격탄을 맞아 신음하고 있지만, 양국의 외교 채널은 거의 없고 발화점만 다양하게 남아있다.
/김상도 기자 kimsangd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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