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다운 기자] "자네들 참 재미있는 일을 하는군. 내 친구도 모터사이클로 세계일주를 한 적 있는데, 짐 로저스라고 알고 있나?"
2006년 뉴욕 한복판에 네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개조한 모터사이클에 전통 풍물복을 입고 나타나 뉴요커들의 시선을 끌었다.
일본 시마네 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해 독도 영유권 분쟁이 벌어졌던 14년 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재학중이던 김영빈 씨를 비롯한 대학생 네명은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독도라이더'를 결성하고 미국, 유럽, 중동, 중국 등 전세계 21개국을 모터사이클로 횡단했다.
이때 뉴욕에서 독도 알리기 브로셔를 나눠주고 있던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 노년의 신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자신의 친구 짐 로저스도 모터사이클로 세계일주를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독도라이더에 영감을 준 사람이 둘인데, 바로 모터사이클로 여행을 한 체 게베라와 짐 로저스였어요. 저한테는 영웅 같은 사람이라고 하니 흔쾌히 소개해주겠다며 바로 전화를 하시더라고요. 그날 짐 로저스와 처음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얻어 마셨습니다."
김영빈 파운트 대표와 세계 3대 투자자로 꼽히는 짐 로저스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5년 설립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파운트는 인공지능(AI)를 통한 글로벌 자산관리 서비스업체다.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를 갖고 적절하게 자산배분을 한 포트폴리오를 추천한다.
우리은행, 기업은행, 흥국생명, 메리츠자산운용, 메트라이프생명 등 20개 금융사가 파운트의 로보어드바이저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 금융사 자금을 포함한 파운트의 관리자산은 지난 7월 2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6월에는 금융위원회에서 선정하는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됐다.
파운트는 짐 로저스가 투자고문을 맡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비상장회사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투자원칙을 깨고 스타트업인 파운트에 직접 투자하기도 했다.
독도라이더 활동 중 뉴욕에서 짐 로저스와 영화 같은 우연으로 처음 만난 김 대표는 이후에도 꾸준히 메일을 주고받고 집에 초청도 받으며 인연을 이어갔다. 김 대표가 출간한 책에는 짐 로저스의 추천사도 실려 있다.
김 대표는 파운트를 설립할 때 싱가포르에서 짐 로저스를 만나 '엔젤 투자자로 모시고 싶다'고 설득했다. 처음에는 거절했던 짐 로저스는 몇번의 설득 끝에 투자자로 참여하기로 했다고. 방한할 땐 직원이 몇명 되지 않는 파운트 사무실을 찾아와 격려도 전했다. 김 대표를 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파운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초기에 회계재무자료 등의 보고서를 보내면 왜 나한테 쓰레기를 보냈냐며 쓴소리를 많이 했어요. 형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요. 지금도 메일을 많이 주고받는데 '언제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 거냐'는 말이 꼭 들어가 있어요."
◆ 코로나 급락장서 선방…고객 신뢰 얻어
김 대표는 "짐 로저스가 회사 운영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파운트가 짐 로저스가 짚어주는 종목대로 투자를 하는 회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짐 로저스는 천재적인 인사이트(통찰력)에 의거해 투자를 하지만, 파운트는 철저히 데이터 분석과 AI의 학습력에 의거해 투자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AI를 이용하더라도 금융에서 단기 예측은 불가능합니다. 알파고라고 해도 내일 급등주를 찍어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위험관리를 통한 장기적인 성과관리는 가능합니다."
파운트의 투자철학은 '잃지 않는 투자'다. 전 세계적으로 60년 넘게 축적되고 업데이트된 금융공학 방법론을 이용하면 위험분산과 관리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런 기술을 이용하면 내일 무슨 종목이 오를지는 모르지만 10년 후에 스탠다드앤푸어스(S&P)지수가 오를지는 알 수 있다"며 "지수형 상품들을 긴 시장단위로 데이터에 기반해 분석하고 오를만한 상품 위주로 투자를 분산해 위험을 나누는 것이 파운트의 투자 핵심이다"라고 밝혔다.
