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월광’ ‘달빛’ 흐르는 슬기로운 비대면 추석 생활


올 추석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귀향을 포기하는 것이 미덕이 됐다. 휘영청 밝은 달 아래에서 베토벤 '월광'이나 드뷔시 '발빛'을 들으며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도 슬기로운 비대면 추석 생활을 즐기는 방법이다. [뉴시스]

[아이뉴스24 민병무 기자]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은 모두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남겼다. 그 중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14번 ‘월광(Moonlight)’이다. ‘월광’이라는 이름은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이 아니다. 베토벤이 죽은 지 5년째 되던 1832년, 슈베르트 연가곡집 ‘백조의 노래’의 전반부 7곡의 가사를 쓴 시인 겸 음악평론가 루트비히 렐슈타프가 1악장의 분위기를 “달빛이 비치는 루체른 호수 위에 떠있는 조각배 같다”고 빗대어 표현했다. 이때부터 ‘월광’이라는 멋진 제목이 널리 쓰였다.

베토벤은 1801년에 이 곡을 만들어 한창 썸을 타던 줄리에타 귀차르디에게 헌정했다. 베토벤은 줄리에타의 피아노 선생이었다. 가르치면서 애틋한 정이 생긴 케이스다. 두 사람이 열렬히 사랑한다 해도 가난한 음악가를 사위로 받아들이기에는 신분의 벽이 높았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베토벤은 평민이고 줄리에타는 귀족 아닌가. 당시의 작곡가 신분은 귀족이 지시하면 척척 맞춤음악을 뽑아내야 하는 벤딩머신과 똑같았다. 거기에 더해 청력상실이라는 핸디캡까지 있었으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베토벤이 눈에 차지 않았다. 이 '나쁜 놈'을 빨리 떼어내고 싶었다.

영화 ‘불멸의 연인’을 보면 이때의 상황이 나온다. 물론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베토벤(게리 올드먼 분)의 능력을 아버지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줄리에타는 집에 새 피아노를 들여 놓았다며 모두들 외출할테니 연주해보라고 말한다. 베토벤은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에 홀로 앉아 연주한다. 이 순간 흘러나오는 곡이 ‘월광’ 1악장이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베토벤은 건반의 울림을 직접 느껴보려고 자신의 귀를 뚜껑 위에 바짝 가져다 댄다. 줄리에타와 아버지는 몰래 숨어 지켜본다. 이 장면이 애처로웠던 줄리에타는 베토벤에게 다가갔고,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훔쳐봤다는 사실에 분노한 베토벤은 화를 내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결국 사랑은 깨졌다. 새드엔딩으로 마무리됐다.

최근 SBS 월화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도 이 곡이 살짝 나왔다. 박준영(김민재 분)이 의기소침해 있는 채송아(박은빈 분)를 위해 피아노를 친다. “월광, 안치시면 안돼요. 그거 제가 좋아하는 곡이라서. 지금 안듣고 싶어요. 그것 좀 제발”하는 순간 월광 소나타가 생일축하 노래로 바뀐다. 여심을 사로잡은 기막힌 변주다. 그러면서 채송아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나는 음악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정작 내가 언제 위로받았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알 수 있었다. 말보다 음악을 먼저 건넨 이 사람 때문에.” 러브를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한 심쿵 장면이다.

클로드 드뷔시(1862~1918)는 상징주의와 인상주의를 음악으로 가져온 주인공이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음악과 뚜렷하게 다른 맛을 내고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에 주목했던 것처럼 그도 외부 세계에서 받은 어떤 순간의 느낌을 오선지에 옮겨 놓았다. 누군가 ‘귀로 듣는 회화’라고 말했는데, 아주 적확한 표현이다.

드뷔시는 이탈리아 북부의 베르가모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와 1890년에 1곡 ‘프렐류드’, 2곡 ‘미뉴에트’, 3곡 ‘달빛’, 4곡 ‘파스피에’로 구성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Suite Bergamasque)’을 작곡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달빛(Clair de lune)’이다. 바그너 음악과 결별하고 새로운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결심했던 무렵에 선보인 곡이다. 아름다운 선율과 풍부한 색채의 화음은 인상주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끄러지는 듯한 글리산도 주법과 달빛의 확산을 묘사하는 것 같은 분산화음이 몽롱하면서 달콤하다. 또 신비스럽다.

손예진·현빈 주연의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리정혁 동무가 ‘달빛’을 연주하는 장면이 살짝살짝 삽입돼 애간장을 녹였다. 또 뱀파이어와의 사랑을 다룬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주인공 에드워드와 벨라가 이 곡에 맞춰 춤을 췄다.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티벳에서의 7년’에서도 오르골을 통해 이 곡이 흘러 나왔다. 그만큼 아름다운 곡이라는 방증이다.

이밖에도 ‘달’과 연관된 노래는 많다. 안토닌 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에 나오는 아리아 ‘달에게 부치는 노래(Song to the Moon)’는 감미롭다. 물의 요정이 달님에게 “왕자님을 사랑하는 제 마음을 대신 좀 전해주세요”라고 하소연한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달에게(An den Mond)’, 빈첸조 벨리니의 ‘방황하는 은빛 달이여(Vaga luna, che inargenti)’도 강추하는 곡이다.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 한 마리 / 돛대도 아니달고 삿대도 없이 /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비록 보름달은 아니지만 윤극영 작사·작곡의 ‘반달’도 어울리는 노래다.

한가위를 앞두고 고향 거리엔 예전에 보지 못한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불효자는 옵니다” “이번에는 안와도 된당께” “정 총리가 그러더구나, 내려오지 말라고” “코로나 몰고 오지 말고 용돈만 보내라” “조상님은 어차피 비대면, 코로나 걸리면 조상님 대면” 등 신박한 문구가 잇따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생긴 일이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해 귀향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하루 빨리 상황이 진정돼야 할텐데 걱정이다.

올해 추석 보름달은 10월 1일 서울 기준으로 오후 6시20분에 뜬다. 가장 높이 뜨는 시각은 자정을 넘은 2일 0시20분이다. 완전히 둥근달은 오전 6시5분에 볼 수 있다고 한다. 비록 고향에 가지는 못하지만, 한가위 달 아래서 베토벤 ‘월광’이나 드뷔시 ‘달빛’을 들어보자. 꽉꽉막힌 고속도로에서 몇시간씩 허비하는 고생은 사라졌으니, 그 시간만큼 부모님을 더 많이 생각해보자.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더 가까이 다가가보자. 이런 슬기로운 비대면 추석 생활이 팬데믹을 물리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부디 날씨도 도와줘 휘영청 밝은 달을 선물 받았으면 좋겠다.

/민병무 금융부 부국장 min6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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