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연춘 기자] "골목상권 진입을 막는 유통규제가 골목상권을 살리는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유통의 축이 온라인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유통규제는 대형유통의 일자리를 줄이고 관련 업계 중소상인에 타격만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재난으로 유통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도 국내 유통규제는 더욱 강화될 기세라고 지적한다. 대형마트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지난 10년은 재앙과도 같았다. 온라인 시장의 고속 성장 속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치킨게임'에 나섰고,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지난 2분기 적자 수렁에 빠지는 등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일각에선 비상계획(컨틴전시 플랜)을 준비해야 하는 처지에 유통 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더는 '대형마트=강자'가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승자로 남기 위해서는 규제가 시장 변화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는 이유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 이들을 '갑'으로 인식한 채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 기반의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통규제에 대해 지금까지 소상공인측과 유통 대기업측이 실효성이 있다 없다를 되풀이하면서 오히려 갈등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월 2회 의무휴업 및 신규출점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유통법 개정안 시행 10년을 맞았다. 급변한 유통환경에 맞춰 유통법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올해 11월 23일 일몰 예정인 유통법상 '전통상업보존구역 1㎞ 이내 대형마트 입점 제한' 조항의 일몰을 연장하는 내용으로 정부 입법을 논의 중인 것이다. 전통상점가의 경계로부터 1㎞ 이내의 범위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전통상업보존구역을 정해 대형마트의 입점을 막는 해당 조항은 '영업일·시간 제한'과 더불어 대표적인 대형마트 규제로 꼽힌다. 유통법은 또 대규모 점포 개설등록 시 상권 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 첨부를 의무화하는 등 엄격한 출점 규제 역시 담고 있다.
'1㎞ 이내 입점 제한' 조항은 애초 지난 2015년 11월 23일 일몰 예정이었으나 국회를 거쳐 5년 연장된 바 있다. 2015년 당시 정부는 해당 조항의 효력을 3년 연장하는 안을 내놨으나,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이보다 더 많은 5년 연장안을 최종 통과시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이 중요시되던 당시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였다.
올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미지수다. 다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대형마트는 온라인에 치이고 고객들의 발길마저 끊기면서 적자전환했다.
실제 이마트는 지난 2분기에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를 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데다 '재난지원금 특수'에서도 소외됐기 때문이다. 2분기 47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1년 신세계로부터 분할된 후 첫 적자를 낸 지난해 2분기(-299억 원)보다 적자 폭이 175억 원 늘었다. 당기순이익은 서울 마곡동 부지 매각에 따른 처분이익과 이자 비용 절감으로 3천145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앞서 실적을 발표한 롯데마트 역시 암울한 2분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롯데마트의 올해 2분기 매출은 1조4천65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5%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578억 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임시휴업과 단축 영업, 재난지원금 사용처 제한으로 매출 규모가 줄어든 결과다. 영업이익은 점포 구조조정 관련 충당금 설정으로 지난 1분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은 점포 매각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롯데는 올해 안에 16개 매장을 정리할 계획이다. 빅마켓 킨텍스점, 신영통점, 의정부점, 양주점, 천안점, 천안아산점 등 6곳은 이미 영업을 종료했다. 홈플러스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8.39% 감소하는 등 최악의 실적을 발표한 후 점포 매각으로 자산 유동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e커머스 등 온라인 유통 업체로부터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는 형국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한시적으로 풀어줘야 한다'고 긴급 제언에 나선 배경이다.
문제는 전통시장을 살리겠다고 나선 유통법이지만 전통시장도 웃지는 못했다. 대형마트 영업일 수를 제한하면 전통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빗나간 셈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통시장 매출액은 2012년 21조 원에서 유통규제법안이 통과된 후 2013년 20조7천억 원으로 역성장했다. 이 기간 대형마트도 1% 안팎의 매출 신장률을 보이며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소비는 온라인으로 발 빠르게 이동했다. 2015년 14% 수준이었던 온라인쇼핑 비중은 21.4%로 크게 뛰었다. 대형마트 규제로 인한 반사이익이 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쇼핑을 향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업계는 정부의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체 규제에 대해 아직도 오프라인 시대에 머물러 있는 관점이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해석한다. 더는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업계의 '주류'가 아닌 상황임에도, 규모와 매장 수 등에만 집착해 이들을 '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의 지적과 같이 실제 정부는 이미 온라인에 밀려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규모 기준 시장의 '을'이 됐음에도 이들 규제할 수 있는 근거로 항상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이 무너진다는 것을 들고 있다.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입장에서는 온라인 업체와의 경쟁 속 정부로부터의 상생 압박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는 정부가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뀌고 오프라인의 몰락 속에 온라인 쇼핑몰이 공룡으로 성장했음에도 계속해서 대형마트만 규제하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현재 업계 주류가 아님에도 정부는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해 이들을 압박하고 있다"며 "시장을 정확히 파악하고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오프라인 유통 시장의 상황은 절대 나아질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온라인이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오프라인에 대한 수요도 분명 높은 수준으로 남아 있다"며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업계의 자구책에 규제로 응답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들이 입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는 "유통법이 대형 유통에 대한 출점과 영업규제를 시행하면서 '유통산업 억제법'으로 변질했다"라면서 "정부와 국회가 중소상인 보호 못지않게 유통산업 발전을 함께 살펴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이제는 '대형마트vs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시장vs오프라인시장'으로 유통환경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며 "최근 온라인쇼핑의 급속한 확대에 따른 대형오프라인의 구조조정 현실을 고려할 때 규제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이연춘 기자 staykit@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