일례로 파운트의 글로벌 자산배분 상품 중 주식 비중이 100%인 '공격형' 펀드 포트폴리오는 연초 이후 코로나19로 시장이 흔들렸던 올해 5월20일까지 -0.1%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S&P500지수는 8.8%, 코스피지수는 8.5% 떨어진 것에 비해 선방한 것이다.
파운트 포트폴리오는 코로나19 확산 당시 고점 대비 25% 하락해 역시 같은 기간 S&P500지수와 코스피지수의 최대 낙폭이 각각 -34%, -36%인 것에 비해 선방했다.
지난 7월 말 기준 파운트 앱 투자자들이 가입한 로보펀드에서 수익이 난 계좌의 비율은 99.05%에 달한다. 장기로 투자했을 때 연 평균 수익률은 4~10% 정도다.
"제 자산도 다 파운트에 넣었고, 회사 직원들도 많이 넣고 있어요. 코로나 급락장에서 크게 걱정을 안 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수익률이 출렁일 수 있지만 결국 회복할 것이라고 믿으니까요."
오히려 코로나 급락장 시기에 고객이 더 몰리고 진가를 알아줬다고. 시장이 출렁일 때마다 파운트에는 자금이 유입됐다.
김 대표는 회사의 기술적 방향성 덕분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남들은 다 빠지는데 우리만 오를 수 있다는 얘기는 안하다"며 "대신 기민하게 대응하고 리스크를 미리 분산시켜놔서 고객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특히 파운트는 연금 등 장기투자가 유용한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10년을 맡겼을 때 확실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 10월에 투자일임 서비스 론칭 예정
파운트가 설립된 건 2015년으로 '알파고 쇼크'가 있었던 2016년보다도 앞섰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AI 기술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던 당시 김 대표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근무하면서 AI를 통해 금융에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올 것을 예감했다.
"그때는 미국도 로보어드바이저 극초기 시기였는데, 2030년에는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1경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어요. 얼핏 터무니없는 예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미 5년밖에 안된 현재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800조원을 넘어섰죠."
로보어드바이저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고객들의 눈높이가 달라졌다는 것이 있다.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던 투자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자산이 반토막이 나는 것을 경험했다. 이후 '지키는 투자'에 대한 선호도가 전세계적으로 높아졌다.
김 대표는 "초저금리 시대도 굉장한 기회가 될 것이다"라며 "과거 예적금으로 쏠리던 자금도 금리가 너무 낮기 때문에 투자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파운트에 보내는 금융권의 러브콜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한국은행이 역대급으로 기준금리를 내렸고, 사모펀드 사태 등이 터지면서 파운트를 찾는 금융사들이 더욱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파운트는 최근 산업은행, LB인베스트먼트 등 금융사와 벤처캐피털(VC)에서 150억원의 투자유치를 완료하는 등 총 233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투자자금은 연구개발(R&D) 투자에 집중적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현재도 파운트의 금융공학 및 개발 인력은 70%에 육박한다.
'변액보험 사후관리 서비스 발명의 명칭 - 자산 포트폴리오 관리 시스템을 이용한 포트폴리오 관리 방법'에 대한 특허도 지난 2월 출원했다.
"AI 시장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나와 있을 정도로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기존 강자라는 것이 의미가 없고 밤낮없이 최신기술을 적용하고 연구해가는 기업들이 결국 높은 경쟁력을 갖게 될 겁니다."
파운트는 현재 비대면 자문 서비스만 하고 있지만, 올해 10월께에는 투자일임 서비스를 새롭게 론칭할 계획이다. 지난해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한 비대면 투자일임 규제가 완화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자문 서비스는 고객에게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고 펀드 변경은 직접 고객이 실행해야 하지만, 일임이 되면 고객이 맡긴 자산을 알아서 관리해줄 수 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이런 관리는 비용 문제로 고액자산가들밖에 받을 수 없었지만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100만원, 200만원 고객들도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김다운 기자 kdw@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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